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다음달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ARM 공동 인수를 제안할 것 같다"며 메가톤급 발언을 했습니다. 그동안 수면 아래서 맴돌던 삼성전자의 ARM 인수 가능성이 처음으로 공식화된 겁니다. 세계 반도체 산업의 지각변동을 가져올 수 있는 ARM 인수를 놓고 기업간 수싸움과 빅딜 신호탄이 쏘아진 셈이죠. 지디넷코리아가 긴급히 전문가 의견을 듣고 ARM 빅딜 시나리오를 점검해 봤습니다. [편집자주]
삼성전자가 세계적인 영국 반도체 설계자산(IP) 업체 ARM 인수를 추진한다는 업계의 관측이 기정사실화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1일 해외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다음달(10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방안해 ARM 인수를 제안할 것 같다"며 ARM 인수 관련해 공식적으로 거론했기 때문이다. 이에 22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손정의 회장은 소프트뱅크 대변인을 통해 "한국을 방문해 삼성과 전략적 협력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이를 공식 확인했다. 양 측의 사전 교감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세기의 반도체 빅딜이 시작된 셈이다.
통상적으로 기업은 인수 계약을 체결하기 전까지 추진 과정을 비밀리에 진행하고 외부에 알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삼성전자 총수이자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이 부회장이 취재진에 ARM 인수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업계는 삼성전자가 ARM 인수에 대한 의지가 높은 것으로 해석한다. 또 ARM 인수가 공개적으로 추진되는만큼 소프트뱅크 손 회장과의 수싸움(인수가격 등)이나 리스크 헷징에서 더 유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ARM의 75% 지분은 손정의 회장이 보유하고 있으며, 나머지 25% 지분은 자회사인 비전펀드가 갖고 있다. 현재 ARM 몸 값은 약 70조원, 최대 100조원으로 평가받는다. 삼성전자가 보유한 현금은 약 125조원으로 ARM을 독자적으로 인수할 자금은 충분하다.
다만, 삼성전자는 주요 국가의 반독점 심사에서 반대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또 막대한 인수 자금에 대한 리스크 또한 제기된다. 업계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단독 인수 보다는 컨소시엄을 형성해 ARM 공동 인수를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 ARM 인수로 시스템반도체 기술 도약…기업가치 TSMC 제칠수도
반도체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ARM를 인수하는 것에 긍정적인 입장이다. 삼성전자가 IP 기술을 확보하게 되면 시스템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고, 국내 반도체 생태계에도 도움될 수 있기 때문이다.
ARM은 세계적인 반도체 설계자산(IP) 업체다. 반도체 칩 업체들에게 중앙처리장치(CPU)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설계도를 제공하고, 그에 대한 라이선스 및 로열티를 받아 수익을 낸다. 특히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ARM은 90% 점유율 차지할 정도로 반도체 시장에 영향력이 크다.
이혁재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교수는 "삼성전자가 ARM 인수를 한다면 시스템반도체 기술에서 한 단계 도약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ARM은 중요한 CPU와 AP를 독점 공급하고 있는 회사인데, 삼성이 인수하게 되면 AP를 만들 때 경쟁력이 높아지게 되고 고성능 컴퓨팅 기술도 향상시킬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반도체 IP 전문가 A씨는 "종합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가 IP 비즈니스까지 하게 되면, 버티칼로 가장 밑에서부터 가장 위까지 다 제공해 주는 명실상부한 반도체 토탈 솔루션 기업이 되는 것"이라며 "이는 반도체 업계의 파장이 클 것이며, 기업 가치(시가총액) 기준으로 TSMC도 제칠 수 있는 규모로 성장하게 된다"고 전망했다. 그는 "현재 기준으로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기업가치 순위로 TSMC가 1위, 엔비디아가 2위, 삼성전자는 9~12위 정도 된다"고 덧붙였다.
■ 독과점 심사가 걸림돌…컨소시엄 통해 '공동 인수' 추진이 유리
삼성전자의 ARM 인수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은 주요 국가의 반독점 심사다. 주요 국가의 독과점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과거 엔비디아(NVIDA)처럼 인수가 실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전문가는 삼성전자 단독 인수 보다는 컨소시엄을 형성해 ARM 공동 인수를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2020년 9월 엔비디아는 400억달러(당시 약 47조원) 규모의 ARM 인수 계약을 맺었으나, 반독점 규제로 미국과 영국 등 주요 규제당국의 승인을 받지 못하면서 올해 초 인수가 불발된 바 있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은 "삼성전자가 ARM 인수에 성공한다면, 그 만큼 좋은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ARM의 IP는 공공자산처럼 되었기 때문에 그 기술을 한 기업이 보유하면 생태계에 교란과 독과점 문제가 일어날 것으로 보고, 규제 당국이 허락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엔비디아가 실패했듯이 삼성도 독점 인수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차선책으로 공동인수를 통해서 추진하는 것이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혁재 교수는 "삼성전자가 엔비디아보다 ARM 인수에 유리하지 않을 것"이라며 "GPU를 만드는 엔비디아도 ARM 인수에 실패했는데, AP를 만드는 삼성전자가 AP 핵심 회로를 보유한 ARM을 인수한다고 하면, 경쟁 기업들과 규제 당국이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삼성이 ARM을 인수하려면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반독점법을 피해갈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인텔, SK하이닉스, 퀄컴 등이 세계적인 기업들이 ARM 인수를 타진 중이다. 업계에서는 이들 업체들이 컨소시엄을 형성해 ARM 공동 인수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을것으로 보고 있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지난 3월 "ARM 인수합병을 위해 다른 기업과 공동으로 투자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최고경영자(CEO) 또한 "퀄컴은 ARM 투자에 관심 있는 당사자로 인수를 위해 다른 칩 제조사와 협력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지난 5월 30일 이재용 부회장이 서울에서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와 만났을 때도 ARM 공동 투자를 논의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삼성전자의 ARM 인수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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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반도체에 정통한 업계 전문가는 "삼성전자가 IP 사용료를 내고 칩을 많이 만들어서 파는 것만으로 충분히 이득을 취할 수 있는데, 몇 십 조원의 금액을 ARM 인수에 투자하는 것에 반대한다"며 "IP를 판매하고 관리하는 비즈니스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엔비디아의 인수 실패 사례가 있듯이, 그 돈을 반도체 시설에 투자하거나, 신사업에 투자를 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