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없이 살수 없는 시대가 왔습니다. 반도체는 이제 사회와 산업의 생명수이자 권력입니다. 모든 것을 움직이고 연결시킬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을 멈추고 파괴시킬 수도 있습니다. 1960~70년대 노동집약적인 우리 경제를 첨단·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탈바꿈시킨 반도체 산업이 이제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과 4차산업 혁명 속에 새로운 전환시대를 맞았습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국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생태계 확장은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지디넷코리아가 창간 22주년을 맞아 '반도체가 미래다' 시리즈를 3부에 걸쳐 연재합니다. 우리 수출산업의 첨병을 넘어 경제안보 자산으로 평가받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현주소를 면밀히 짚어보고, 무엇을 준비하고 미래를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그 방향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1부: 세계는 반도체 전쟁
2부: 한국 반도체 신화는 계속된다
3부: 전문가에게 듣는다
국내 중소·중견기업 반도체 팹리스 업계가 설계 엔지니어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캐나다, 베트남 등 해외 전문 인력 채용을 통해 위기 극복의 돌파구를 찾고 있다. 국내에는 반도체를 전공한 전문인력이 부족한데다, 핵심 인력의 대기업 쏠림 현상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 국내 팹리스 기업 인력 부족, 대기업 쏠림 현상 심각
국내 반도체 업계가 생산·제조 측면에서 강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관련 인력풀은 해외와 비교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를 K-반도체 산업이 메모리 반도체를 넘어 시스템 반도체 강국으로 나아가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다. 특히 국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필두로 메모리 반도체 중심으로 성장하다 보니, 시스템반도체 설계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그나마 있는 국내 시스템반도체 설계 인력은 타 업종과 마찬가지로 대기업 취업을 선호하고 있어 국내 중소·중견 팹리스 업체들의 '인력 가뭄'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팹리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들이 중소·중견의 반도체 경력 엔지니어를 스카웃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최근엔 10년 이상 경력을 갖춘 여러 명의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 인력을 그룹으로 묶어서 법인으로 계약하는 방식으로 진화됐다"며 "그러다보니 중소 팹리스 업체들이 경력 엔지니어를 채용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은 인재 채용에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국내 반도체 스타트업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스타트업은 영세 기업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인력 채용에 어려움이 더 크다"며 "그나마 우리는 정부 지원과 함께 국책과제를 맡으면서 구직자에게 재정이 안정적인 기업이라는 믿음을 줬기에 인력을 추가로 채용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 캐나다, 전문 인력 채용으로 돌파구…실리콘밸리 보다 저렴한 인건비 장점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내 팹리스 업계는 대안으로 캐나다, 베트남 등에서 반도체 전문인력 채용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국내 팹리스 업체 관계자는 "국내에서 설계 엔지니어를 못 구하자 캐나다에 R&D 센터를 직접 만들어서 관련 인력을 채용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동일한 경력 기간 기준에서 미국 실리콘밸리 인건비는 한국 보다 2.5배 비싸서 부담이 되지만, 캐나다 인건비는 엔지니어 초봉 기준으로 한국 보다 조금 더 높을 뿐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라며 "무엇보다 캐나다는 한국 보다 우수한 설계 인력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어서 선호되는 편"이라고 강조했다.
캐나다 토론토는 일찍부터 정부와 민간 기업의 자금 지원으로 AI 연구 네트워크를 확장하며 AI와 설계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지역이다. 특히 기업이 주도해 설립한 다양한 커뮤니티는 캐나다 스타트업 생태계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북부의 실리콘밸리'로 불리고 있다. 더불어 미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위치는 미주 고객사 확보에 있어서 유리하다는 평가다.
토론토의 또 다른 경쟁력 중 하나는 낮은 임금이다. 미국 노동국과 캐나다 통계국에 따르면 작년 토론토의 IT 직원의 평균 연봉은 샌프란시스코 지역 IT 직원의 평균 연봉(15만 달러)의 절반 수준으로 형성돼 있다.
이런 장점으로 국내 반도체 IP 스타트업 오픈엣지테크놀로지는 한국뿐 아니라 캐나다와 미국에 자회사를 두고 있다. 반도체 IP 스타트업 에임퓨처도 설계 인력 확보를 위해 내년에 토론토에 R&D 연구소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
한편, 글로벌 기업인 인텔도 인재 확보를 위해 2018년 토론토에 GPU 연구소를 세운 바 있다. 반도체 분야 외에도 삼성전자도 2018년 5월 토론토, 10월 몬트리올에 AI 연구센터를 각각 개소했고, 같은해 LG도 토론토에 AI 연구소를 만들었다. 이렇듯 캐나다는 엔지니어 인재 확보를 위한 거점으로 각광받는다.
■ 베트남, 백엔드 설계 기술 뛰어나…낮은 인건비도 장점
업계가 눈을 돌리는 또 다른 곳은 베트남이다. 베트남에서는 최근 석·박사급의 반도체 전문인력이 많이 배출되고, 인건비가 한국보다 낮은 점이 장점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베트남의 반도체 인력은 대부분 일본 업체들이 키워 놓은 인력"이라며 "예전 일본 르네사스, 도시바 등의 업체들이 베트남에서 엔지니어를 뽑아서 교육을 시키며 인력을 잘 키웠지만, 약 5~6년 전 사업을 축소하면서 해고된 인력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베트남 인력들은 습득이 빠르고, 성실하며 이직을 자주 하지 않아서 선호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 엔지니어 채용에 대한 질문에 "중국의 인건비가 낮기 때문에 반도체 엔지니어도 저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라며 "미국 실리콘벨리 출신의 중국 설계 엔지니어들이 자국으로 돌아가면서 평균 인건비가 올라갔고, 우리나라 보다도 더 높아졌다"고 답했다.
베트남 인력은 주로 디자인하우스(DSP)의 백엔드 설계를 담당한다. 일례로 국내 최대 규모인 DSP 업체 에이디테크놀로지는 총 500명의 설계 엔지니어를 보유하고 있는데, 그 중 200명은 베트남 자회사에서 근무하는 현지 엔지니어로 백엔드를 담당한다. 국내 DSP 업체인 코아시아 또한 한국 외에도 베트남, 대만 디자인센터 운영을 통해 총 400명의 엔지니어를 보유하고 있다.
반도체 설계는 ▲초기 설계를 하는 'RTL 엔지니어(프론트엔드)' ▲설계가 제대로 됐는지 검증하는 '베리피케이션 엔지니어' ▲칩에 포팅할 수 있는 형태의 그래픽 데이터로 만드는 '레이아웃 엔지니어/피지컬 디자이너(백엔드)' 과정으로 나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백엔드 업무가 프론트엔드 보다 단순하다는 이유로 대졸 출신 엔지니어들이 해당 업무를 선호하지 않았지만, 최근 16나노 이하의 어드밴스드 공정으로 고도화되면서 백엔드도 중요해졌다"고 전했다.
최근 프론트엔드뿐 아니라 백엔드 엔지니어의 인력도 이전 보다 더 많이 필요하게 됐다. 또 최근 백엔드 엔지니어의 인건비가 오른 것도 이런 이유다.
한편,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분야에서 2030년까지 필요한 인력은 약 1만4천600명 정도다. 반도체 업계의 연간 부족 인력은 2020년 1천621명에 달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향후 10년간 반도체 분야에서 약 3만명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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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시스템 반도체 설계 실무인력(학사급) 양성사업과 인공지능(AI)반도체 고급인재 양성(석·박사급) 사업을 통해 내년부터 향후 5년간 반도체설계구현 실무인재 3천140명을 양성한다는 계획을 지난 5월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