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미국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은 연구개발(R&D) 과제의 결과물로 나온 논문은 즉시 대중에 무료 공개된다.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OSTP)은 연구자금을 집행하는 연방 부처와 기관들에 대해 2025년까지 미국 공공 자금 지원을 받아 수행된 R&D의 결과물을 일반에 무료 공개하도록 관련 방침을 수정하라는 정책권고안을 최근 발표했다.
특히 영리 목적 학술지가 정부 지원을 받은 연구 과제로 산출된 논문을 12개월 간 유료 판매할 수 있도록 한 기존 유예 기간도 폐지된다.
이에 따라 매해 전 세계에서 나오는 과학 학술 논문의 10% 가까이 되는 미국 정부 자금 지원 논문에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OSTP는 2020년 한해 동안 미국 정부의 연구 자금 지원으로 19만 5천 건에서 26만 3천 건의 논문이 나온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그해 전 세계에서 나온 논문 290만 건의 7-9%를 차지한다.
미국은 1980년대 레이건 전 대통령 재임 시기부터 학술 정보의 대중 공개를 확대하는 정책을 취해 왔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3년 연간 1억 달러 이상의 R&D 자금을 집행하는 연방 부처 및 기관에 대해 정부 지원을 받은 연구결과의 대중 공개를 확대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당시 20여개 기관이 이 지침의 대상이 됐다.
미국 국립암연구소는 2019년 '암 문샷(Cancer Moonshot)' 연구 프로그램의 자금 지원을 받은 논문은 무료 공개하도록 했다. 학술지 출판사들은 2020년 코로나19에 대한 연구 논문은 한시적으로 오픈 액세스로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개하기도 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새 지침을 통해 논문을 공개해야 하는 기관을 R&D 자금을 집행하는 정부 기관 전체로 확대했다. 또 당시 학술지 출판사들의 반발을 달래기 위해 실시한 무료 공개 1년 유예 정책도 폐지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학술 논문의 대중 공개 정책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그는 2016년 미국 암연구협회 행사에서 "매년 미국 시민의 세금 50억 달러가 암 연구에 투입되는데, 그 결과 출간되는 논문은 대부분 유료 구독을 해야 볼 수 있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유럽에서도 학술 지원 기관 컨소시엄인 '코울리션S'가 2025년 발효를 목표로 '플랜S'라는 오픈 액세스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연구재단과 과총 등을 중심으로 정부 지원을 받은 연구 성과의 오픈 액세스 공개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백악관 OSTP의 이번 지침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논문 출간 및 수익 모델을 취해야 한다는 등의 세부 사항은 빠져 있다. 학술 정보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뜻하는 '오픈 액세스(Open Access)' 대신 '공개 접근(Public Access)'이라는 표현을 쓰는 등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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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액세스 흐름을 조금씩 반영하면서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던 주요 학술지 출판사들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어떤 학술지는 정부 자금의 지원을 받은 논문의 비중이 적고, 일부 도서관은 검색 기능이나 사용자 환경이 편리한 학술지라면 구독 의사를 밝히는 등 학계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상황은 제각각이다.
사이언스는 "이번 조치가 학술지나 출판사, 연구자들에게 어떤 재정적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기는 어렵다"라면서도 "욕조 안의 고래인 미국 정부의 방침인만큼 세계 학계에 무시 못할 효과를 일으킬 것"이라는 스테파노 버투지 미국미생물학회 CEO의 발언을 인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