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상 잠잠할 틈이 없는 것이 가상자산 시장이다. 새로운 금융의 중심이 될 것으로 촉망받아 자본이 몰리다가도 투자금이 급속도로 빠져나가고, 업체 파산까지 이르게 되는 것은 한 순간이다. 거시 경제 변화, 규제 허점 또는 업계 인력의 부적절한 인식에 따른 각종 사건사고가 빈번히 나타나는 중이다.
이점은 살리고 폐해는 없애기 위해, 각국 당국들은 가상자산을 어떤 방식으로 제도권에 편입할지 고심하고 있다. 가상자산 '먹튀(러그풀)', 수준 이하의 보안 체계로 인한 가상자산 탈취 사고, 기존 금융 규제의 취지와 어긋나는 방식의 사업을 통한 수익 창출 등을 방지하기 위해 규제안을 마련하고 있다.
가상자산 수탁(커스터디) 사업자인 인피닛블록의 정구태 대표는 이 과정에서 가상자산 수탁이 다방면에서 의무화될 것으로 관측했다. 가상자산을 안전하게 보관해주는 전문 업체가 있어야, 각종 리스크에서 벗어나 투자자가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수탁은 기본적인 금융 인프라의 성격을 띠는 만큼, 전통 금융업의 노하우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인피닛블록은 시중은행 출신인 정구태 대표와 은행, 핀테크 업계 출신 인력이 모여 지난 3월 설립한 회사다. 오랜 시간 축적된 금융업계의 자산 관리 역량 및 금융 규제에 대한 이해도가 전제돼야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수탁 사업자로 거듭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가치관을 토대로 사업 파트너를 물색한 결과, 가상자산 수탁사 중에서는 처음으로 증권사, 지방은행의 지분투자를 받는 성과를 거뒀다.
정구태 대표에게 창업 배경과 가상자산 수탁 시장에 대한 전망, 사업 계획을 들어봤다.
Q. 가상자산 수탁 회사를 창업한 배경은?
"시중은행에서 핀테크와 블록체인 관련 신사업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은행이랑 제일 잘 맞는 사업으로 커스터디를 점찍었는데, 규제 상 은행은 직접 가상자산 커스터디 사업을 할 수 없다. 때문에 대안으로 합작 법인을 설립했다. 합작 법인을 통해 사업을 해보니 가상자산 커스터디는 결국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적 수단을 활용하는 금융업의 일환이라 느꼈다. 가상자산사업자(VASP) 제도 상 정의도 읽어보면 사실상 금융업자에 대한 얘기이고, 가상자산 관련 정부 업무도 금융위원회가 항상 주관하잖나. 그런데 은행이 대주주가 되지 못하고 지분 참여만 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금융업의 본질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는 은행권, 핀테크 인력들과 함께 창업을 하게 됐다."
Q. 먼저 시장에 진출한 여러 가상자산 수탁사들과 어떤 차별점을 두려 하나.
"블록체인 회사가 대주주이거나, 블록체인 업계 인력 중심의 회사들은 금융업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편이다.
가령 VASP 신고 수리 과정에서 당국은 자산 관리 실태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본다. 그게 사업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금융업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이 부분에 엄청 공을 들이고 싶어한다. 신고 수리 여부를 떠나 결국 자산 관리 역량이 사업 성공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신고 수리' 자체를 중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수리만 되면 된다는 식인거다.
업계의 이런 경향성은 테라-루나 사태와도 맞닿아 있다고 본다. 사기를 치려는 의도가 없었더라도, 금융업에 대한 관점과 노하우가 없다 보니 말도 안되는 사건들이 발생한다. 금융사 DNA를 가진 회사보다 시장 공략 속도는 빠를지언정 당국이 들여다보면 실망하는 일이 잦다. 핀테크 업계에서도 이런 사례가 많았는데, 핀테크보다 더 규제가 없는 블록체인 회사들은 더 심한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결국 금융업 경력이 있는 회사가 시장에 진출하는 게 가장 좋은 건데 이는 규제로 막혀 있다. 그 다음으로 좋은 방법이 (저희처럼) 금융업계 출신 인력이 참여하고, 금융사의 투자를 받아 사업 노하우를 이식받는 것이다. 커스터디는 특히 가장 기본적인 금융 인프라로서 신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보통 스타트업은 벤처캐피탈(VC)에서 투자를 받는데 저희는 핀테크혁신펀드과 SK증권, 대구은행 등 금융기관으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신뢰도가 높은 금융기관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해야 회사의 신뢰성을 증명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Q. 가상자산 수탁사 중 처음으로 지방은행, 증권사에서 투자를 받았다. 어떤 논의를 했나.
"코인 외 증권형토큰(STO)과 대체불가토큰(NFT) 시장에서 나타날 기회도 눈여겨보고 있다. 그 중 STO는 전통적 금융과 가상자산의 특성을 모두 갖고 있고, 증권사들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뮤직카우를 계기로 당국이 디지털자산기본법 또는 다른 법을 통해 STO 시장에 대한 규제를 논의하게 될텐데, 규제를 면밀히 분석해 그 안에서 새로운 사업 모델을 구축하려 한다. 이 사업을 증권사랑 협업하고 싶었다. 회사 주주사를 구성하면서 가상자산에 관심이 있는 은행, 증권사를 모두 만나봤는데 SK증권은 특히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았다. 사업 방향성에 대한 공감대를 갖고, 지분투자를 해줬다.
DGB대구은행의 경우 지방은행의 한계점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기 위해 가상자산 시장을 주로 살펴보고 있던 차였다. 은행이란 플레이어가 반드시 필요한 저희 입장에선 협업을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지방은행은 은행업의 신뢰성, 안전성을 갖추면서도 시중은행보다 빠른 판단과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는 게 강점이다. 인피닛블록 설립이 5개월 정도 된 점을 감안하면 5개월도 안돼 투자를 결정한건데, 시중은행 같으면 꿈도 못 꾸는 일이다. 이런 강점을 통해 가상자산 시장을 빨리 배우고, 함께 공략할 수 있겠다고 봤다. DGB대구은행은 카드사도 겸하고 있어 사업 확장의 여지가 더 클 수 있다."
Q. 가상자산 수탁 시장 공략 계획은?
"거래소는 국내 시장에서 특히나 절대적인 플레이어다. 시장 전체 규모 70조원 중 55조원이 거래소에 있다. 중요한 고객사가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거래소에 자산이 집중됨에 따라 나타나는 문제가 있다. 횡령, 배임, 해킹, 내부자 소행 등의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생긴다. 리스크를 줄이려면 거래소의 운용 자산과 고객 자산을 분리해야 한다. 금융 쪽에선 일반화된 방식이다. 증권사가 펀드를 만들면 모은 투자금을 수탁사로 선정한 은행에 맡기고, 데이터만 운용하듯이. 수탁사를 활용해 사고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안이 향후 디지털자산기본법에 담길 것으로 예상한다.
거래소 다음으로는 가상자산 재단이다. 마찬가지로 해킹, 횡령, 배임, 내부자 소행 등의 위협에 노출돼 있고, 계속 문제가 되고 있다. 밝혔던 수량보다 더 많은 수량의 코인을 재단이 갖고 있거나, 거래소 상장 이후 대량 매도를 해 가격이 대폭 떨어지는 사례 등이 나오고 있다. 재단 보유 물량을 수탁사에 맡기면 이를 실시간으로 체크할 수 있다. 가상자산 공시 서비스도 가능하다. 사후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정보가 틀릴 가능성도 있는 유사 서비스들과 달리, 재단 지시를 받아 코인을 관리하기 때문에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사전에 제공할 수 있다.
법인 투자자도 주 공략 대상이다. 코인베이스 사례를 보면 2018년 기준 법인의 투자금 비중이 18%였는데, 작년 69%까지 높아졌다. 우리나라도 법인의 투자 활로가 열리면 시장이 비슷하게 변화할 거고, 그렇게 돼야 한다. 개인이 밤낮 없이 코인을 사고 팔 필요 없이, 법인과 개인이 리스크와 투자 수익을 나눠갖는 모델이 정착될 필요가 있다. 수탁사를 활용하면 가상자산 거버넌스 카운슬(GC)에 참여하는 기업들의 코인 관리도 보다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여러 사람들의 합의에 따른 의사결정에 따라 관리되는 시스템을 수탁사가 제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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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VASP 신고 수리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예비 인증을 받고, VASP 신고 수리가 되면 ISMS 본 인증을 받는 것이 규제 상 순서다. ISMS 예비 인증 접수가 시작되는 8월 말부터 절차를 시작하면 내년 초쯤 VASP 신고 수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