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대부분은 ‘놀다’와 ‘일한다’는 말이 공존할 수 없다는 명제에 동의할 것이다. 우리는 놀기 위해 일한다. 일이 끝나야 놀 수 있다. 또 능률을 높이고자, 휴가를 떠나며 충전의 시간을 보낸다. 일하기 위해 논다는 말도 성립하겠다.
그렇다면 놀면서 일할 수는 없을까. 있다. 팬데믹 이후 기업 근무방식이 재택 형태로 전환된 데 이어, 최근 정보기술(IT) 플랫폼 기업과 스타트업 등에서는 ‘워케이션(workcation)’ 제도 도입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워케이션은 일(work)과 휴가(vacation)를 함께한다는 의미다.
회사를 벗어나, 휴양지나 원하는 장소에서 자유롭게 일하는 근무 문화다. 국내 대표 인터넷 기업 네이버는 현재 강원 춘천에 있는 연수원과 일본 도쿄에서 워케이션을 실시하고 있다. 라인플러스와 당근마켓, 야놀자, 티몬 등도 시행하고 있다.
4박5일간 호텔서 '워케이션'
직장생활 3년차인 기자는 처음으로 즐기며, 업무하는 상반된 일을 병행해 봤다. 직업 특성상 취재 일정을 고려해, 지난달 19~20일 이틀간 강원 강릉에서 워케이션을 체험하기로 했다. 더웨이브컴퍼니의 ‘일로오션’ 프로그램을 경험해본 것.
위치는 강원 송정해변 근처의 한 3성급 호텔이다. 3시간 자동차를 끌고 강릉으로 향했다. 1분1초 촌각을 다투는 분주한 도심을 떠나, 고즈넉한 강릉의 분위기를 흠뻑 맞으며 짐을 풀고 일할 채비를 갖췄다. ‘빨리 일해야겠다’는 의욕이 용솟음쳤다.
더웨이브컴퍼니가 선보이는 워케이션 ‘일로오션’ 기본 구성은 이렇다. 서울, 수도권에 있는 회사 직원들은 일요일부터 금요일까지 4박5일 동안, 더웨이브컴퍼니와 제휴한 강릉 송정해변 인근 호텔에 숙박하며 자유롭게 일한다.
바닷바람 쐬며 야외 근무도 가능
호텔 로비엔 책상과 복사기, 업무용품 등이 마련됐다. 또 이동용 책상과 의자, 그리고 휴대용 와이파이를 제공, 원한다면 언제든 야외에서도 자유롭게 업무 환경을 구축할 수 있다. 호텔에서 조금만 걷다 보면, 강문해변과 경포대가 보인다.
기자는 바다 앞에 책상을 펼치고, 모래사장에 의자를 앉혔다. 노트북 충전용 파워뱅크가 있어, 일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꽤 더운 날씨였지만, 바닷바람 덕분에 땀이 금방 식었다. 평일 오후 시간대 인적이 드물어, 귓가엔 파도 소리만 울렸다.
빨리 업무를 마치고, ‘워(work)’보다 ‘케이션(vacation)’을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업무에 가속이 붙었다. 해가 저물 무렵 노트북 화면을 보기 불편한 까닭에, 호텔 로비로 다시 이동해 일했다.
일을 끝낸 후 노트북을 덮고 살랑이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산책했다.
"워케이션=행복…업무 효율 높다"
다음 날 아침. 일로오션 프로그램 중 하나인 또 다른 업무 공간인 '파도살롱 명주점'을 방문하려던 찰나, 직장인 두 명을 만났다. 서울에 본사를 둔 H회사 마케팅·재무팀 소속 직원들이었다. 2인 1조로 워케이션을 신청, 체험 사흘 차를 맞았다고 했다.
워케이션 소감을 묻자, 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행복하다"고 답했다. H회사 직원 A씨는 “재택근무 때문인지, 자율적인 근무가 익숙하다”면서 “업무 시간엔 로비나 야외에서 자유롭게 일하고, 이외 시간은 온전히 노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 아직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 워케이션 도입이 초기 단계라, 회사에서도 일보단 휴식을 취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는 의견을 냈다. H회사 직원 B씨는 “서울에서 2시간 소요되는 일을, (이곳에선) 빨리 마치고 놀고 싶단 생각에 1시간 만에 끝냈다"고 했다.
이들은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회사라면, 얼마든지 워케이션이 가능할 것"이라면서 "예상외로 업무 효율이 높고 개개인 자율성이 보장돼, 애사심을 제고할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총평] "부서·업무 따라 워케이션 효율 상이할 것"
더웨이브컴퍼니는 강릉 명주동에 또 다른 업무공간인 ‘파도살롱’을 선보이고 있다. 24시간 운영되는 공용 사무실로, 강릉 시내와 인접한 장점이 있다. 갑자기 시끌벅적한 도심이 그립다면, 파도살롱을 선택해도 괜찮을 법하다.
강릉 선교장에 있는 오르간 연주 투어를 보며, 놀면서 일하는 일로오션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마무리했다. 이틀 동안 강릉에 머물며,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을지 골몰하며 취재했다.
정리해보면, 사내 부서·업무별 성격에 따라 워케이션 근무 효율은 상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택근무 활성화가 가능한 기업이라면, 워케이션이 대표 근무 문화로 스며드는 데 용이할 것이란 얘기다.
구성원 간 잦은 소통이 필요한 신생 스타트업의 경우도, 워케이션은 유대감을 형성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데 있어,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된다. 거점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자재로 일할 수 있단 점은 능률 향상의 촉매제로 역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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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멀티태스킹' 능력이 부족한 직장인이라면 근무 집중도는 되레 감소할 수 있다. 산책과 달리기를 좋아하는 기자에겐 바다 앞 산책로를 목전에 두고 일하는 건 곤욕이었다. 꼼꼼하지 못한 성격이 탄로 날 게 자명했다.
그런데도 유의미한 이틀을 보냈음엔 틀림없다. 살면서 과연 몇 번이나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일해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