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박수형 기자> 배우 이정재의 감독 데뷔 영화 ‘헌트’에는 북으로 첩보 메시지를 전송하는 장면에서 타자기를 닮은 기계가 등장한다. PC통신과 팩스, 그리고 텔렉스 이전에 쓰인 인쇄전신기를 활용한 것이다.
전신기는 흔히 알려진 용도로는 우체국에 설치돼 전보를 주고받을 때 쓴다. 전화기가 없던 시절에 전보는 편지보다 빠르게 원거리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도구였다.
KT 원주 통신사료관에는 이 영화에 쓰인 인쇄전신기를 찾아볼 수 있다. 영화 ‘헌트’에 미술소품 협찬이 이뤄진 그 전신기다.
16일 외부에 처음 공개된 KT 통신사료관은 국가 통신의 역사적 가치가 높은 사료 6천점을 별도로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영화 ‘헌트’ 배경 시기보다 이전에는 모스 부호를 활용했지만, 인쇄전신기가 도입되면서 타자기를 치면서 바로 문장이 전송되는 방식이 구현됐다. 영화에서 표현된 시기의 통신 기술 발전단계를 구현하는데 KT 통신사료관이 힘을 보탠 것이다.
영화 ‘헌트’는 국가정보원 이전과 중앙정보부 이후인 안기부 시절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KT 통신사료관에서 볼 수 있는 통신 역사 자료에서는 비교적 현대에 해당한다.
사료관에서도 아주 오래된 자료는 일부 사진으로 남아있다. 1900년 전산업무와 우편사무가 늘어나면서 통신사업만 담당하는 최초의 관청인 통신원 관원들은 갓을 쓰고 있다.
1902년 우리나라 최초의 공중통신용 전화업무가 시작된 한성전화소 사진에는 전통적인 복장 외에 양복 차림도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서 전화기는 처음 덕률풍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텔레폰(telephone) 영어 표기의 한자식 차용 표현이다. 현대에는 TV나 무선 청소기를 벽에 걸어두는 것처럼 초창기 전화기는 벽에 거는 구조를 택하고 있다.
과거에 전화기는 벽에 걸어두기도 했지만, 전화기를 위한 별도의 가구가 쓰이던 시절도 있었다. 서민들은 물론 부를 갖추고 있을지라도 1930년대에 가정에 전화를 두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이 장식장은 관청과 같은 곳에 쓰이던 것으로 보인다.
가정용 전화기가 보급된 시기는 1980년대 이후다. 그 이전을 영화, 드라마에서 보듯이 전화기는 동네에 하나 정도가 있을 뿐이다. 다이얼식 전화기로 교환원과 통화를 거친 이후 통화를 할 수 있던 시대다. 1970년대 말까지는 전화국에서 지급하는 전화기만 사용됐고, 유선전화 보급화를 이끈 교환기 TDX-1 개발 이후에나 다양한 유선전화기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워졌지만 공중전화기도 시간이 흐르수록 디자인이 많이 바뀐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 공중전화가 처음 설치된 시기는 120년 전이다. 당시 요금은 50전으로, 쌀 다섯가마니 값에 이르는 가치였다.
TDX-1이 국내 통신역사에서 큰 이정표로 회자되는 점은 국내 독자 기술의 자체 설비이기 때문이다.
전자식 교환기 덕분에 전화를 걸면 상대가 바로 받을 수 있는데, 자체 개발 이전에는 외국에 비싼 값으로 의존해야 했다. 세계에서 10번째로 개발한 TDX-1 덕분에 교환원을 거치지 않아도 된 것이다.
TDX-1 이전에는 자석식으로 작동하는 교환기가 쓰였다. 마지막 자석식 시내 교환기는 1987년까지 쓰였다.
통신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눈에 보이는 것은 휴대폰과 PC, IPTV 셋톱박스 정도다. 건물 위에 설치된 무선 기지국 정도도 관심이 있어야 보이는 것이다. 반면 땅 속 또는 전봇대 위의 케이블이 어떻게 생겼는지 일반 대중이 알아보긴 어렵다. 그런 케이블도 일부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사료관에 보관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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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만 하더라도 가정집이나 공중전화부스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책은 전화번호부다. 유선전화 보급의 확산 시기를 상징하는 책자지만 현대 시대의 개인정보 개념을 고려하면 시대의 변화도 느껴진다.
우리나라 통신의 역사에는 체신의 역사도 품고 있다. 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체신부, 정보통신부를 거쳐왔다. 보다 이전을 살펴보면 우체국과 전화국이 한 곳에 있던 곳도 많았다. 통신 역사의 기념비적인 사건을 기념하는 우표도 통신사료관에 보관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