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행위 연기해달라"...아바타 친구의 돌변

[메타버스 성범죄](上)성범죄에 위협 노출된 10대들

인터넷입력 :2022/09/13 17:00    수정: 2022/09/13 17:15

김한준, 김윤희, 김성현 기자

현실 세계와 유사한 또 다른 사회, 경제, 문화생활 공간인 메타버스가 미래 먹거리로 주목받고 있지만, 아동·청소년 이용률이 높단 점을 악용해 성범죄 사례도 덩달아 늘어나는 추세다. 실생활에서 발생하는 범죄행위가 장소만 달리한 채 메타버스에서 가감 없이 벌어지는 형국이다.

지난해 12월. 메타버스 기술 연구 기업 카부니의 니나 파텔 부사장은 자신의 성추행 피해를 호소하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성추행 자체로도 충격이지만, 행위가 벌어진 장소가 현실이 아닌 메타버스였기 때문이다.

메타가 선보인 메타버스 플랫폼 호라이즌 월드 베타테스트에서 니나 파텔 부사장은 서너 명의 남자 아바타에 둘러싸여 성추행과 성희롱을 당했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들은 음성채팅으로 그에게 ‘싫어하는 척 하지 마’라며 언어적 성희롱까지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끔찍한 경험이자 악몽이었다”고 그는 토로했다. 

10대 이용자 피해 사례↑…신체 노출 사진 요구하거나 성행위 강요

국내에서도 유사한 범죄 행각이 포착되고 있다. 전 세계 3억명 이상 이용자의 놀이터로 자리매김한 네이버제트 제페토의 경우, 전체 이용자 90%가량이 10대 청소년이다. 이런 특성상, 주로 아동·청소년을 타깃으로 성(性)적 위협이 가해지는 실정이다.

올 초 여성가족부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발생 추세와 동향 분석’ 결과를 보면, 재작년 온라인을 매개로 한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제작·배포 범죄자는 전년 대비 61.9% 증가한 102명, 피해자는 79.6% 늘어난 167명으로 집계됐다. 피해자 10명 중 3명은 13세 미만으로, 평균 연령은 14세였다.

(사진=지디넷코리아)

실제 일어난 예를 나눠보면 이렇다. 메타버스에서 사용되는 유료아이템을 미끼로 아동·청소년 이용자를 유인해 신체 부위가 노출된 사진을 요구하거나 성행위를 강요하는 등 형태와, 가상공간 내 자아인 아바타에게 직접적으로 (음성) 채팅 등을 통해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방식이다. 

십대여성인권센터에 따르면 사이버또래상담팀이 지난 5월 말부터 보름간 조사한 결과, 30대 성인 남성 A씨는 제페토에서 이용자 수요가 높은 현금 결제형 아이템을 꾐수로 청소년들을 비밀채팅방에 초대해 성적인 대화와 행동을 요구했다.

6명의 센터 상담원이 각기 다른 연령대의 아동·청소년 아바타를 설정한 후, 성 착취 정황을 조사한 결과 30대로 추정되는 남성 4명이 성적 목적으로 접근했다. 한 30대 남성은 아바타를 칭찬하며 접근해 성적 영상을 시청하는지 등을 질문했다. 이어 제페토에서 쓰는 ‘원피스’ 아이템을 선물하며 성관계를 하고 싶은지 노골적으로 물었다.

(사진=십대여성인권센터, 지디넷코리아)

또 다른 30대 남성은 아바타끼리 몸을 겹쳐 ‘야하다’고 말하면서 눕는 행동을 요구하기도 했다. 가해자는 제페토 내 18세 아바타가 치마를 입어 불편해 바지로 갈아입겠다고 하자, 치마가 더 좋다며 자위행위 등을 강요했다.

가상현실(VR) 플랫폼 내 음성·진동 등 통한 오용 사례도

제페토 메시지로 자기 성기 사진을 아동 이용자들에게 보내는가 하면 신체 사진 전송을 거부하자, 헤어지자거나 수위 높은 영상물을 요구한 경우도 있었다. 대화 중 공개된 개인정보를 협박 수단으로, 아동·청소년 거주지를 확인하는 일도 발생했다.

(사진=지디넷코리아)

본인 동작이 메타버스에서 그대로 반영되는 가상현실(VR) 플랫폼, 게임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VR 헤드셋 착용 시 음성 인식이나 진동 등 기능을 탑재한 메타버스 공간에선, 실재감을 오용한 성범죄가 확인됐다.

VR 게임인 'VR챗'의 한 이용자는 "게임에 접속했는데 계속해서 성적인 농담을 던지며 껴안으려고 따라오는 이용자가 있었다"며 "어린아이가 겪거나 콘텐츠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은 여성 이용자라면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5월 미국 온라인 소비자단체 썸오브어스는 호라이즌 월드에서 아바타끼리 접촉할 때 나타나는 진동에 따라 성희롱을 본 피해를 예로 들며, 운영사 메타에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 必"

업계 안팎에선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메타버스에서 성착취자를 발견해도 대처 방법은 내부 신고와 차단 안내 정도”라며 “실제 활동을 제재하지 못해 또 다른 피해를 야기하는 동시에, 신고 처리 기준도 모호하다”고 진단했다.

김상균 경희대 교수는 "물리적 세계와 메타버스에서 피해자가 겪는 피해, 고통에 차이가 없다는 전제하에 법, 지원책이 준비돼야 한다"며 "관할 국가, 법원 규정이 어려워지는 상황이므로 타 국가와 연계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이어 "현상을 명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모니터링, 기록, 분석 등의 작업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 편에 계속…

[글 싣는 순서]

(上) "성행위 연기해달라"...아바타 친구의 돌변

(中) 메타버스 내 성범죄 왜 처벌하기 어렵나

(下) "아바타도 성범죄 대상"...법적 해석 확대돼야

김한준, 김윤희, 김성현 기자khj1981@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