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을 진단받은 이후 사회 구성원으로 ‘제대로’ 정착해 살아가는 이들의 비중은 전체 조현병 당사자 가운데 얼마나 될지 전문가들조차 제대로 추정하지 못한다.
장애등록을 한 환자는 10만 명가량이지만, 실내 국내 조현병 환자의 수는 약 50만 명으로 추정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조현병 당사자의 사회복귀 현황은 아직까지 제대로 조사된 바 없다.
조현병은 100명 가운데 1명꼴로 발생하는 흔한 정신질환이지만, 사회적 편견이 강해 환자 본인이나 가족들이 발병 사실을 알리기 꺼리는 질환이다.
조현병 환자들의 사회복귀를 위한 국가 차원의 재활 노력과 인프라 확충은 과거보다 늘어났지만 상당수는 여전히 장애와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사회 시스템에 편입되지 못하는 데는 이러한 이유도 크다.
때문에 많은 조현병 당사자들은 정신의료기관 등에 속해 살거나 일용직 및 공공일자리 등을 전전하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경우가 많다.
지디넷코리아는 지난 15일 오후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조현병 당사자 및 사회복지사, 의료인,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조현병 당사자가 처한 현실과 이들의 사회복귀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정신장애인, 편견을 넘어 당당히’ 좌담회를 진행했다.
좌담에는 당사자들을 비롯해 ▲이권일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사무총장 ▲이근희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사회재활과 팀장 ▲윤진웅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과 전문의 등이 참여했다.
■ 편견은 의지를 꺽는다
-조현병 당사자의 재활과 사회 복귀를 논하기에 앞서 편견과 고립감부터 짚어보고 싶다.
(당사자B) 군대 훈련소에 들어가 보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훈련소를 나온 후부터 정식으로 진료를 받기 시작했다. 정확히 언제부터 병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렸을 때부터 발달 장애가 좀 있었는데 케어는 전혀 받지 못했다. 스무살이 됐을 때 신체검사 자료를 내려고 병원을 다녔었는데 그 뒤로 계속 조현병 치료제를 복용하고 있다.
(당사자A) 군 상병 때 조울증 진단을 받아 중간에 제대했다. 장애 진단은 그로부터 2~3년 뒤에 받았다.
-가족이 조현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했을 때를 기억하나.
(당사자A) 내 경우에는 동생이 그랬다(조현병이었다). 동생이 발병했을 때엔 쇼크를 많이 받았다. 동생이 확실히 일상적인 감각을 많이 잃어버렸다고 느껴질 정도라 그게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현병 치료 과정 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무엇이었나.
(당사자A) 나는 자주 입원한 케이스는 아니다. 난 살이 많이 쪘다. 살찌는 부작용이 없는 약(조현병 치료제)이라고 들었는데 계속 살이 엄청나게 쪘다.
(당사자B) 애초에 마음이 건강하고, 생활이 건강하고, 행복하면 정신과에 찾아가지 않았겠지. 근데 그런 것들이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 병원을 찾아갔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오픈하고, 마음을 열고 행복하게 사는 적응을 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조현병 발병과 진단, 치료 과정, 그리고 가족과의 관계에서 고립감을 심화시키는 요인은 뭘까.
(윤진웅 전문의) 첫째 질환 특성에 의해 발생하는 고립감이 있을 수 있다. 조현병의 주요 증상은 양성 증상인 망상과 음성 증상이 있다. 망상도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주로 피해망상, 관계 망상이 나타난다. 피해망상은 가족이 자신을 해치거나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관계 망상은 가족이 아닌, 모르는 사람이 자신에게 피해를 입힐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망상 자체로 인해 주위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키게 된다.
그런데 음성 증상 중에는 사회적 위축이라는 것도 있다. 이런 증상이 있는 환자들은 외출을 안 하려 하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꺼린다. 이런 고유의 증상이 있기 때문에 질환 자체에서 발생하는 고립이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질환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나 편견에 기인할 것이다. 조현병 진단을 받게 되면 주변에서 당사자 만나는 것을 꺼려하고, 그 가족들과 얽히는 것조차 피하려는 잘못된 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편견에서 발생하는 고립감이 있을 것이다.
-당사자들은 과거에 편견이나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당사자B) 망상만 없으면 당사자들도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겪었던 차별은 스스로의 피해의식으로, 저만의 생각이지 남들이 정말 그럴 의도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건강하고 잘 하면 남들도 좋게 반응했다.
과거에 난 좀 소심하고 움츠러들어 있었다. 그래서 사회복지사가 지도를 해줄 때도 열등감을 느꼈다. 나도 저들과 똑같은 사람이고 잘 살아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저들은 많이 누리는데 나는 못 누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다 피해망상이었다고 느낀다. 지금은 내가 잘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당사자A) 처음 병원에 입원했을 때 2인실을 배정 받았다. 그런데 같은 병실의 사람들이 내가 정신질환 때문에 입원했단 사실을 알자마자 의사를 불러서 ‘이 환자 위험하지 않냐, 폭력적이지 않냐’고 물어보는 것을 들었다.
-조현병에 대한 편견이 당사자의 재활 의지나 사회 복귀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까.
(이근희 팀장) 당사자들이 스스로에 대한 편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환자들 중 일부는 입원을 하면 불과 20년 전만 해도 이들의 의사결정 능력을 전혀 존중하지 않고, 비인격적으로 대한다든가 결정권을 전혀 주지 않는 병원들이 지금보다 많았다. 이런 편견에서 비롯된 부정적인 취급이 내재화되면서 환자 스스로 자신에 대해 낙인을 찍게 되는 것이 문제를 야기한다.
부모는 자녀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 자체로 심한 좌절감을 겪게 되는데 이것이 또 하나의 편견을 낳는다. 자녀에게 더 이상 어떤 기대도 하지 않게 된다든가, 부모가 스스로 고립을 택하고 주변 인간관계를 모두 단절시키는 선택을 하는 경우들이 있다. 이런 부모의 좌절과 혼돈도 당연히 환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회의 편견은 말할 것도 없다. 비장애인들이 이해해야 하는 정신장애인만의 한계가 있다. 장시간 집중하기 어렵고, 타인과 적극적인 대인관계를 하며 교류하기 힘들다는 특징들이 그렇다. 이런 특징에 대한 배려나 이해 없이 ‘정신장애인이니까 못 따라온다’, ‘그것 봐라, 이런 사람들은 일을 못한다’ 같은 반응을 보인다. 당사자를 존중하지 않고, 하나하나 천천히 알려주지 않고, 함부로 말하는 경우들이 빈번하다. 이런 사회적 편견 때문에 당사자들은 사회 활동을 몇 번 시도하다가 안 되면 쉽게 좌절하게 된다.
과거에 비해 최근에는 그래도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 언론에서 조현병 환자에 의한 사고를 크게 다룰 때도 있지만, 치료받지 않은 환자에 대한 문제는 또 다른 부분이다. 현재 치료 및 재활을 잘 받는 이들이 처한 환경은 그래도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
(윤진웅 전문의) 편견도 여러 측면에서 봐야 한다. 환자 스스로 치료에 대해서 갖는 편견도 있을 것이고, 당사자의 가족들이 치료에 대해 가지는 편견도 있다. 조현병 당사자와 이들의 가족들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선 등 이렇게 여러 각도에서 오는 편견들이 모두 치료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환자가 자신의 질환에 대해서 잘 몰라 치료가 필요하지 않다고 느낄 경우엔 당연히 치료에 방해가 된다. 가족들도 조현병에 대한 경과나 예후에 대해서 잘 모를 경우 계속 치료해도 별로 효과가 없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면 지속적으로 치료를 유지하기가 매우 힘들어진다. 가족들도 쉽게 지치게 되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조현병을 가진 사람은 위험하고,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당사자들의 내원이 힘들어진다. 사회적인 낙인 때문에 대학병원을 제외한 웬만한 정신과 치료 기관들은 주로 외곽에 위치해 있다.
-가족이 조현병일 경우 그 가족들이 직면하게 되는 어려움은 뭘까.
(이근희 팀장) 정신장애인의 가족 대상 교육을 30년 이상 해오고 있는데 가족들의 좌절감이란 말할 수 없이 크다. 특히 당사자의 어머니가 겪는 좌절감은 상당하다. 자녀가 정신장애인이라는 사실로 인해 부모들이 겪는 좌절감과 혼돈은 너무 깊다. 최근에는 교육이 활발해서 다소 개선되었지만, 10년 전 재활기관에서 만났던 부모들은 하나같이 당사자인 자녀와 동반 자살을 시도했던 경험이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당사자의 부모는 특히 일반인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절망감을 겪는다. 현재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운영하는 가족 교육 가운데 당사자 부모님들끼리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런 가족 교육을 통해 서로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부정적인 감정들을 극복하거나 서로 힘이 되어준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가족들이 단체를 이뤄 본인들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는 가족 상담실을 운영 중이다. 이곳에서는 당사자 자녀를 둔 어머니들이 상담사로서 활동한다. 전문가가 상담해주지 못하는 영역, 동병상련의 아픔을 서로 극복하도록 돕고 있는 것이다.
(이권일 사무총장) 전국 17개 지부를 순회하면서 협회에 속한 당사자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족들은 부모가 당사자 자녀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것을 굉장히 힘들어한다. 당사자들도 힘들어하고 보호자, 가족들이 공통적으로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심도 깊은 워크숍을 많이 원한다. 그 자리에서 함께 소통하고 공감하는 기회를 만들기를 원하는 것이다. 아울러 가족들과 진솔하게 대화하고 공감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 한다. 그런데 가족들은 당사자들을 최대한 도우려고 하고, 뭐든지 하겠다는 마음을 갖는데 이런데서 당사자들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회복 가능성에 집중해보면, 회복이 가능하다면 일단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활동이 필요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복지 서비스가 요구된다. 사실 조현병 당사자들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협회는 이 가능성을 살리기 위해 동영상 촬영, 영화 제작, 글쓰기 같은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시도했다. 물론 과연 아이들이 할 수 있겠냐고 묻는 경우도 많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