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한 시니어 개발자들이 하필 '그곳'으로 이직한 이유

[백기자의 e知톡] ‘있어 보이는’ 간판보다 ‘있어야 하는’ 서비스 개발 욕심

인터넷입력 :2022/07/14 08:09    수정: 2022/07/14 16:30

모든 산업군에서 디지털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면서 유능한 개발자를 찾는 기업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특히 한정된 개발 인재풀 안에서 적합한 인재를 영입하고, 고유의 사내 개발 문화를 정착시켜줄 수 있는 '시니어 개발자'들에 러브콜이 이어지는 분위기입니다.

이 중 비교적 최근 자리를 옮긴 시니어 개발자는 조현준 리드(라인)·류형규 CTO(마켓컬리)·장우혁 CTO(캐치패션)를 꼽을 수 있습니다. 개발자 채용이 특히나 더 어려운 때에, 나름 이 바닥에서 성공한 그들이 갖고 있는 이직의 기준과 개발 철학은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인터뷰 기사를 소환, 그들이 했던 말을 다시 한 번 상기하고 정리해봤습니다.

시니어 개발자들이 이직을 결심한 이유(제공=이미지투데이)

■ 조현준 라인 이커머스 기술 총괄 “에너지 넘치는 개발이 좋아”

조현준 전 요기요 최고개발책임(CTO)는 지난 4월 라인의 이커머스 프로덕트 및 기술 총괄직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배달앱 1위 배달의민족에 맞서 6년 간 요기요 개발을 담당했던 그는 라인의 글로벌 이커머스 역량을 끌어올리라는 ‘특명’을 받아 라인플러스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조현준 리드는 과거 SK플래닛/SK텔레콤에서 ‘T맵’ 서비스 개발을 총괄하며 국내 대표 내비게이션 서비스를 만든 ‘파이썬’ 전문가입니다. 조 리드에 따르면, 그가 느끼기엔 삼성전자·SK텔레콤은 ‘투명한 유리벽’과 같았습니다. 어디에 내밀어도 자랑스러운 간판을 가진 기업이지만, 그 화려함과 우리가 최고라는 자부심 탓에 새로운 도전과 혁신에 더딜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T맵은 오랫동안 부동의 1위를 유지했어요. 계속 업데이트 하고 발전 시켜 나가야 하는데 SK 입장에서는 이미 1등이고, 몇 백억 쓴다고 해도 국내 말고는 갈 데가 없었죠. 돈을 쓸 이유가 없었어요.”

조현준 라인 이커머스 프로덕트 및 개발 총괄

그래서 그는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하고, 이로 인한 서비스 변화가 바로 결과로 나타날 수 있는 요기요에서 자신의 재능과 꿈을 펼치기로 결심했습니다. 요기요, 배달통 등 서로 다른 언어로 개발된 시스템을 파이썬 언어로 통합하고 사용자들이 필요로 하고 만족할 수 있는 배달앱으로 성장시켰습니다. 이어 대규모 개발 조직을 꾸리고, 수평적인 개발 문화를 만드는 데 일조했습니다.

얼마 전 라인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일본, 태국, 대만 등 글로벌 시장에서 라인 쇼핑과 선물하기 서비스를 빠른 시간 내에 더욱 고도화할 계획입니다. T맵과 요기요 등의 서비스를 국내에서 성공시켰듯, 이제는 시야를 넓혀 모바일 메신저 라인을 통해 뻗어나갈 글로벌 이커머스 시장에 에너지를 쏟기로 한 것입니다. 모바일 메신저 라인은 이미 완성도 높은 글로벌 서비스이지만, 이커머스 시장은 라인에게 아직도 한창 도전할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에너지 넘치는 개발을 좋아하는 성향을 갖고 있어요. 생각하는 걸 빨리 개발하고 구현해서 사용자 반응을 보고 싶어 하죠. 그래서 사용자들이 좋아하는 걸 더 잘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지난 인터뷰 기사 보기]

■ 류형규 컬리 CTO “대중들이 진짜 필요로 하는 서비스 만들고파”

류형규 마켓컬리 CTO는 SK텔레콤, 엔씨소프트, 카카오 등 국내 대표 IT 기업에서 오랫동안 개발 경험을 쌓았습니다. 이전 직장인 카카오에서 회사의 클라우드 전환과 개발 자원의 효율적 사용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았었던 그는 ‘핫’ 하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작은 회사인 마켓컬리에 작년 가을 합류했습니다.

자신을 ‘현실주의자’로 정의한 류 CTO 입장에서 마켓컬리 입사(?)는 ‘무모한 도전’에 가까웠습니다. “저 회사가 과연 지속가능할까”라는 의구심까지 들었던 그가 결정적으로 마켓컬리를 선택한 이유는 “세상의 좋은 물건을 발굴하는 사람, 이걸 신선하게 배송해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김슬아 대표의 창업 배경 때문이었습니다. 안정적으로 이름난 기업으로 옮겨서 화려한 스펙을 하나 더 추가할 수도 있었지만, 성장하는 회사에 올라타 대중들이 진짜 필요로 하는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 보자는 꿈을 꾸게 됐다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있어 보이는’ 개발보다 ‘있어야 하는’ 서비스를 만들자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죠.

류형규 컬리 CTO

“김슬아 대표를 만나고서 그 동안 내가 지적허영심을 추구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에 좋은 물건을 발굴하는 사람, 이걸 신선하게 배송해주는 일을 하고 싶었다는 김 대표의 창업 배경이 흥미롭게 들렸어요. 마켓컬리를 들여다보니 물류, 배송을 다 다뤄야 하는 어려운 영역이더라고요. 해결해야할 영역들이 많아 재밌어 보였어요.”

류형규 CTO는 높은 연봉도 좋지만, 구성원들의 성장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자신의 비전을 갖고 꾸준히 성장하는 데 목표를 둔 개발자, 그리고 그 가치를 인정해주는 회사의 궁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나아가 새로 풀어야할 숙제들이 많은 곳에 흥미를 가지고, 이런 문제들을 해결했을 때 갖게 되는 노하우가 가장 좋은 복지라고도 말했습니다.

“후배들에게 회사에서 시키는 일로 본인을 속박하지 말고, 회사에서 주는 가치만큼 일하지 말고 시장에서 본인만의 비전을 갖고 스스로 가치를 높이는 일을 하라고 해요. 회사는 이렇게 노력하는 개발자들의 가치를 인정해줘야 하고요.”

[☞지난 인터뷰 기사 보기]

■ 장우혁 캐치패션 CTO “개발자는 망치 전문가 아닌, 건물 짓는 건축가”

명품 플랫폼 캐치패션은 대중적인 인지도 면에서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회사입니다. 이곳에 얼마 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11번가, 구글클라우드 코리아에서 개발 경험을 쌓은 장우혁 CTO가 일을 시작했습니다. 명품 플랫폼 업계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들지 못하는 곳에, 그것도 이전 개발 조직이 단체로 퇴사해 뒤숭숭한 작은 조직에 왜라는 생각이 앞섰는데, 장 CTO가 캐치패션을 선택한 이유는 “내가 풀어야할 숙제가 바로 여기에 있었기 때문”으로 요약됩니다. 서비스뿐 아니라 개발 조직 측면에서 기여할 부분이 있고, 본인의 개발 노하우와 조직 운영 경험을 새롭게 세팅할 최적의 곳으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저도 글로벌 회사의 일하는 방식과 개발자들의 꿈인 브랜드에 편승하고픈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구글에서 코로나 때문에 재택으로 일하면서 고객사들이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고 AI 머신러닝 기술로 비즈니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역할을 했지만 점점 더 욕심이 생겼어요. 나의 문제를 풀지 않고, 왜 남의 문제를 풀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 무렵 캐치패션으로부터 제안이 왔습니다.”

장우혁 캐치패션 CTO

장우혁 CTO가 개발자로서 중요하게 바라보는 건 여러 부서와의 소통 능력입니다. 개발자가 자칫 자기 일에만 몰두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사업이나 서비스 조직과 소통하면서 전반적인 비즈니스를 이해해야 더 좋은 제품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에 장 CTO는 개발조직도 전면 재택보다는 사무실에서 어느 정도 함께 일하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또 그는 높은 연봉과 워라밸을 당장 주기보다, 명확한 비즈니스 문제를 보여주고 스스로 풀도록 권한과 기회를 주는 방식으로 개발자를 성장시키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들의 문제 해결이 실제 회사에 어떤 변화와 성장에 기여했는지를 측정하고 이를 수치화 시켜 개발자의 역량을 객관적 지표로 보여준다는 계획입니다. 

“워라밸을 당장 챙기는 것보다, 명확한 비즈니스 문제를 보여주고 스스로 풀도록 권한과 기회를 주는 것, 그리고 이것이 숫자를 통해 경영 성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결국 개발자에 대한 최고의 복지라고 생각해요. 또 크게 성공한 개발자들은 비즈니스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고 있죠. 개발자는 건물을 짓는 건축가가 돼야지, 망치 전문가가 돼서는 곤란해요.”

[☞지난 인터뷰 기사 보기]

■ 개발자들은 '문제 많은' 회사를 좋아한다

조현준·류형규·장우혁 세 시니어 개발자들이 새로운 일터를 찾는 공통된 기준을 찾아보니 “그곳에 내가 풀고 싶은, 풀 수 있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 사람은 모두 SK 계열사에서 몸담고 누가 들어도 알 법한 서비스 개발에 참여한 공통 이력을 가졌는데요, 그들이 그런 화려한 이력과 금장이 새겨진 명함을 뒤로하고 상대적으로 작은 회사를 선택한 이유. 그건 바로 “사람들이 불편해 하는 그 문제를 내가 직접 풀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었습니다.

내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안정적인 시스템이 갖춰진 회사보다 내가 풀어보고 싶은 뚜렷한 문제가 있고, 그걸 해냈을 때 합당한 보상이 주어지의 여부가 연봉이나 복지보다 더 앞서 보였습니다. “결국 돈 때문이다”라는 말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연봉 높은 회사 스톡옵션을 주는 회사만 찾는 건 아닌 듯 보였습니다.

개발자 자료 사진(제공=이미지투데이)

또 변화에 빠른 조직, 그러기 위해서 맨 아래부터 맨 위까지의 의사결정 구조가 간결하고 빠른 조직을 선호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구성원 간의 수평적인 문화, 주니어 개발자라 하더라도 문제 해결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권한 부여 등도 개발 조직의 필수 요소로 봤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회사의 오너나 대표가 개발 조직에 고유성과 자율성을 충분히 존중하고 보장해 주는 것이 중요해 보였습니다.

관련기사

끝으로 세 시니어 개발자들은 ▲유연하면서도 서로 존중하는 개발 문화를 만드는 것 ▲실력보다 구성원 간 소통에 능한 인재를 영입하는 것 ▲보다 개선된 서비스로 회사 성장에 도움을 주는 것 등의 공통된 미션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화려한 스펙과 성공 경험이 전설로만 끝나지 않고, 새로운 곳에서 또 한 번의 꽃망울을 환하게 터뜨릴 그 날을 기대하고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