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본대학교 연구진이 가오리와 열대어 시클리드에게 간단한 덧셈 뺄셈을 가르쳤다.
이들은 수조 속 물고기에게 파란색과 노란색 도형들이 그려진 카드를 보여주었다. 파란색은 '1을 더하라', 노란색은 '1을 빼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물고기가 네모와 세모 등 파란색 도형 3개가 그려진 카드를 본 후 연결된 다음 수조로 넘어가면, 그곳에는 파란색 도형 4개가 그려진 카드와 2개가 그려진 카드가 있다. 정답을 맞춘, 즉 파란색 도형 4개가 그려진 카드 쪽으로 이동한 물고기에게는 먹이를 주어 보상했다.
각 8마리의 시클리드와 가오리 중 시클리드 6마리와 가오리 4마리가 시행착오 끝에 덧셈과 뺄셈을 배우는데 성공했다. 개별 물고기의 학습 능력은 각각 달랐고, 뺄셈보다는 덧셈을 쉽게 배웠다.
파란색 도형 3개를 본 후 파란색 도형 4개가 그려진 카드와 5개가 그려진 카드를 접했을 때도 4개가 그려진 카드를 택하는 경향이 컸다. 막연히 '많다' '적다'에 따라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1을 더한 값을 선택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실험에 쓰인 도형의 모양이나 크기도 제각각 다르게 해 숫자 계산 외에 다른 변수가 물고기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지 못 하게 했다. 이 연구는 지난 3월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실렸다.
이 연구의 실험 방법은 2019년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실린 벌의 산수 능력에 관한 연구에서 빌어 왔다. 호주와 유럽 공동 연구팀은 Y자 모양의 공간에 벌을 넣고 파란색과 노란색 도형들이 그려진 그림 2개 중 정답 그림을 선택하게 했다. 정답을 맞춘 벌에게는 당분을 주어 보상했다. 벌 역시 덧셈과 뺼셈을 할 수 있음을 보였다.
■ 덧셈 뺄셈을 하는 동물들
수를 이해하고 복잡한 연산을 하는 것은 흔히 인간 고유의 능력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간단한 수준에서나마 수의 개념을 이해하고 계산을 하는 동물의 사례는 여러 번 보고된 바 있다.
일본 교토대 연구진은 원숭이가 뺄셈을 할 수 있음을 보였다. 뚫린 부분이 있는 그릇을 뒤집어 놓고 원숭이가 보는 앞에서 빵 조각을 그릇에 넣었다. 이어 뚫린 부분이 안 보이도록 그릇의 방향을 바꿔 안에 든 빵이 안 보이게 한 후, 원숭이가 보는 앞에서 다시 빵을 꺼냈다. 또 그릇에 빵 2조각을 넣은 후 하나씩, 혹은 동시에 빼기도 했다.
원숭이는 그릇 안에 빵 조각이 남아 있을 때엔 다가가 빵을 꺼내 먹었지만, 그릇에 빵이 없는 경우엔 다가가지 않았다. 뺄셈을 통해 그릇 안에 먹이가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닭은 어떨까? 이탈리아 연구진이 갓 태어난 병아리에 어떤 물건을 보여주어 각인시켰다. 3-4일 후 이 물건 5개를 3개와 2개로 나누어 보여주자 병아리들은 숫자가 많은 쪽을 선택했다. 이어 연구진은 물건들을 불투명한 스크린 뒤에 가리고 병아리가 보는 앞에서 물건들을 이쪽 저쪽으로 옮겼다. 물건을 몇번을 옮기건 병아리는 숫자가 더 많은 쪽을 택했다. 그간 '닭대가리'라는 말을 써 왔던 것이 미안해진다.
영장류, 새, 곤충 등 다양한 종류의 동물이 연산 능력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 생존 위해 숫자 감각 필요
동물에게 숫자를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동물이 야생 환경에서 더하기나 빼기를 할 일이 있을까? 기본적으로는 주변 환경의 변화를 알아채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떼를 지어 사는 물고기들은 보통 더 규모가 큰 무리에 합류하는 경향이 있다. 사자의 영역에 침입자가 있을 경우, 사자는 자신들의 숫자가 침입자보다 많을 때에만 침입자를 공격한다. 서식지에 포식자가 두 마리였다가 한 마리 혹은 세 마리가 되는 것은 동물에게 중요한 정보다.
개미는 집에서 먹이가 있는 곳까지 발걸음 수를 세어 집에 돌아온다는 연구도 있다. 먹이를 찾으러 온 개미를 잡아 다리에 아주 작은 막대기를 붙여 다리 길이를 늘이자, 보폭이 달라져 집을 지나쳐 갔다.
숫자와 그 증감을 파악하는 능력이 생존에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큰 수를 다룬다거나, 복잡한 사고력을 요하는 논리적 문제 해결을 동물에게 기대할 수는 없다. 특정한 수량을 숫자라는 추상적 기호와 연결하거나 '0'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것도 인간에게 압도적인 능력이다.
■ 까마귀가 '0'을 이해한다?
하지만 이런 추상화의 능력이 동물에게 전혀 결여된 것도 아니다. 독일 튀빙겐대학 연구진은 까마귀가 '0'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 같다는 연구 결과를 2021년 '저널 오브 뉴로사이언스(JNeurosci)'에 공개했다.
연구진은 까마귀에게 0개부터 4개까지의 점이 그려진 그림 2개를 컴퓨터 화면에 보여주고 양쪽의 숫자가 일치할 경우 부리로 두드리도록 훈련시켰다. 까마귀는 그려진 점의 갯수가 같은지 구분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점이 그려져 있지 않은 그림의 경우 점이 3-4개 그려진 그림보다는 점이 1개만 있는 그림과 짝을 짓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까마귀가 '0'을 단지 '아무 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1에서 4와 마찬가지로 숫자의 범위에 포함되는 것으로 인식함을 보여준다. 까마귀가 숫자를 볼 때 활성화되는 뇌 부분이 점이 없는 그림을 볼 때도 반응했다.
벌도 비슷한 능력을 보였다. 호주 연구진은 몇 개의 도형이 그려진 카드 2장을 나란히 놓고, 이중 도형 숫자가 더 적은 카드로 가면 설탕물을 주었다. 벌은 도형이 1개 그려진 카드와 도형이 그려져 있지 않은 카드 중에서는 도형이 없는 카드를 택하는 경향이 컸다.
■ 숫자는 유전자에 새겨진 것일까?
'0'의 발견은 수학의 발전을 불러온 인간 최고의 발명품으로 여겨진다. 사람도 어린 시절에는 0의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사람 고유의 능력이라 여겨진 수와 연산, 추상화 능력 등이 사실 다양한 동물에게도 나타난다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인류가 곤충이나 새의 공통 조상에서 갈라진 것은 각각 6억년 전과 3억년 전이다. 이들의 뇌엔 인간의 뇌에서 계산에 관한 일을 하는 신피질 두정엽이 없다. 벌의 뇌 세포는 100만개에 불과하다. 그럼에도이들은 숫자 관련 능력을 발전시켜 왔다.
동물이 환경에 맞춰 숫자 개념을 이해하는 능력을 각자 진화시켜 온 것인지, 혹은 생명 역사의 초기에 나타난 먼 조상 생명체부터 유전자에 숫자에 관한 능력이 새겨져 있던 것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또 동물이 숫자를 인식하는 방식이 사람과 같은지도 현재로선 결론 내리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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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물고기는 숫자를 셀 수 있는가?(Can Fish Count? What Animals Reveal About our Uniquely Mathematical Minds)라는 책을 낸 브라이언 버터워스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교수는 해외 과학기술 매체 아스테크니카와의 인터뷰에서 "초파리와 사람은 시간을 감지하는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 시간을 감지하는 유전자가 있다면 숫자에 관한 유전자가 없으리란 법도 없다"라며 "하지만 아직 우리는 숫자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트텐토대학 지오지오 발로리티가라 교수는 과학매체 노틸러스에 "숫자 유전자에 대한 연구가 이 분야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