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아닌 분유 대란...엄마 젖 대신하는 인공모유 시대 올까

배양육 기술 등 활용한 인공 모유 도전하는 세계 스타트업들

과학입력 :2022/05/17 16:37    수정: 2022/05/18 14:14

지금 미국은 분유 대란을 겪고 있다. 대형 분유제조사 애봇의 제품에서 바이러스가 나와 이 회사 생산 라인이 멈춘 데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에 따른 공급망 정체와 구인란이 겹쳐 분유 추가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장조사회사 데이터셈블리에 따르면, 미국 분유 품절율은 43%에 달한다. 마트 100곳 중 43곳은 분유가 떨어졌다는 의미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에서 영아들이 분유를 못 먹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16일(현지시간) 애봇이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생산 재개에 합의했지만, 분유가 매장에 깔리기까지 6-8주는 소요될 전망이다. 

2022년 5월10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 주의 한 매장의 분유 코너 선반들이 비어 있다. (로이터=뉴스1)

분유는 정부의 엄격한 규제를 받는 품목이고, 애봇과 네슬레 등 거대 식품기업 4개가 시장을 과점하고 있어 빠른 대응이 어렵다. 가장 보수적이고 변화가 더딘 산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분유 산업에도 혁신의 기운은 일고 있다. 우유를 주성분으로 만드는 분유가 아니라 아예 엄마 젖을 모방한 '인공 모유'를 만들려는 스타트업들의 시도가 눈길을 끈다. 동물 세포에서 배양육을 만들듯 실험실의 유방 세포에서 젖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아기에게 모유를 먹일 사정이 안 되는 상황에서 엄마 젖에 가장 가까운 대안이 될 수 있고, 분유 원료인 우유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목축업의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2026년 지금의 2배 수준인 1030억 달러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세계 분유 시장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다.

세계 분유 시장 전망 (자료=Fortune Business Insights)

■ 엄마 가슴 대신...인공 모유 도전하는 스타트업

미국 바이오밀크와 싱가포르 터틀트리는 세포 배양 방식의 인공 모유 생산에 도전한다. 동물 줄기세포를 배양해 근육세포로 분화시켜 단백질 조직을 얻는 배양육과 비슷하게, 사람의 유선 세포를 반응기에서 키워 모유를 얻는 것이다.

라일라 스트릭랜드 바이오밀크 창업자는 2013년 마크 포스트 마스트리히대학 교수가 세계 최초의 배양육으로 만든 햄버거를 TV 생중계로 소개하는 모습을 보고 인공 모유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 회사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기후변화 해결에 기여할 기술을 가진 기업에 투자하기 위해 만든 브레이크스루에너지벤처스 등으로부터 35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바이오밀크 연구진이 인공 모유 생산 연구를 하고 있다. (자료=바이오밀크)

바이오밀크는 지난해 "세계 최초로 세포 배양 인공 모유생산에 성공했다"고 밝혔으며, 향후 3-5년 사이에 상용 제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터틀트리는 세포 배양 기술을 활용해 인공 우유 등 낙농 제품과 인공 모유를 생산한다는 목표로 출범한 스타트업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말 VERSO캐피탈로부터 3천 만 달러를 유치했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 연 R&D센터와 제품 상용화 등에 자금을 투입한다.

미국 뉴욕대에서 식품영향학을 가르치던 로카 카츠가 창업한 헬레이나는 발효 방식으로 모유 주요 구성 성분을 생산하는 기술을 보유했다. 효모균을 조작해 모유에 있는 것과 거의 같은 단백질을 생산하게끔 한다.

모유에 함유된 주요 단백질 성분 생산 기술을 하나씩 확보하고, 면역 강화 기능을 추가할 계획이다. 지난해 말, 스파크캐피탈 등으로부터 2천 만 달러를 유치했다.

미국 퍼펙트데이, 이스라엘 윌크, 108랩스 등 인공 우유 생산에 주력하는 스타트업도 있다. 뉴컬쳐라는 회사는 인공 우유로 모짜렐라 치즈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 인공 모유, 잠재력과 과제

인공 모유 기업은 알파락토알부민이나 락토페린 등 단백질 등 모유 주요 성분을 상당 부분 재현했음을 강조한다. 건강이나 직업 문제 등으로 모유를 먹이기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연간 탄소 배출량의 4%를 차지하는 목축업을 보다 친환경적으로 바꿀 수도 있다.

물론 인공 모유 개발사들도 실제 모유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는 입장은 아니다.

모유는 단지 특정 성분들의 총합은 아니다. 인공 모유는 모유가 가진 면역 기능을 재현하기 어렵다.  모유에는 아기의 면역 기능을 돕기 위한 항체나 장 건강에 도움을 주는 미생물도 포함되어 있다.

또 모유는 더운 날에는 아기의 수분 보충을 위해 수분 함량이 높아지는 등 엄마와 아기의 상태, 환경에 따라 맞춤형으로 성분이 바뀐다. 인공 모유는 이런 점을 모방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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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유 수유는 엄마와 아기의 교감을 통해 정서를 안정시키고 정신 건강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대학 연구진이 모유 수유 관련 연구들을 분석해 '여성건강저널(Journal of Women's Health)'에 실은 논문에 따르면, 대부분의 연구가 모유 수유가 산모의 정신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만, 산모가 모유 수유에 어려움을 겪으면 도리어 정신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인공 모유는 이런 상황에서 기존 분유 외에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공정 개선을 통해 생산 단가를 상용화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복잡한 규제를 해결하는 것도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