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 위기가 촉발한 공급망 위기로 결국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역전했다. 당분간 경유 가격 오름세는 지속될 전망이라 경유차 수요 역시 감소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 11일 전국 평균 경유 가격은 1천947.6원으로 휘발유 가격(1천946.1원)을 넘어섰다.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역전한 건 지난 2008년 이후 14년 만이다. 이후에도 경유 오름세는 지속됐다. 오피넷에 따르면 16일 전국 평균 경유 가격은 1970.51원으로 1958.73인 휘발유 가격보다 비싿. 특히 서울 지역 경유 가격은 더욱 심각하다. 전국 평균 경유 가격보다 약 60원 가량 높은 2017.91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 되면서 석유 수급 불안이 가중되고 있는 탓이다. 더구나 유럽은 전체 경유 수입의 60%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어 가히 경유 대란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제적으로 경유 가격이 고공 행진을 보이는 탓에 자연스레 국내 경유 가격도 인상 여파를 떠안은 셈이다.
특히 경유는 디젤 승용차를 비롯해 화물차·버스·농기계·건설장비 등에도 쓰이고 있어 우려는 더욱 커진다. 경유 가격 인상을 시작으로 물가 상승까지 부채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경유 가격 안정책을 내놨다. 지난 15일 추경호 국무총리 직무대행(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장관간담회'를 열고 "최근 경유 가격 오름세에 대응해 운송·물류 업계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경유 유가연동보조금 지급 기준가격을 현행 리터당 1천850원에서 인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경유 자동차 경쟁력이 저하되면서 '자연 도태' 수순의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와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승용차 시장에서 경유 모델 판매량은 4만3천517대(국산 3만4천593대, 수입 8천924대)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7만4천346대(국산 6만1천516대, 수입 1만2천830대)보다 41.5%나 감소했다. 올해 1분기 판매 역시 13.5%로 2008년 18.5% 가량 내려앉았다. 전기차·수소차 등 친환경 차량에 대한 소비자 구매 욕구가 올라가고 있고 경유 가격 도 크게 상승하면서 앞으로도 저조한 판매량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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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화석연료 가격 상승이 탄소중립으로 전환하는 모멘텀을 제시할 수 있다"면서도 "단기적으로 경유차량이 부진 중이지만 시장 상황에 따라 다시 경유 가격이 인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정 교수는 이어 "이번 사태의 핵심은 서방이 러시아에 대한 수출 제재를 언제 완화할 것인가에 달려있다"면서 "만일 제재가 동절기까지 이어질 경우 경유 차량의 도태는 더욱 빨라질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