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런 머스크 테슬라 CEO가 트위터를 인수한다. 트위터 플랫폼에서 거대한 1인 미디어를 일군 그가 이제는 아예 플랫폼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머스크가 트위터 인수를 위해 들고 나온 명분은 '표현의 자유'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엔 '표현의 자유'가 필수"인데, 현대의 가장 중요한 "디지털 '공론장(public square)'인 트위터에서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고 있다"는 문제 의식이다.
최근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에선 자유로운 표현보다는 '콘텐츠 관리'를 강조하는 추세가 이어졌다. 가짜뉴스와 혐오, 사이버 괴롭힘을 퍼뜨리고 정치·사회적 양극화를 부추긴다는 비판이 계속 높아졌기 때문이다. 대체로 미국 민주당 등 리버럴 계열은 엄격한 콘텐츠 관리를 요구하고, 공화당 등 보수 계열은 이에 따른 표현의 억압에 문제를 제기하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머스크가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며 트위터를 인수하자 논란이 폭발했다. 현재 미국 정치의 맥락에서 '표현의 자유'는 보수파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실제로 보수 또는 진보에 대한 차별이나 우대, 검열, 편파적 처분이 있을까?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만든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은 트위터가 사용자 표현을 검열했기 때문에 생길 수 있었다. - 일런 머스크가 올린 트윗에서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복잡한 추천 알고리즘으로 각 사용자에게 맞춤 콘텐츠를 제공한다. 개별 사용자가 겪은 '경험'을 전체의 경우로 일반화하기 어려운 이유다. 특정 정파에 대한 차별이나 검열을 주장하는 근거는 특정 사용자의 일회성 경험인 경우가 많다.
개인의 주관적 경험을 넘어, 소셜미디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체계적 과학적으로 접근해 연구하기란 쉽지 않다. 소셜미디어의 추천 알고리즘도 공개되어 있지 않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과학자들은 소셜미디어 연구를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 과학은 머스크가 우려하는 트위터의 '표현의 자유' 문제에 대해 무엇이라 답할까?
■ 소셜미디어 알고리즘, 자극적 발언 통한 양극화 부추긴다
우선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가 '좋아요'와 공유 등의 보상을 통해 공격적, 당파적 표현을 부추긴다는 점은 많은 연구가 공통적으로 보여준다.
캐나다 위니펙대학과 미국 스탠포드대학 등 연구진이 2009-2019년 사이 미국 상하원 의원들이 올린 트윗 130만 개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한 결과, 무례한 내용의 트윗이 이 기간 중 23% 늘어났다.
무례한 트윗이 '좋아요'와 '리트윗'을 더 많이 받기 때문으로 연구진은 분석했다. 긍정적 피드백 때문에 정치인의 트윗이 더 거칠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정치 성향에 상관 없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었지만, 특히 리버럴 민주당 의원들의 트윗이 가장 많이 거칠어졌다. 이 연구는 지난달 학술지 '사회심리 및 인격 연구(Social Psychological and Personality Science)'에 실렸다.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 연구진은 '도덕적 분노'를 드러내는 트윗이 더 많은 반응을 끌어내고, 이런 보상을 맛본 사용자는 자극적 발언을 더 많이 하게 됨을 밝혔다. 이 연구는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Science Advances)에 실렸다. 몰리 크로켓 예일대 교수는 "정치적 중도파 네트워크에 있는 사람들이 (좋아요 등) 피드백에 가장 민감히 반응해 발언 강도를 높여나갔다"라며 "소셜미디어가 보상을 통해 중도적 그룹을 극단적 성향으로 바꾸는 메커니즘이 있다"라고 말했다.
영국 캠브리지대학 연구진도 상대편 정파에 대한 반감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게시물이 가장 큰 반응을 끌어낸다는 사실을 학술지 PNAS에 발표했다.
이는 우리가 소셜미디어에서 경험적으로 느끼는 바와 비슷하다. 페이스북 내부 고발자 프란시스 하우겐이 폭로한 문서에도 외국 정당 관계자가 "공격적 게시물이 더 많은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에 갈등을 키우는 글을 더 많이 올리게 된다"고 우려를 표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 플랫폼은 진보-보수 차별하나?
그렇다면 플랫폼이 이렇게 문제가 되는 게시물을 다룸에 있어 진보와 보수 사용자 사이 차별이 있을까? 이는 알고리즘 추천 등 게시물 전파에 차별이 있는지와 문제 계정 정지 등 사용자 규제에 차별이 있는지로 나눌 수 있다.
게시물 전파 측면에서는 도리어 보수 성향 게시물들이 더 많이 확산된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지난해 10월 트위터 연구원들이 7개국 정치인들의 트윗 수백만 개를 조사해 발표한 연구도 같은 결과를 보여준다. 트위터 타임라인은 알고리즘 추천으로 트윗을 노출하는 '홈' 방식과 최신 트윗부터 순서대로 노출하는 방식이 있다.
정치 성향에 상관 없이, 정치인들의 트윗은 알고리즘 기반 타임라인에서 더 많이 노출됐다. 알고리즘의 증폭 효과는 있다는 의미다. 또 미국, 일본, 영국 등 조사 대상 7개 국 중 6곳에서는 우파 정치인들의 트윗이 알고리즘의 덕을 더 많이 봤다.
루먼 초드리 트위터 머신러닝윤리팀 책임자는 "트위터는 플랫폼과 사람의 상호작용의 결과이므로 이런 차이가 왜 생기는지 답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밝혔다.
미국 뉴욕대 연구진도 소셜미디어의 보수 성향 게시물 검열은 근거 없는 주장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일본 도쿄대 연구진은 보수 트위터 사용자들이 중도 사용자와 더 밀접한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 트위터에서 보수파 목소리가 더 높다는 연구 결과를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했다.
반면 계정 정지는 보수 성향 사용자가 훨씬 많이 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MIT와 영국 엑스터대학 등 공동 연구진은 친공화당 및 친민주당 성향 트위터 사용자 9천 명을 2020년 대선 이후 6개월 간 추적 조사했다. 이 기간 친민주당 사용자는 4.9%만 계정 정지를 당한 반면, 친공화당 사용자는 19.1%가 정지 당했다.
하지만 보수 성향 트위터 사용자는 신뢰도가 의심스러운 사이트의 기사를 더 많이 공유했다. 가짜뉴스를 많이 공유해 계정 정지도 더 많이 당한 것이니 이를 편향적 검열이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이 논문은 아직 피어 리뷰를 거치지 않아 주의가 필요하다.
■ "극좌와 극우 모두 화나게 할 것"
그렇다 해도 가짜뉴스를 판별하는 기준 자체가 진보의 관점에 치우친 것 아니냐는 의문은 나올 수 있다. 실리콘밸리 등에 있는 주요 테크 플랫폼 기업과 관련 인력은 친민주당 성향이 강하다. 주요 실리콘밸리 기업의 정치 기부금은 90% 이상 민주당에 돌아간다.
머스크가 최근 트위터에 올린 이 그림을 보면, 그 역시 비슷한 문제 의식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이 그림은 정치 성향에 따라 트위터의 진보 편향 비판과 반박, 재반박이 평행선을 그리는 모습을 풍자한다.
그가 정말 이런 입장이라면 향후 트위터의 콘텐츠 정책은 진보 세력에게는 불만스러운 방향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있다. '해석의 편향'을 줄이기 위해 표현에 대한 제약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공격적, 당파적 게시물을 늘이는 효과를 일으킬 우려가 크다.
그런 점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그의 이 트윗이다. 머스크는 "트위터가 신뢰를 얻기 위해선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이는 극우와 극좌 모두를 화나게 한다는 의미"라는 트윗을 올리기도 했다.
지금까지의 트위터 알고리즘은 극우와 극좌를 즐겁게 했다. 앞으로 그가 정말 양 극단을 모두 화나게 할 생각이라면, 이는 과학이 확인한 트위터 플랫폼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로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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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것이 실제로 가능할지, 가능하다면 어떤 방식일지 지금 예측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머스크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 내는 위대한 기업인이며, 동시에 지키지 못할 약속을 즉흥적으로 남발하는 불안정한 인물이기도 하다. 트위터 새 주인으로서 그가 어느 쪽의 모습을 보일지 지켜볼 수 밖에 없다는 점이 트위터를 사랑하는 사용자의 가슴을 가장 답답하게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