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트위터를 인수했을까?
세계 최고 부자인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손에 넣은 지 열흘이 지났다. 트위터는 지난 달 25일(현지시간) 머스크의 인수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공식 발표했다.
인수 가격은 트위터 한 주당 54.20달러. 총 440억 달러(약 55조원) 규모 초대형 인수 계약이었다.
그 때 이후 트위터와 머스크를 둘러싼 기사들이 엄청나게 쏟아졌다. 오라클 창업자인 래리 엘리슨과 사우디 왕자 알 왈리드까지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는 소식까지 나왔다.
하지만 정작 일론 머스크가 왜 트위터를 인수했는지 깊이 있게 분석한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정확한 분석을 찾기 힘든 건, 이번 인수가 그만큼 '의외의 거래'였기 때문일 것이다. 농담처럼 시작된 트위터 인수가 거짓말처럼 성사됐다.
그래서 다시 한번 질문을 던져봤다. 대체 일론 머스크는 왜 트위터를 인수한 걸까?
■ 똑똑한 사람들이 트위터를 외면한 건 다 이유가 있다고?
어떤 기업을 인수할 때는 몇 가지 유인이 있어야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실제 가치'에 비해 저평가되고 있거나, 기존 사업과 시너지가 난다는 믿음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는 아주 생뚱맞은 것만은 아니다.
트위터는 명성에 비해 내실은 조금 부실하다. 이용자 수 4억3천600만명 수준에 불과(?)하다. 전 세계 소셜 미디어 시장에서 10위 내에도 들지 못한다.
현재 소셜 미디어 시장은 메타의 4인방(페이스북, 메신저, 인스타그램, 왓츠앱)이 주도하고 있다. 구글 유튜브, 중국 서비스 위챗과 틱톡도 이 분야 강자다. 이들은 모두 이용자 수 10억 명을 웃돈다. 이들과 비교할 때 트위터의 위상은 초라하다.
텔레그램, 스냅챗, 핀터레스트도 트위터 보다는 이용자 수가 많다. 미국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이 트위터와 비슷한 수준이다.
게다가 트위터는 이렇다 할 수익 모델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페이스북, 유튜브 등 맞춤형 광고가 강점인 다른 서비스와 달리 트위터가 갖고 있는 이용자 정보는 보잘 것 없다. 맞춤형 광고를 하기 쉽지 않은 구조다.
미국 IT 전문매체 슬레이트는 아예 “똑똑한 사람들이 그 동안 트위터를 인수하지 않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지적했다. 제 아무리 머스크라도 트위터를 경쟁력 있는 소셜 미디어로 변신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의미다.
그런데 머스크는 왜 55조원이나 주고 트위터를 인수했을까?
미국의 고품격 잡지 뉴요커의 분석이 눈에 확 들어온다. 뉴요커는 “(머스크가) 트위터의 운영 방식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믿음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분석엔 두 가지 전제가 깔려 있다.
첫째. 머스크가 보기에 트위터는 지금 잘못 운영되고 있다.
둘째. 그래서 그 부분을 손 보면 충분히 경쟁력 있는 서비스로 변신시킬 수 있다.
다만 뉴요커는 머스크가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가능성을 발견했는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그 부분은 머스크가 직접 설명하지 않는 한 알아내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머스크가 지금 시점에서 자신의 속내를 진지하게 털어놓을 것 같지는 않다.)
트위터 인수는 ‘머스크다운 행보’라는 건 분명하다. 그 동안 머스크는 한 발 앞서 뜰만한 기업을 손에 넣으면서 영향력을 키워 왔다.
머스크가 처음 시작한 것은 온라인 지역 정보 제공 스타트업 ‘집2’였다. 여기서 번 돈으로 결제 전문업체인 페이팔을 만들었다.
머스크는 페이팔을 4년 만에 이베이에 매각하면서 15억 달러를 손에 넣었다.
젊은 나이에 큰 돈을 번 머스크는 이후엔 우주탐사 기업 스페이스X와 전기차 전문기업 테슬라에 투자하면서 실력자로 떠올랐다. 또 차세대 핵심 산업으로 꼽히는 태양광 분야 전문기업 솔라시티도 한 발 앞서 인수했다.
■ '21세기 CNN' 표방했던 트위터…머스크가 가능성을 봤다?
“트위터에서 어떤 가능성을 봤을 것”이란 뉴요커의 분석에 힘이 실리는 건 머스크의 이런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머스크는 트위터에서 어떤 가능성을 봤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그 동안 머스크가 쏟아낸 말들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머스크의 약속은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트위터를 인수한 뒤 상장 폐지하고 개인회사로 운영하겠다.
둘째. 언론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겠다. 이를 위해 ‘콘텐츠 모더레이션’ 정책을 새롭게 짜겠다.
셋째. 280자 제한을 없애고 편집 버튼을 도입하겠다.
넷째. 알고리즘을 ‘오픈소스’로 만들겠다. 봇을 퇴치하기 위해 ‘사람이란 사실을 인증하는’ 절차를 강화하겠다.
머스크의 약속 중 눈에 띄는 것은 ‘콘텐츠 모더레이션 최소화’와 편집 버튼 도입, 그리고 280자 제한 철폐다. 이 메시지 속엔 트위터가 지금보다는 좀 더 자유로운 의견이 오가는 ‘타운홀’이 될 필요가 있다는 관점이 담겨 있다.
또 TED 강연에선 ‘광고 의존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 광고에 의존하는 순간, 언론 자유를 보장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그 이유다.
이런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기 위해선 상장 폐지를 하는 건 필수 과정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간섭을 피하고, 주주들에게 수시 로 보고하고 설득하는 성가신 과정을 생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머스크는 저런 변화를 통해 트위터를 어떤 매체로 만들려는 걸까?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출범 당시 트위터가 내세운 비전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아니다. '21세기 CNN'을 표방하면서 정보 플랫폼을 자처해 왔다.
머스크가 280자 제한을 철폐하고 편집 버튼을 추가하는 등의 조치를 꾀하는 것은 ‘정보 플랫폼’인 트위터의 가치를 극대화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을까?
그 부분만 잘 구현해 낸다면 트위터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같은 소셜 미디어와는 다른 새로운 정보 플랫폼으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언론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자신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도 과감하게 수용하려는 것 역시 정보 플랫폼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는 아닐까?
■ 저평가 회사 키운 뒤 초대박 보상계약 도출…이번에도 통할까?
여기까지는 트위터의 비즈니스만 생각한 분석이다. 그런데 뉴욕타임스는 머스크의 자산 축적 방식을 고려할 경우에도 트위터 인수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 출발점은 테슬라 이사회가 2018년 머스크와 체결한 파격적인 보상 계약이다. 당시 테슬라는 재무·시가총액 조건이 충족될 경우 머스크에게 12회에 걸쳐 1억100만주 분량의 스톡옵션을 제공하기로 했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시가총액과 관련된 조건이었다. 당시 테슬라는 “시가총액이 6천500억 달러를 돌파하면 머스크에게 550억 달러 상당의 주식을 지불”하기로 했다.
그 무렵 테슬라의 시가총액은 600억 달러 남짓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후 주가가 폭발적으로 상승하면서 불가능해 보였던 목표를 가뿐하게 넘어섰다. 현재 테슬라 시가총액은 9천억 달러를 넘어섰다.
덕분에 머스크는 당시 계약했던 12개 보상 조건을 거의 전부 달성했다.
문제는 다음 단계다. 테슬라 주가는 6개월 째 횡보만 거듭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에서 ‘일방적인 독주’를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론 머스크로선 테슬라와 2018년 체결한 것과 같은 파격적인 보상 계약을 이끌어내기 힘들다.
그런데 트위터는 어떤가? 머스크가 보기엔 저평가된 회사다. 성장 잠재력도 무궁하다. 게다가 트윗은 ‘머스크의 존재’에도 큰 의미가 있다.
뉴욕타임스는 “처음엔 머스크가 진지하게 트위터 인수를 생각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지만 이젠 좀 더 큰 전략의 일부분인 것 같다는 판단이 든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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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적으로 보나, 정치적으로 보나 트위터는 저평가된 자산일 수도 있다는 것. 마케팅 도구란 측면에서도 트위터는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일 수도 있다는 것이 뉴욕타임스의 분석이다.
이런 분석을 기반으로 뉴욕타임스는 “조만간 트위터와 머스크가 2018년에 봤던 것보다 더 창의적으로 파격적인 보상 계획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