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기업이 광고 모델을 쓴다는 것은 마케팅적으로 새로울 게 없어졌지만, 이 것만큼 자본주의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도 없다. 모델이 갖고 있는 이미지를 금전적으로 소모한다. 동시에 기업 이미지에 해를 입히지 않을 것이라는 잠재적 리스크가 수 십 차례에 걸쳐 계산되며 혹여 터질 사건·사고에 대비해 보험적 성격의 손해배상 비용까지 포함된다. 그 점에서 한 인간이 한 기업의 얼굴이 된다는 점은 치열한 인간의 자본화라고까지 느껴진다.
은행들은 고객의 돈을 자본화해 다시 투자해 불린다는 업의 기본적인 속성을 갖고 있어 광고 모델 기용 시 '신뢰도'를 가장 역점에 둔다. 조금의 리스크도 남기지 않기 위한 신중함은 까탈스러움이나 지나친 '보수'로 보이기까지 할 정도로 말이다.
그렇지만 반대 입장에서 광고 모델은 기업의 리스크를 얼마나 떠안아야 하는지는 대중에게 알려진 게 없다. 만약 모델로 활동 중 터지는 기업의 불의의 사건과 사고는 모델의 '악운' 정도로 치부된 후, 인터넷 상의 놀림감이 되고 끝이 난다.
이런 점에서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의 그간의 이미지를 믿고, '은행'이 주는 사회적 기표에 따라 홍보 모델을 체결한 가수 '아이유'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착실하게 커리어를 밟아 이미지를 탄탄하게 구축한 아이유에게 '600억원 대 횡령 은행'의 광고 모델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했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은 이번에 신규 모델로 아이유를 채택하면서 '우리를 위해 우리가 바꾼다'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우리를 바꿔야 하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음에 대한 전조인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우리은행엔 굵직한 문제들이 많았다. 결국 이는 솜방망이 처벌로 끝났다. (그나마 기억에 남는게 있다면 채용비리가 터지자 당시 은행장이었던 이광구 전 은행장이 '고객과의 신뢰를 저버림을 사과'하며 사직한 것이다.) 그 후 채용비리 사건은 유야무야 됐고 해외 금리 연계 파생상품(DLF) 불완전판매가 불거졌다. 불완전판매 당시 은행장이었던 손태승 행장은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됐고, 금융감독원의 내부 통제 부재의 제재는 허공에 흩날렸다. 심지어 직원들이 실적을 올린다고 휴면계좌 비번 맘대로 바꾼것도 있었다. 그리고 터진게 또 600억원대 횡령이다.
그래도 우리은행을 믿었다. 대한제국 고종 황제부터 설립된 최초의 은행이라는 유구한 전통을 마케팅하고, 아이유를 전면 내세우며 믿음직한 은행으로 이미지를 쌓는데 성공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 안을 들여다 보니 우리은행은 횡령으로 답했다. 채용비리·불완전판매·횡령으로 이어지는 공통의 키워드는 '내부 통제 실패'다. 횡령으로 자수하기 직전까지 회사를 다녔던 A차장, 심지어 A 차장은 첫 횡령(2012년) 저지른 후 지점 전보 후 다시 해당 부서로 돌아와 두 차례 더 횡령을 벌였다. A차장을 불러들인 것은 개인의 일탈이라고 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우리은행 이원덕 행장은 "한 사람의 악한 마음과 이기적인 범죄로 우리가족 모두가 땀 흘려 쌓아 올린 신뢰가 한 순간에 송두리째 흔들리고 말았다"며 "좌절해서는 안 된다. 더욱 굳게 일어서야 하고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아나가야 한다. 은행장인 제가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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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인 나는 '성무선악설'을 믿는다. 악하게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악하게 만들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문제임을, 그렇기에 A 차장은 악한 마음을 버릴 수 없을 은행의 시스템적 결함이 있었던 것이라고 반문한다. 심지어 이원덕 행장은 행장 취임 전 우리금융그룹 내 이사회 내에서 내부통제관리위원회에 몸을 담았다. 그가 한 직원의 일탈로 이를 치부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이원덕 행장 역시 이번 사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짚고 싶다.
제목은 자극적이게도 '아이유'를 걱정했다. 아이유라고 썼지만 우리은행 고객이 갖고 있는 불안과 불편을 제기했다. 아직까지도 이원덕 행장은 아무 말이 없다. 사법당국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도 된다는 전략이라면, 아니다. 그 판단이 나올 때까지 고객에게 우리은행은 600억원대 횡령을 개인에게만 묻는, 개인에게 짐지우는 은행이 될 것이다. 그동안의 내부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주장은 신기루처럼 날아갔다. 이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아이유에게도 그리고 고객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