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26일 여러 차례 폭발 보고가 제기된 몰도바와 우크라이나 사이 친러 분리주의 지역 트란스니스트리아 주민 다수가 몰도바로의 피란을 대비하고 있다고 30일 AFP 통신이 보도했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소련 붕괴 이후 몰도바에서 독립을 선언한 미승인 분리 지역으로, 러시아계 주민이 많고 러군 약 2000 병력이 주둔 중인 '잠재적 화약고' 가운데 하나다.
최근 러군 고위관계자가 한 공개 석상에서 트란스니스트리아로 군사작전을 확대할 가능성을 시사한 데 이어, 폭발 공격이 잇달아 이뤄지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의 불안도 최고조에 달했다. AFP 인터뷰에 응한 빅토리아(36)는 의료 조무사로, 몰도바 측에 살고 있지만 매일 트란스니스트리아로 출근하고 있다.
이날도 몰도바와 트란스니스트리아 사이 바르니타 국경 초소를 지나던 빅토리아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다"면서도 "상황이 바뀌면 분명히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빅토리아의 눈은 차량 뒷좌석에 앉은 12살 난 딸과 뱃 속의 아기를 번갈아 향했다고 AFP는 묘사했다. 그는 현재 임신 중이라 더욱 걱정이 크다고 했다.
몰도바와 트란스니스트리아 양측에서 소규모 가족 사업체를 운영하는 갈리나 투르카누(46)도 요즘 신경이 곤두서 있다.
1992년 트란스니스트리아가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몰도바에서 독립을 시도할 때 치른 내전의 상흔을 기억하는 그는 전운이 두렵기만 하다.
투르카누는 "그때는 정말 어려웠다. 다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결코 좋은 기억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부모님을 모시고 온 가족이 이곳에 지내고 있다"며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부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현지 시간으로 지난 25일 오후 5시쯤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의 자칭 수도인 티라스폴 국가안보부 청사에 여러 차례 폭발 보고가 제기됐다.
이튿날 새벽에는 러시아 방송을 재송출하는 지역 라디오 센터에 두 차례 폭발이 발생, 안테나가 부서졌다는 보고가 이어졌다.
우크라이나쪽에서 드론이 날아온 뒤 러시아 무기창고 인근에 총격이 가해졌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공격의 배후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사용하는 60mm 지뢰 사용 흔적이 발견됐다면서 트란스니스트리아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벌인 테러 행위라고 주장했지만,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러시아의 소행으로 지목하고 있다.
지난 2월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이래 제3국 영토가 공격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공격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 있는 것으로 판명날 경우 개전 이래 전장이 다른 유럽 국가로 확대되는 첫 사례가 돼 긴장이 더 팽팽하다.
몰도바와 트란스니스트리아 사이 검문소 경비도 삼엄해졌다. 몰도바 경찰 비탈리에 따르면 이번 공격 이후 보안이 강화되면서 몰도바 측에서 트란스니스트리아로 들어가는 데 소요되는 대기 시간이 훨씬 길어졌다.
비탈리는 "트란스니스트리아 당국은 폭발 이후 더 광범위한 점검을 하고 있다"며 "차량 행렬이 어쩔 땐 300m까지 이어진다"고 말했다.
반면, 몰도바 측 검문소에서는 보안군이 손을 흔드는 것만으로 쉽게 트란스니스트리아 측에서 오는 사람들을 통과시키고 있다고 AFP는 전했다.
몰도바의 마이아 산두 현 대통령은 친(親) 유럽연합(EU) 성향으로, 이번 전쟁 국면에서 조지아와 함께 EU 가입 신청서를 냈다. 조지아, 우크라이나와 함께 옛 소련 국가이지만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도, EU도 아니란 점이 위기감을 더했다.
산두 대통령은 이번 폭발로 인한 위기 고조에 따라 국내 치안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올레그 세레브리아 몰도바 부총리는 프랑스 인포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폭발이 트란스니스트리아내 친우크라이나 세력과 친러시아 세력 간 내부 충돌일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럼에도 몰도바가 위기감을 느끼는 이유로는 접경지 우크라이나에서 진행 중인 전쟁과 함께, 이 지역의 높은 러시아 전기·가스 의존도를 꼽았다.
세레브리아 부총리는 "이미 이번 전쟁으로 공급망 붕괴 등 경제적 영향을 받고 있다"며 "트란스니스트리아를 가로지르는 전기·가스망 의존도가 높은 점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트란스니스트리아가 우크라이나 돈바스 같은 상황에 내몰리면 몰도바 전체의 전기·가스 공급이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몰도바는 우크라이나를 탈출해온 난민들도 많이 수용했다. 이번 전쟁 이래 몰도바로 우크라이나 피란민 40만여 명이 들어왔는데, 몰도바 인구가 260만 명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규모다.
몰도바로 들어왔던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은 대부분 이곳을 거쳐 다른 곳으로 옮겨가 이제 9만1000여 명가량이 머무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몰도바는 이제 트란스니스트리아에서 넘어올 수 있는 새로운 이민 물결에 대비하고 있다고 AFP는 전했다.
트란스니스트리아 주민들은 최근 몇 년간 러시아 여권을 취득했지만, 이번 전쟁 국면에서 몰도바 여권을 갱신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현지 언론 보도가 나왔다.
트란스니스트리아에서 안전하게 체류하기 위해 러시아 여권을 갖고 있으면서도, 유사시 언제든 몰도바로 넘어가거나 몰도바를 거쳐 유럽 다른 나라로 향하기 위해 두 지역 여권을 함께 챙겨놓는 것이다.
이번 폭발 보고 사흘 전인 지난 22일 러시아군 중부 군사지구 부사령관 루스탐 미네카예프는 방위산업 연합 연례회의에서 "특수작전 2단계 목표는 우크라이나 동남부의 완전한 장악이며, 이 경우 크림반도에서 돈바스로의 육로 확보에 더해, 트란스니스트리아로 가는 또 다른 진입로를 확보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는 러시아의 다음 목표가 몰도바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됐다.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트란스니스트리아 주둔 병력 및 현지 친러 반군과 함께 우크라이나 오데사를 공격할 계획을 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데사는 흑해를 낀 우크라이나 최대 물동항으로, 남부 항구도시 중 최서단에 위치해 있다. 우크라이나 동남부 장악을 노리는 러시아가 오데사까지 점령할 경우 우크라이나는 내륙국가로 전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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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미국과 영국, 캐나다, 독일, 이스라엘, 불가리아 등 많은 나라에서 이번 폭발 보고 이후 트란스니스트리아 또는 몰도바 전역에 대해 자국민 즉시 출국이나 여행 자제 권고가 잇따르고 있다. 몰도바 및 주변 상황이 악화해 무력 갈등 위험이 있다는 설명이다.
제공=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