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IPTV 법제화와 함께 방송통신 융합 논의가 한창일 때다. 당시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브리핑에서 이런 질문이 나왔다. “SO는 누가 키우나” 케이블TV 즉,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system Operator)를 일컫는 SO를 발음 나는 대로 물어본 중의적인 질문이었다. IPTV의 등장으로 올드미디어가 된 케이블TV사업자의 보호‧발전 정책을 묻는 질의였다.
하지만 뜻밖의 답변이 나왔다. ‘SO’를 묻는 질문을 진짜 ‘소’라고 생각해 엉뚱한 대답을 내놓았던 것이다. 나름 재치(?) 있는 질의였는데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10여년이 흘러 윤석열 당선인이 새 정부를 구상하는 요즘 이 장면이 오버랩 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행보를 보면 ‘디지털’과 ‘디지털 전환’의 의미를 알고 있는지 의문이다.
최근 안철수 인수위원장이 대통령실에 ‘과학교육수석’이 필요하다는 제안에 인수위 측의 답을 들어보면 과학교육수석의 과학이 말 그대로 과학인 것인지, 과학과 ICT를 통칭해서 이야기 하는 것인지조차 헷갈린다. 그래서 “인수위가 과학과 ICT도 구분 못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마저 나온다.
디지털플랫폼정부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이를 기반으로 민간에 이르기까지 디지털혁신을 이루겠다는 정부란 점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특히 이해되지 않는 점은 대통령실 직제다. 새 정부는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정무‧경제‧사회‧시민사회‧홍보) 체제 구상을 내놓았는데 ICT‧과학이 제외됐다. 대통령실 슬림화란 명분에는 이의가 없지만 미래 먹거리를 구상하고 조언하고 구체화할 인적 통로가 막혀버린 셈이다.
그동안 ICT 업계에서는 문재인정부가 대통령실에 ICT를 관장하는 수석비서관을 없애고 경제수석이 이를 관리하는 체제로 만들면서 관련 산업 진흥에 저해요소가 됐다고 비판해왔다. 지난해 대통령실에 디지털혁신비서관이 만들어진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때문에 새 정부에서는 ICT‧과학을 담당할 수석비서관이 생길 것이란 기대가 컸다.
대선 과정에서 윤 당선인과 단일화에 나선 안 위원장이 디지털플랫폼정부 구축, 과학기술부총리 도입, 청와대에 과학기술수석비서관과 대통령 직속 국가미래전략위원회와 과학기술 전담조직 구성 계획을 밝혀왔기 때문이다.
또 윤 당선인이 정보기술의 중요성과 함께 디지털인재 100만 양성 공약까지 내놓았기에 ICT‧과학수석비서관 제외는 ICT 업계에 더 큰 실망감으로 돌아왔다. 특히 현 정부에 있었던 과학기술보좌관조차 과학비서관으로 격하시키고 디지털혁신비서관은 아예 없어질 것이란 소식은 실망을 넘어 충격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새 정부가 향후 3년 안에 완성해 수출하겠다는 디지털플랫폼정부는 디지털혁신의 집약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요소인 기가급 초고속인터넷 인프라에 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 컴퓨팅이 조화를 이뤄야하고, 데이터의 생성‧관리‧활용 등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디지털플랫폼정부 구축을 완성시키는 데는 현재의 수평적 부처 구조에서는 실현이 쉽지 않다. 범 부처를 통합할 데이터 거버넌스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부총리급으로 격상시키고 대통령실에 이를 관리할 콘트롤타워로써 수석비서관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던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인수위는 6G 이동통신과 AI를 축으로 하는 디지털 국가전략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2026년까지 세계 최초 6G 통신 시연을 하겠다는 구체적 목표도 제시했다.
하지만 인수위를 통해 밝힌 새 정부의 대통령실 직제나 행보를 감안하면 디지털플랫폼정부나 디지털 국가전략이 공염불로 끝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전 세계 국가들이 대응전략과 함께 실행해 나서고 있는 디지털화나 디지털 전환은 아날로그를 디지털로 바꾸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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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유한 세계 최고 수준의 네트워크 인프라에 AI가 접목된 빅데이터, 클라우드를 활용해 디지털 활용역량을 극대화시키고 이를 모든 산업 분야에 적용, 국가경쟁력을 강화시키는 디지털 혁신을 이뤄내야 하는 일이가 때문이다.
새 정부에 디지털을 이해하고 이를 대통령 어젠다로 실행시킬 제갈량 같은 인물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