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보건 분야는 다층적이다. 정신장애인의 인권 개선과 사회적 편견 해소도 중요하고, 정부 차원의 예산 증원 등 더 많은 관심도 요구된다. 그렇지만 정신장애인 사안은 매번 ‘사건’이 터져야만 후속 대책이나 제도 개선이 이뤄지는 방향으로 진행돼 왔다. 항상 이 부분이 아쉬웠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정신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전 국민이 절감하게 된 계기라고 생각한다. 정신건강에 문제를 겪는 층이 일부 소수가 아닌, 바로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유행 초기 확진자에게 쏟아진 엄청난 비난이다. 나는 감염자의 불안, 우울, 트라우마에 대해 유행 초기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다. 계기가 있었다. 확진자 동선 기사에 달린 댓글 하나 때문이었다. 내용인즉슨 이랬다.
“그냥 죽으세요.”
확진자에게 그냥 죽으라는 말. 그 댓글에는 가장 많은 ‘좋아요’가 달렸다. 치명적인 감염병에 걸리는 것 자체도 괴롭지만, 감염 사실이 확인되는 즉시 죽일 놈이 되고마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대다수 국민들은 히스테리에 가까운 공포를 경험했다. 정부는 ‘심리방역’을 폈다.
그런데 곧 또 다른 충격파가 발생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국내 첫 사망자가 발생한 이른바 ‘청도 대남병원’ 사례였다.
이 계기로 정신건강 분야의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 입원 환경 변화, 치료시기에 따른 수가체계변화, 응급대응 등이 추진됐고, 복지부 차원의 관련 연구도 여럿 진행됐다. 중앙사고수습본부 내 정신병원 대응반을 통한 정신장애인 확진자 관리도 실시됐다. 확진된 정신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음압병동이 개소하기도 했다.
그 자체는 고무적이다. 문제는 앞서 거론한 것처럼 사건이 벌어져야만 움직이는 구조는 여전했다는 점이다. 최근 몇 년 만 봐도 그렇다. 2018년 고 임세원 교수 사망사건, 2019년 진주 방화사건, 2020년 대남병원 발생 이후에야 겨우 ‘모기 뒷다리’ 만큼의 변화가 이뤄졌다. 사후약방문의 악순환이다.
20대 대선 중에 여러 정신건강 공약이 있었다.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에는 ‘정신건강 복지서비스의 확대 강화’가 포함됐는데, 개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직접 또는 디지털 기술로 ‘찾아가는 서비스’를 시행하겠다”, “24시간 정신응급대응팀을 운영하겠다”, “극단적 선택 시도자와 가족에 대한 정보시스템 구축하겠다” 등.
새 정부 출범 이후 이런 공약이 정책으로 어떻게 녹아들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사실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정권 차원의 의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 정책의 연속성과 확대가 가능하려면 부처의 노력만으론 되지 않는다. 결국 정권이 얼마나 의지를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충원된 인력과 예산 증액 등의 형태로 말이다.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 정신건강 분야가 포함될까?
솔직히 회의적이다. 이전에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정신건강 분야는 뒷전으로 밀릴 공산이 크다. 정신건강은 눈에 잘 보이지 않고, 그렇게 급하지도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정신건강 말고도 시급한 현안이 많다고 말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현대 정신건강은 전통적인 신경증 및 정신증 질환 말고도 제3의 멘탈헬스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원인은 다양하다. 신종 감염병, 인종, 성별, 세대, 직장 내 갑질, 성소수자 문제 등 복잡다단한 사회변화의 그늘은 결국 정신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신건강은 극소수만의 사정이 아닌, 불특정 다수의 문제라는 것을 새 정부는 직시해야 한다. 적시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다가 다시 비극적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야 부랴부랴 대책을 마련하는 행태는 이제 지양되어야 한다.
새 정부가 ‘정신건강 국가책임제’를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 정신의학계를 중심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제안 역시 궁극적으로 정부 차원의 정신건강 분야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는 요구일 터다.
묻고 싶다. 새 정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건강 분야를 보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가. 새 대통령은 이 질문의 답을 임기 내에 내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