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트래블룰...가상자산 제도권 기반됐지만 거래소간 송금 지연

"투자자 불편 겪지 않도록 최선 다해 정상화해야"

컴퓨팅입력 :2022/04/06 07:48    수정: 2022/04/06 15:11

가상자산 거래 과정에서 자금세탁 범죄가 이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트래블룰'이 도입된 지 열흘 여의 시간이 지났다. 장기적으로 보면 업계가 제도권으로 안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거래소 간 자금 유통이 제한되는 등 '가두리' 형성에 따른 부정적인 여파도 관측된다.

트래블룰은 100만원 이상 가상자산이 전송될 시 사업자가 송수신인 신원정보를 기록하도록 요구하는 규정으로 지난 3월25일부터 적용됐다. 정부가 가상자산 시장을 관리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인프라가 갖춰짐에 따라 가상자산 업계가 촉구해왔던 업권법 논의가 물살을 탈 가능성이 크고, 내년 이후로 예고된 암호화폐 과세 체계도 준비할 발판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다만 트래블룰 준수를 위한 거래소 간 송금 시스템은 아직 완전히 구축되지 않은 상태다. 특히 원화 거래 지원 거래소 중 시장점유율 1위인 업비트와 나머지 빗썸, 코인원, 코빗 간 송금이 지원되기까지는 약 3주의 시간이 더 소요될 전망이다. 이런 점이 업체 간 공정 경쟁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적 시선도 나타났다.

■금융소비자 보호 장치 가동…업권법 논의도 탄력 예상

트래블룰에 대한 기대 효과로는 먼저 제도 도입 취지였던 가상자산 관련 범죄 예방 및 대응 역량 강화가 꼽힌다.

정지열 자금세탁방지전문가협회 초대 회장은 "가상자산은 익명성 때문에 해킹, 사기 행위가 발생할 경우 대응 측면에서 취약했다"며 "트래블룰이 도입됨에 따라 거래자 추적이 용이해지기 때문에 금융소비자 보호도 강화되고, 오입금이나 사기, 해킹 피해를 사전 예방할 뿐 아니라 사후 수사에 있어서도 신속성을 담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가상자산 관련 업계를 전문적으로 다룰 업권법 논의가 활발해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트래블룰은 개정 특정금융정보법에 의해 도입됐다. 그러나 개정 특금법은 지난 2019년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회원국을 대상으로 가상자산에 대한 준수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국가에겐 금융 제재를 부과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땜질로 도입된 측면이 짙다는 것이다.

FATF 권고안을 준수하는 소비자 보호 체계가 갖춰졌으니, 본격적으로 산업 진흥을 위한 법제도를 다루는 업권법 논의가 진전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가상자산 과세를 위한 준비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제도라는 평가가 나왔다.

당초 가상자산 과세 시행일은 올해 1월1일로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국회에서 가상자산 과세를 위한 준비가 덜 됐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지난해 말 가상자산 과세 시행을 1년 연기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정지열 초대 회장은 "트래블룰이 시행되면서 공정 과세가 가능한 기본적 인프라가 갖춰지게 됐다"며 "이를 바탕으로 기타 소득으로 분류됐던 가상자산이 주식과 같은 금융투자소득으로 전환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첨언했다.

■"트래블룰, 블록체인 필요vs불필요" 신경전 벌이다 소비자 불편 초래

트래블룰이 시행되면서 현재 원화거래를 지원하는 가상자산 거래소인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간 송금은 중단된 상태다. 업비트가 채택한 람다256의 트래블룰 솔루션 '베리파이바스프'와 빗썸·코인원·코빗의 합작 법인 CODE의 트래블룰 솔루션이 연동되지 않았고, CODE 회원사 간 솔루션 연동도 기한을 맞추지 못한 탓이다.

양측은 지난 2월부터 솔루션 연동 논의를 해왔으나 블록체인을 적용한 CODE 솔루션과, 그렇지 않은 베리파이바스프 간 연동이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때문에 CODE 측이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지 않은 트래블룰 솔루션을 개발하고, 이를 베리파이바스프와 연동하는 작업을 현재 추진 중이다. 이 과정에서 CODE 회원사들도 블록체인 기반 솔루션을 채택할지, 비(非)블록체인 솔루션을 채택할지 의견이 서로 엇갈리면서 회원사 간 솔루션 연동도 완료되지 못한 채로 트래블룰 적용 시점을 맞았다.

CODE 회원사 간 트래블룰 솔루션 연동은 오는 9일부터, 베리파이바스프와 CODE 솔루션 간 연동은 오는 25일부터 지원될 전망이다.

솔루션 연동 논의가 일찍이 이뤄지지 못한 것은 블록체인 기술 활용 필요성을 둘러싸고 람다256과 CODE 측이 신경전을 벌여온 때문이다. 람다256은 성능 저하와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이 있다며 블록체인 배제를 주장했다. 반면 CODE는 블록체인을 적용해도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봤다.

차명훈 CODE 대표가 8일 서울 중국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트래블룰 솔루션에 대해 소개하는 모습.

거래소 간 송금이 차단됐기 때문에 '가두리 펌핑'이 나타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이는 암호화폐 입출금이 제한된 환경에서 시세 상승을 유도하는 것을 뜻한다. 향후 거래소 간 송금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게 되면 일시적으로 높아진 시세가 정상화될 가능성이 큰 만큼, 투자자 피해를 우려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아울러 CODE 측은 송금이 제한된 현 상황이 80% 가량의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보유한 업비트 쪽으로의 이용자 유입이 더 가속화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CODE 회원사의 한 관계자는 "업비트 등 베리파이바스프 회원사 쪽으로 거래액이 쏠리는 현상이 일시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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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계자는 "당국에서 특금법 관련 공지를 계속 해왔고, 업체들도 준비를 해왔는데 솔루션 연동이 아직 완료되지 않았으니 협의를 보다 신속히 했어야 하지 않나 하는 반성이 든다"며 "투자자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정상화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거래소 간 트래블룰 솔루션 연동이 안된 현 상황이 특정 사업자가 이득을 보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거래소 이용자들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며 "신속히 솔루션 연동이 돼 비정상적 거래 환경이 해소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