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은 사상 최대인데'...삼성전자 주가 왜 빠질까?

[정진호의 饗宴] 반도체 1등은 착시...미래 사업 포토폴리오 다시 점검해야

데스크 칼럼입력 :2022/04/03 10:31    수정: 2022/04/08 09:24

"(삼성전자)실적은 사상 최대인데, 주가는 왜 뒷걸음치는 겁니까?"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는 질문입니다. 참고로 삼성전자는 지난해 연간 매출 279조원, 영업이익 51조6천억원이라는 창사 이래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이번 주 1분기 잠정실적도 3분기 연속 70조원대 매출을 넘어서면서 역대 분기 최대 실적이 예상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주가 흐름은 매우 부진합니다. 삼성전자 주가는 작년 1월 9만6800원을 찍은 후 계속 하락해 1일 주가 6만9100원으로 최고점 대비 28.6% 떨어진 상황입니다. 이미 52주 신저가인 6만8300원선에 거의 근접했습니다. 지난해부터 반도체주에 대한 기대감으로 삼성전자를 쓸어담은 개미 투자자 입장에서 속 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삼성전자 CI. (사진=삼성전자)

그럼 왜 호실적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 주가는 계속해서 빠지는 것일까요. 글로벌 공급망 불안이나 러시아-우크라 전쟁, 수급 불안 등 여러 악재가 있겠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투자자들이 삼성전자의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현재보다는 향후 선행 지표를 고려해야 하는 외인이나 기관 투자자의 입장에서 삼성전자의 차세대 성장동력에 "과연?"이라는 의문표가 찍혀 있다고 정리하겠습니다. 삼성전자의 전체 사업부문을 들여다 볼 때 현재 사업도 그렇고, 10년 뒤를 이을 신수종 사업이 뚜렷하게 보이거나 확신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그만큼 삼성을 견제하고 경쟁하는 세력이 많아지고, 또 입지도 좁아졌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잠깐 삼성전자의 3대 사업장인 반도체·스마트폰·가전 사업부문의 현 상황을 살펴볼까요. 먼저 삼성전자는 종합반도체기업(IDM)으로서 인텔과 1위를 다투는 회사입니다. 정확히 이야기 하면 메모리 분야에서 1위 기업이죠. 삼성전자는 D램 시장에서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 42.3%, 낸드 시장에서는 33.0%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삼성의 적은 삼성'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메모리 분야에서는 미세공정과 제조기술에 있어 앞선 회사입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맨 오른쪽)이 지난해 세메스 천안사업장을 찾아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장비 생산 공장을 살펴보는 모습.(사진=삼성전자)

그러나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상황은 녹록치 않습니다. 메모리는 전체 반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제한적입니다. 지난해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가 추정한 세계 반도체 시장은 전년대비 26.6% 증가한 5천560억 달러 정도인데요, 이중 D램과 낸드 등 메모리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28.5% 정도입니다. 나머지가 AP나 CPU 등 시스템 반도체와 센서  등 광개별소자 영역입니다. 물론 최근 메모리 시장 성장률이 증가하고 있지만 시스템 반도체 시장이 최대 두배 가까이 큽니다.

또 메모리는 정보를 저장하는 공책에 비유됩니다. 반면 시스템반도체는 정보를 처리하는 두뇌에 해당되죠. 그래서 많은 분들이 오래 전부터 삼성전자가 이젠 단순한 공책 장사에서 벗어나 다양한 쓰임새로 나뉘는 두뇌 장사로 영역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근데 이게 만만치 않습니다. 시스템 반도체 기업 중에서 삼성전자는 10위권(2019년 기준) 밖입니다. 인텔·브로드컴·퀄컴·TI·엔비디아·미디어텍·하이실리콘·NXP·AMD·ST마이크로닉스 등 쟁쟁한 회사들이 포진해 있죠.

파운드리(반도체위탁생산) 시장도 별반 다르기 않습니다. 대만의 TSMC라는 기업이 시장을 독식하고 있는데, 이 기업의 작년 3분기 기준 점유율이 53.1%에 달합니다. 2위인 삼성전자의 17.2%와는 세 배 이상 격차가 납니다. 삼성이 작년 매출 기준으로 인텔을 꺾고 3년 만에 반도체 세계 1위 자리에 올랐다고 하지만, 종합 반도체 기업로서 위상을 말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먼 이야기입니다. 인텔과 TSMC가 미국, 유럽과 일본 등 세계 각지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생산시설을 확충하고 글로벌 M&A에 나서고 있는 것도 삼성전자에게는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근엔 TSMC에게 퀄컴 등 글로벌 팹립스 업체들의 물량을 빼앗기면서 고민이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왼쪽에서 세번째)이 2019년 4월 경기 화성시 삼성전자에서 열린 시스템 반도체 비전 선포식에서 세계 최초 극자외선(EUV) 공정 7나노로 출하된 반도체 웨이퍼에 서명하고 있다. 왼쪽 첫번째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뉴시스)

'갤럭시'로 대표되는 스마트폰 사업은 어떨까요. 삼성전자가 아직까지 세계 1위 휴대폰 제조 기업은 맞습니다. 하지만 여러 지표에서 쫓기는 입장입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18.9%) 1위를 수성했지만 성장률은 제로(0%)대로 상위 5개 업체 중 꼴찌입니다. 점유율 격차도 2위인 애플과 2019년 7%p에서 지난해 1.7%p로 좁혀진 상황입니다.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애플에 수익을, 중저가 시장에서는 중국 기업들에게 시장을 빼앗기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휴대폰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1위 자리에 오른 시기는 대략 2011년에서 2012년 즈음 입니다. 10년 전 일이죠. 여태까지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게 대단한 일이기도 합니다. 2016년 갤럭시노트7 배터리 발화 사태와 최근 갤럭시S22 게임옵티마이징서비스(GOS) 논란은 1등 사수를 위한 내부 개발조직의 피로감과 조급함을 보여주는 실례일 수 있습니다.

가전 사업에서 삼성전자는 TV 부문 16년 연속 세계 1위입니다. 그러나 '비스포크'가 이끄는 가전 시장에는 플레이어가 많습니다. 특히 중국 기업들의 물량 공세는 수익적인 측면에서 점점 더 이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TV나 세탁기, 냉장고 모두 프리미엄 라인업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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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종합해 보면, 지금 삼성전자가 영위하는 사업 포토폴리오가 더 치고 올라가기 보다는 어떤 모멘텀을 만들지 못하는 한 버티다 내려올 위치에 있다는 겁니다. 더 큰 걱정은 이들 3대 사업의 바통을 이어받을 차세대 후보군이 마땅히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자동차 전장, 배터리, 바이오, 로봇, AI, IoT, 빅데이터, 메타버스, NFT 등 차세대 성장 산업이라 할 수 있는 영역이 많지만 투자자들은 삼성전자가 경쟁자들보다 민첩하지 못하거나, 미약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삼성전자 주가가 고점을 뚫고 10만전자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요. 그건 기자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10년, 20년 전 반도체 산업에서 삼성전자가 인텔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라고 상상한 이가 얼마나 됐을까요. 대만의 TSMC가 파운드리 1등에 오를 것이라고 점쳤던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미래 ICT 산업에서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의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 청사진이 현실로 실현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또 바이오 산업이 제2의 반도체 산업이 될 수도 있고 삼성전자가 업계를 깜짝 놀래킬만한 대형 M&A에 나설 수도 있습니다.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질 수 있겠죠. 끊임없는 지속 가능한 성장, 도전과 혁신, 그것이 기업의 생존 방식입니다. 당분간 인고의 시간이 필요한 시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