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가 인터넷 서비스의 시대적 흐름으로 인식되면서 ‘가상 부동산’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서비스 사업자가 생겨나고 거기에서 가상의 땅을 사는 사람도 늘고 있다. 그런데 고민이 있다. 언론으로서 이를 어떻게 지켜봐야 할지 종잡기가 쉽지 않다. 서비스 기업은 혁신이라 주장하지만 그대로 믿기에는 뭔가 찜찜하다. 어떤 형태로든 사고가 터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떠나지 않는다.
가상 부동산은 말 그대로 상상의 산물이다. 서비스 기업이 조물주처럼 메타버스 공간에 창조한 땅이다. 이 땅에 태초의 가치를 부여해 분양하고 그 뒤에 변화된 가격으로 사고파는 새로운 경제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거다. 상상의 산물이라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든 문명은 다 상상의 산물이다. 그 점에서 가상 부동산도 가치가 있다. 그런데 왜 찜찜함이 가시지 않는 걸까.
그 답은 뜻밖에 간단한 것일 수 있다.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비 상품이든 투자 자산이든 구매할 때 가격에 민감하다. 싸게 살수록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게 싼 지 비싼 지를 감각적으로 안다. 자주 살수록 그 감각은 발달한다. 가격에 대해 안다는 것은 바로 그 감각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감각이 발동되지 않으면 무엇인가를 살 때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가상 부동산 관련 뉴스를 보도할 때 난감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누군가 피땀 어린 돈을 주고 사게 될 자산에 대해 사실상 아무 것도 모른 채 해당 기업이 제공하는 보도 자료에 전적으로 의존해 뉴스를 내보내야 하니 속으로 켕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안 내보내기도 뭐하다. 그 기업이 적어도 지금까지는 정상적으로 사업을 해왔다면 상품 출시에 관한 자료 정도는 골자만은 믿어주는 게 상례다.
자료를 보고 사실 관계를 면밀히 확인하는 것도 쉽지 않다. 미래 일을 어떻게 확인한단 말인가. 현실에서 아직 짓지도 않은 아파트를 계획 상태에서 분양하듯, 가상 부동산도 서비스를 오픈 하지도 않은 채 먼저 분양하기도 한다. 아직은 구상과 계획만 있는 셈인데 투자자는 이를 구매하는 꼴이다. 이때 확인은 기업인의 머릿속에 들어가 그 구상의 진정성과 실현가능성을 알아내는 것과 같다.
당연히 확인이 불가능한 일이다. 기업인들은 그렇다 치고 궁금하기론 투자자의 머릿속도 마찬가지다. 투자할 때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뭘까. 취재기자들과 토론하면서 듣기론 투자하는 사람들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인 듯하다. 재미로 소액을 해봤다거나 선점하기 위해 다 잃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투자했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봉사 문고리 잡기처럼 운에 맡긴다는 말과 다르지 않은 답변이다.
시야가 이렇게 불투명한데 우리는 왜 가상 부동산이라는 안개 속으로 빠져드는가. 혁신이 져야 할 ‘운명적 굴레’ 때문이다. 기업에서의 혁신은 상상과 과학기술을 통해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일과 비슷하다. 많이 실패하고 성공하면 그 과실이 크다. 그것이 바로 혁신의 ‘운명적 굴레’다. 본인과 투자자의 피를 보더라도 큰 과실을 위해 실패를 마다하고 뛰어드니 어찌 ‘운명적 굴레’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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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를 활용한 가상 부동산 사업도 그럴 것이다. 어떤 경우엔 투자자의 피땀 어린 돈을 순식간에 휴지로 만들어버리는 물거품 같은 것이 될 수도 있고, 어떤 경우는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불어나는 좋은 자산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가상 부동산이 영원히 허망하게 되지만은 아닐 것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우리가 지금 당장 그것들을 명확하게 구별해낼 수 없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다.
금리가 오랜 기간 바닥을 기고 모든 자산의 가치가 치솟으면서 투자에 대한 욕망을 떨칠 수 없는 시대가 돼버렸다. 불확실성으로 변동성이 커질 때가 더 좋은 투자 기회라는 게 대체적인 인식이기도 하다. 가상 부동산도 이런 상황에서 욕망을 자극하는 아이템이 된 듯하다. 누구라도 그 욕망을 탓하기는 어렵다. 다만 우리 모두 아직 아무 것도 모른 채 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