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발현의 첫 단계인 RNA 전사의 종결 과정에 대한 학계의 30년 논쟁이 마무리될 수 있을까? 국내 연구진이 전사종결인자 단백질의 작동 원리를 종합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을 내놓았다.
KAIST(총장 이광형)는 생명과학과 강창원 명예교수와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홍성철 교수 공동 연구팀이 대장균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RNA 합성 종결인자의 작동 원리에 관한 오랜 논쟁을 잠재울 수 있는 ‘세 갈래 끝내기’를 제시했다고 30일 밝혔다.
전사란 유전자 DNA에 맞춰 RNA 중합효소가 RNA를 합성함으로써 유전정보가 DNA 거푸집에서 RNA 생산물로 복사되는 과정으로, 유전자가 발현하는 첫 단계다. 전사의 마무리 단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지는지에 대해 그간 여러 이론이 대립해 왔다.
■ 전사 마무리 준비: 쫓아가기 vs 기다리기
중합효소에 거푸집 DNA와 생산물 RNA가 함께 붙어있는 전사 복합체에서 RNA가 분리되며 전사는 종결 단계에 이른다. 이 단계에 이르기 전, 종결인자가 RNA의 특정 위치에 있는 종결 신호에 먼저 붙은 후 앞서 있는 중합효소를 ‘쫓아가서’ 전사를 종결한다는 작동원리가 1977년 처음 제시됐다.
이와 달리, 종결인자가 중합효소에 미리 붙어있다가 RNA 종결 신호를 ‘기다려서’ 전사를 끝낸다는 원리가 1994년에 제안됐다. 이후 28년 동안 종결 준비 단계에 관해서 두 학설이 맞서 왔다.
이번 연구는 둘 다 실제 일어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즉, 종결인자가 쫓아가기도 하고 기다리기도 하는데, 서로 배타적이지 않고 공존한다는 것이다.
■ 전사 마무리 종결 방식: 떼어내기 vs 밀어내기
생산물 RNA가 분리되는 종결 방식에 관해서도 학설이 갈렸다. 종결인자가 전사 복합체에 있는 RNA를 잡아당겨 벗겨내는 방식으로 분리한다는 주장이 2002년에 나왔다. 반면, 종결인자가 중합효소를 밀어냄으로써 RNA가 분리된다는 설이 2006년에 나와 서로 대립했다.
또 전사 종결로 RNA가 분리된 후 DNA는 중합효소에 남아서 곧장 재사용돼 쉽게 전사를 다시 시작할 수 있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RNA와 동시에 DNA마저 중합효소에서 떨어져서 전사 복합체가 일시에 무너져 재사용이 지체되는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는 것이 강창원‧홍성철 공동 연구팀에 의해 2020년 밝혀졌다.
이번 연구를 통해 전사 종결의 준비와 방식, 결과 각각에 대한 2가지 학설이 모두 실제 확증됐다. 그렇다면 준비-방식-결과의 조합으로 총 2×2×2=8가지 조합이 가능한데, 실제로는 일부가 밀접하게 연계돼서 3가지 조합만 실행된다고 밝혀졌다. 연구진이 이를 '세 갈래 끝내기'라고 이름 붙인 이유다. 각 갈래의 진행 속도가 서로 달라서 전사 과정에서 세 차례의 기회가 생긴다는 것도 밝혀졌다.
■ 세 갈래의 기회
첫 기회의 갈래에서, 쫓아가는 종결인자가 전사 복합체에서 RNA를 잡아당겨 떼어내고 DNA는 중합효소에 남겨두는 방식의 종결을 수행한다. 이것에 실패하면, 쫓아가는 종결인자가 중합효소를 밀어내서 DNA와 RNA 둘 다 떨어뜨리는 종결을 진행한다. 이 경우가 가장 흔하다. 마지막에, 기다리는 종결인자가 중합효소를 밀쳐내서 모두 갈라놓는 종결을 단행한다.
그간 학계에선 기다리는 종결인자가 쫓아가는 종결인자보다 중합효소와 먼저 만나기 때문에 더 빠르게 더 일찍 작동하리라고 추정해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기다리는 종결인자가 더 느려서 가장 마지막에 기회를 얻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세 갈래의 진행 순서는 서로 다른 염기서열의 여러 종결자 DNA에서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확인했다.
공동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위해 거푸집 DNA와 생산물 RNA에 각기 다른 형광물질을 붙인 후 중합효소와 DNA, RNA가 결합한 전사 복합체가 어떻게 변하는지 낱개로 실시간 관찰하는 생물리학적 연구기법을 창안했다. 이를 활용해 기존에 제안된 여러 작동원리를 검증하는 실험들 수행했다.
특히 종결인자가 어떻게 전사 종결을 유도하는지 보기 위해 종결인자가 RNA 종결 신호에 먼저 붙은 후 중합효소를 쫓아가서 끝내는 것을 측정하거나, 그렇지 않고 종결인자가 중합효소에 미리 붙어있다가 종결 신호를 기다려서 끝내는 것을 측정하는 분별 계측법을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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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핵생물인 대장균에 대한 이번 연구를 통해 향후 인간과 같은 진핵생물의 전사종결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을 전망이다. 또 전사 종결 관련 질병의 원인 규명과 치료제 개발, 항생제 개발 등에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공동 연구는 단일분자 형광 기술을 연구하는 물리학자, 유전자 발현을 탐구하는 생명과학자, 중합효소나 종결인자 같은 단백질 구조를 규명하는 화학자가 두루 참가한 다학제 기초연구다.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자지원사업, KAIST 고위험‧고성과 연구사업 등의 지원을 받았으며, 연구 성과를 담은 논문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