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軍에 쩔쩔매는 러시아 공군, 그 이유는?

서방의 수많은 군사전문가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개전 2~3일만에 러시아가 승기를 굳힐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침공 한달 가까이 러시아군은 주요 작전 목표 달성에 실패한 것은 물론 투입 지상군 병력의 10% 이상을 잃는 등 고전하고 있다.

특정 단위 부대가 병력의 10분이 1을 잃으면 전투능력이 상실된 것으로 평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할 가능성은 거의 사라진 것으로 봐야 한다. 다만 궁지에 몰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술핵무기를 사용해서라도 승리하려 할 것이라는 우려가 남아 있다.

2014년 4월15일 러시아 국경에서 160km 떨어진 슬로얀스크 상공을 비행중인 우크라이나 공군의 수호이-27 전투기 자료사진. [AP/뉴시스]

러시아가 고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속전속결을 자신한 끝에 전쟁이 길어질 경우에 대비한 보급과 병력 충원 방안을 준비하지 않은 점이 꼽힌다. 또 러시아 지상군은 공군과 해군에 비해 장비와 작전 지휘, 통신 체계 등 여러 면에서 낙후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도 큰 요인이다.

전쟁 시작 직전까지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 전력 차이는 특히 공군에서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었다. 우크라이나는 남부 일부 지역만 흑해와 아조프해에 면해 있는 사실상의 내륙국가여서 해군력은 거의 없는 것으로 평가되기에 비교대상이 아니다.

현대전에서 공군력의 우위는 전황을 결정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초기에 제공권을 장악하고 적국의 군사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파괴함으로써 승기를 잡은 뒤 지상군이 큰 저항없이 점령하는 것이 일반적인 전쟁 승리 시나리오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할 당시에 보여줬던 전술이 대표적 사례다.

그런데 러시아 공군은 우크라이나 침공 한달이 다돼도록 제공권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 압도적인 전력을 가진 러시아군이 승기를 잡지 못하고 오히려 반격당하는 궁지에 몰리는 가장 큰 전술적 이유이기도 하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22일(현지시간) "열세인 우크라이나 공군이 러시아 전투기에 반격하는 비결"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다음은 기사 요약이다.

우크라이나 조종사들은 매일 밤 은닉된 격납고에서 초긴장 상태로 대기한다. 안드리예도 그들 중 하나다. "출격" 명령이 떨어지자 안드리예는 수호이-27 초음속 전투기에 올라타 재빨리 활주로도 이동한 뒤 곧장 이륙했다. 그는 자신의 임무가 무엇인지도 명령받지 않은 상태에서 이륙부터 했다. 그렇지만 임무는 거의 매일 똑같았다. 압도적으로 우세한 러시아 공군을 상대하는 것이다.

안드리예 조종사는 "미리 임무를 확인하는 일은 없다. 그냥 이륙할 뿐이다"라고 했다. 러시아 공군은 아직도 우크라이나 제공권을 장악하지 못했다.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에서 가장 놀라운 일일 것이다. 러시아 공군은 우크라이나의 공군력과 대공방어망을 무력화하지도 못했다. 대신 현대전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전투기들간 공중전이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벌어지고 있다.

10차례 출격했던 안드리예 조종사는 "출격할 때마다 실제 전투가 벌어진다"면서 "러시아 전투기들은 매번 우리보다 5배는 더 많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공군이 선전하면서 우크라이나 지상군을 보호하고 도시에 대한 공격을 완화시킬 수 있었다. 러시아 순항미사일을 대거 요격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은 97대의 러시아 고정익 항공기를 격추했다고 밝혔다. 확인된 숫자는 아니지만 우크라이나의 강과 들판, 주택에 러시아 전투기의 파편이 흩뿌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공군의 작전 내용은 거의 대부분 비밀이다. 공격 당했지만 아직도 활주로가 남아 있는 서부의 활주로와 심지어 고속도로에서도 이착륙한다. 러시아는 하루 출격 횟수가 200회에 달하지만 우크라이나는 5~10회 뿐이다.

우크라이나 조종사들은 한가지 점에서 우위를 누린다. 러시아 전투기들이 우크라이나군의 대공미사일에 격추될 위험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유리 이나트 우크라이나 공군 대변인은 "우크라이나는 우리 땅에서 작전하기에 하늘에서 잘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전투기를 대공방어망 안으로 유인하는 작전을 설명하면서 "적기는 우리 대공망 위를 비행하고 있다"고 했다.

미첼항공우주연구소장 데이브 뎁툴라는 이라크 사막의 폭풍 공군 작전의 기본계획을 만든 사람이다. 그는 우크라이나 조종사들이 뛰어난 기량으로 숫자 열세를 극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요격되거나 부품 고장으로 출격이 불가능한 전투기를 제외하고 우크라이나가 현재 투입 가능한 전투기가 55대이며 조종사들이 "전과를 최대로 끌어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서방국에 우크라이나 공군력 보강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거듭 요청해왔다. 슬로바키아와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조종사들이 추가 훈련 없이 조종할 수 있는 미그-29 전투기를 보내려고 했으나 아직 인도하지 못한 상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16일 미 의회 화상 연설에서 "러시아군이 1000기에 가까운 미사일을 발사하고 폭탄은 셀 수도 없을 정도"라면서 전투기 공급을 요청했었다.

뎁툴라는 우크라이나에 전투기를 지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투기가 보충되지 않으면 조종사들보다 빨리 전투기가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조종사가 필요없는 드론 역시 우크라이나군의 무기지만 드론으로 제공권을 장악할 순 없다. 우크라이나는 털털거리는 터키제 프로펠러방식 드론 바이락타르 TB-2를 보유하고 있다. 이 드론이 지상의 탱크와 대포를 파괴하는데는 효과가 크지만 공중 표적을 공격할 순 없다. 우크라이나 공군이 망가지면 러시아 전투기가 드론을 쉽게 요격할 수 있다.

공군 전투에서 자원자들의 역할도 크다. 러시아 전투기를 목격하고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모여서 속도와 고도를 산출한다. 또 민간 장비를 모두 탈거한 항공기도 유사시에 대비해 공군에 기부됐다.

현대전에서 공중전은 거의 벌어지지 않는다. 최근 수십년간 사례가 손에 꼽을 정도다. 미 조종사들은 1991년 1차 걸프전 이래 집중적인 공중전 훈련을 받지 않고 있다. 최근 사례는 발칸 전쟁에서 10차례, 시리아에서 1대의 전투기를 요격한 것이 전부다.

안드리예 조종사는 심야 출격 때 장비에 의존해 적기의 위치를 파악한다고 했다. 적기기 항상 하늘에 떠 있다는 것이다. 직접 러시아 전투기를 격추했지만 몇 대를 격추했는지는 밝히지 못하도록 돼 있다고 했다. 그는 수십 km 밖에서 표적을 공격할 수 있다고 했다. "내 임무는 주로 공중 표적인 적기를 요격하는 것"이라며 "미사일이 표적에 고정되길 기다려 발사한다"고 했다.

러시아 전투기를 격추하면 "적기가 더 이상 평화로운 우리 도시를 공격하지 못하게 돼 기쁘다. 러시아 전투기들이 우리 도시를 폭격하는 건 실제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공중 전투는 대부분 밤에 벌어진다. 러시아 전투기들이 대공무기 공격을 비교적 덜 받는 밤에 출격하기 때문이다. 안드리예는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벌어지는 공중전에 투입되는 러시아 전투기는 최신형인 수호이-30, 수호이-34, 수호이-35 기종이라고 했다.

그는 "러시아 전투기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가 표적이 고정되길 기다리던 중 지상에서 내 전투기를 향해 미사일이 발사됐다는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면서 발사된 미사일의 연료가 소진될 때까지 여러차례 급선회, 급상승, 급강하 기동을 했다고 밝혔다. "당시 발사된 미사일의 종류와 발사 거리에 따라 내가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터뷰하는 낮동안에도 "몸 속에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것을 느낀다. 매일 밤 출격 때마다 전투가 벌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안드리예는 10대 때 공군 조종사가 되기로 하고 하르키우 공군 대학을 졸업했다. "나도 친구들도 우리가 직접 실제 참전할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없지만 세상 일이 그렇게 되질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