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 상관 없이 이식 가능한 장기 만든다

캐나다 연구진, 장기에서 이식 거부 반응 일으키는 항원 제거하는 기술 개발

과학입력 :2022/02/17 04:00

장기 기증자와 수혜자의 혈액형에 상관 없이 이식할 수 있는 장기를 만들 길이 열렸다. 기증받은 장기에 특수 효소 처리를 해 마치 누구에게나 이식 가능한 O형 혈액형 보유자의 장기처럼 만드는 것이다. 

캐나다 연구진이 기증 받은 장기의 혈액형을 누구에게나 안전하게 이식 가능하도록 전환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16일(현지시간) 밝혔다. 이렇게 되면 기증자와 환자의 혈액형에 상관 없이 위급한 환자부터 장기 이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 연구는 학술지 '사이언스 이식 의학(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에 게재되었다. 

■ 혈액형 차이 따른 거부 반응은 장기이식 걸림돌 

혈액형은 적혈구에 A항원과 B항원이 있는지 여부 등에 따라 갈린다. A형과 B형은 각각 A항원과 B항원을, AB형은 두 항원을 모두 갖고 있다. 반면 O형은 두 항원 모두 갖지 않는다. 사람 장기 표면의 혈관에도 이들 항원이 있다. 

반대로 혈액형이 A형과 B형인 사람은 각각 B에 대한 항체와 A에 대한 항체를 갖고 있다. AB형은 항체가 없고, O형은 두 항체를 모두 갖는다. 

ABO식 혈액형 결정 방식 (자료=위키피디아)

이런 관계에 따라 사람은 원칙적으로 같은 혈액형 또는 O형의 사람에게만 수혈이나 장기이식을 받을 수 있다. O형은 모든 사람에게 수혈하거나 장기를 기증할 수 있지만, 받는 것은 같은 O형에게서만 가능하다. AB형은 모든 사람에게 혈액이나 장기를 받을 수 있지만, 다른 혈액형의 사람에게 줄 수는 없다.    

예를 들어 A형인 환자에게 B형인 사람의 장기를 이식하면, A형 환자 혈액의 B항체가 기증자 장기의 B항원과 작용해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 반면 O형 기증자가 A형 환자에게 장기를 주면, 항원이 없는 O형 장기는 A형 환자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 

연구진은 이런 원리에 착안, 장기에서 이식에 문제가 되는 항원을 제거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적출한 폐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체외 폐 관류(EVLP, Ex Vivo Lung Perfusion) 시스템에 A형 기증자의 폐를 넣고 폐 표면에서 항원을 제거하는 효소 처리를 실시했다. 

■ 이식할 장기에서 거부 반응 일으키는 항원 제거 

이후 폐에 O형 혈액을 접촉시켰으나 폐는 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았다. 혈액 부적합 이식에 따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것이다. 반면 효소 처리를 하지 않은 기증자의 다른 쪽 폐는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EVLP 시스템을 통해 폐에서 이식에 문제를 일으키는 항원을 제거하는 모습 (자료=UHN)

앞서 연구진은 2018년 피에서 항원을 효과적으로 제거해 혈액형을 O형으로 바꿀 수 있게 하는 효소들을 발견한 바 있다. 이번 연구는 당시의 성과를 발전시킨 것이다. 

최근 의학의 발달로 기증자와 수혜자의 혈액형이 달라도 장기를 이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위해서 환자는 수술 전 기증자 혈액에 대한 항체를 없애는 주사를 맞아야 한다. 혈액에 본래 있던 항체는 혈장 교환술을 통해 제거한다. 

반면 이번 연구는 환자가 아니라 이식되는 장기를 처리함으로써 혈액형에 구애받지 않는 장기 이식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기술이 자리잡으면 장기 이식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이 혈액형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일이 줄어들 전망이다. O형 환자는 폐 이식을 위해 A형 환자에 비해 2배 이상 오래 기다려야 하고, 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할 확률도 20% 높은 실정이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연구를 주도한 캐나다 대학보건네트워크(UHN) 아즈메라장기이식센터 마셀로 사이펠 박사는 "혈액형에 구애받지 않는 장기를 확보하면 혈액형 차이로 인한 장기 이식의 제약을 극복하고, 환자 상태에 우선순위를 둘 수 있어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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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은 향후 1년에서 1년 반 사이에 임상 실험을 위한 제안 작업에 나설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