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고기만 찾아다니는 독수리, 그들이 꼭 필요한 이유

독수리 줄고 들개 늘어나면서 인간 거주지 위생 악화

과학입력 :2022/02/14 21:00    수정: 2022/02/15 08:40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대표적 동물로 하이에나와 독수리가 있다. 하이에나보다는 굶어서 얼어 죽는 표범이 되고 싶다는 노래 가사가 있을 정도로 비호감 동물이지만, 이들이 죽은 짐승의 시체를 먹어치우지 않으면 병원균과 벌레가 창궐하고 전염병이 도는 등 위생이 악화된다.   

특히 아프리카흰등독수리나 러펠독수리 등은 이디오피아 마을 도살장에서는 '뒷처리 담당 일꾼'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지역 생태계에 기여가 크다. 

이디오피아에 서식하는 아프리카흰등독수리, 모자쓴독수리, 큰부리까마귀가 나란히 앉아 있다. (자료=에반 부실리)

하지만 최근 서식지 파괴 등으로 개체 수가 줄어든 독수리가 지역에서 밀려나고, 빈 자리를 들개나 까마귀 같은 다른 청소 동물이 메우면서 사람이 거주하는 도시 지역 위생도 악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유타대학교와 조류보호 활동 단체 페레그린펀드 연구진은 14일(현지시간) 이디오피아 등 아프리카 북동부 '뿔' 지역 독수리에 대한 이 같은 연구 결과를 학술지 '저널 오브 와일드라이프 매니지먼트'에 게재했다. 

이디오피아와 소말리아 등을 포함하는 아프리카 북동부 '아프리카의 뿔' 지역

■ 생태계의 청소부, 대형 독수리

독수리는 죽은 대형 짐승의 고기를 빠르게 먹어치워 사체를 처리한다. 강한 산성 위액을 지닌 소화계를 갖고 있어 사체에서 발생하는 병원균에도 끄덕 없다. 독수리 덕분에 사체에 있던 균이 외부로 퍼지지 않는다. 또 가죽과 살갖을 갈가리 찢어 놓는 독수리와 뼈를 삼켜버리는 독수리 등으로 종류가 세분화되어 있어 사체를 더욱 깔끔하게(?) 처리한다.

이들 독수리는 현재 위기에 처했다. 환경 오염과 인간 활동 여파로 이들의 먹이가 되는 짐승 사체에 독수리에게 해로운 물질이 쌓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디클로페낙은 소 등 가축을 위한 소염제에 쓰이지만 독수리에게는 독성이 있다. 맹수를 잡느라 놓은 독약을 먹은 짐승, 동물이 삼킨 납 총알 등도 생명을 위협한다. 

(자료=픽사베이)

게다가 독수리는 새끼를 적게 낳고, 성장에도 오랜 시간이 걸려 개체 수를 회복하기 쉽지 않다. 

연구진은 2004년 지역 생태 조사를 통해 이들 독수리가 지역 조류 중 가장 위험에 처한 종류임을 밝힌 바 있다. 2016년 다시 이뤄진 조사에서도 이들은 가장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는 조류로 나타났다. 러펠독수리는 최근 40년 간 90% 이상 감소했다. 아프리카흰등독수리와 모자쓴독수리도 80% 이상 줄었다. 

■ 독수리 없는 곳에 들개가 왕 노릇?

독수리가 빠진 자리는 다른 동물이 쉽게 채우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2014년부터 2019년까지 5년에 걸쳐 이디오피아 지역 6개 도살장에서 청소 동물들이 처리한 사체의 수량을 측정했다.

초기에는 도축 후 남은 고기의 절반을 아프리카흰등독수리와 러펠독수리 등이 처리했다. 이들은 하루에 250㎏의 고기를 먹어치웠다. 5년 후 도살장을 찾는 이들 독수리 수는 73% 줄었다. 모자쓴독수리도 15% 감소했다. 반면 도살장을 찾는 들개는 2배 이상 늘었고, 까마귀도 숫자가 증가했다.  

모자쓴독수리 (자료=에반 부실리)

문제는 들개나 까마귀가 독수리만큼 왕성하게 사체를 처리하지 못 한다는 점이다. 2019년 전체 사체 처리량은 2014년에 비해 2만㎏이나 줄었다. 

이에 따라 전염병 확산과 수질 오염, 악취, 해충 확산 등의 위험이 더 커졌다. 들개가 늘어남에 따라 광견병 확산 우려도 커졌다. 1990년대 인도와 파키스탄에서도 독수리 개체 수가 줄어들고 들개가 늘어난 후 광견병 환자가 증가한 사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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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에 참여한 에반 부실리 박사는 "독수리가 줄어들면 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사람들의 위생도 악화된다"라며 "독수리 보존에 나서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