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규 칼럼] 초월적 인간능력학 개론

전문가 칼럼입력 :2022/02/14 13:28

이정규 비즈니스 IT컬럼니스트
이정규 비즈니스 IT컬럼니스트

2019년 10월말 네팔의 한 젊은이가 전세계 산악인을 놀라게 했다. 그의 이름은 니르말 푸르자(NIRMAL PURJA). 세계적으로 용맹하기로 이름난 네팔의 용병 구르카(GURKHA) 출신이다. 그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형들을 따라 용병의 길을 선택하였고, 영국군 특수부대의 멤버로서 몇 년만 더 근무하면 연금을 받을 좋은 기회도 있었다. 그런데 돌연 제대를 하고 PROJECT POSSIBLE 14/7이라는 등반계획을 짠다. 

푸르자가 위대한 것은 프로젝트 이름처럼 단 7개월이 안되어 8천미터급 14봉을 모두 등정하는 신기록을 세웠다는 것이다. 푸르자 이전의 최단 기록은 故 김창호님의 7년 10개월 6일이었다. 목숨을 바쳐 도움을 주고도 백인의 이름에 가려 잊힌 네팔 셀파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 도전했다고 한다. 그를 보면 도대체 인간 능력의 한계는 어느 정도일까 궁금해진다.

때때로 후배가 경력개발에 대한 조언을 청할 때가 있다. 이 경우 내가 자주 들먹이는 키워드는 정체성(IDENTITY), 지배가치(GOVERNING VALUE), 능력, 역량, 지식 그리고 스킬과 같은 말이다. 정체성은 지배가치(혹은 지배원칙)와 통하는 단어로서 이것이 분명치 않으면 장기적 경력개발의 방향을 잡을 수가 없다. 인생을 항해로 비유해 본다면, 배에서의 나의 역할이 정체성이고, 배가 향하는 방향이나 목적지가 지배원칙이 된다. 정체성이나 지배가치는 모두 상황 속에서 형성되는 관념이다. 미약한 정체성이나 다수의 정체성은 삶을 혼란으로 내몰아가겠지만, 지배가치는 여럿 가질 수 있고 가치별로 우선순위를 정할 수도 있다. 그 다음 용어인 능력, 역량, 지식, 스킬의 경우는 뜻이 엇비슷하여 구분이 쉽지 않다.

능력을 넓게 정의한다면 역량, 지식, 스킬의 개념을 포괄한다. 그러나 지식은 행동을 상정하지 않지만, 능력, 역량, 스킬은 행동을 전제한다. 비행기 조종법 매뉴얼을 달달 외어서 지식이 높아졌다 하더라도 비행기를 다룰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러면 능력과 역량은 어떻게 다를까? 역량(COMPETENCY)과 능력(CAPABILITY)은 한글로는 명확히 구별되지 않는 단어이다. 그래서 전자사전에서‘역량’이나 ‘능력’을 검색하면, 영단어 두개가 같이 제시되곤 한다. 역량의 라틴어 어원인 COMPETENTIA는 ‘자격 충족’의 뜻을 가지고 있고, 능력의 라틴어 어원인 CAPABILIS는 ‘파악하거나 보유할 수 있는’의 뜻을 가진다. 라틴어 의미로도 이해가 쉽지 않지만, 두 용어의 뜻은 경영학에서 다음 세가지의 관점에서 차이가 난다.

첫째로 시간 개념의 차이가 다르다. 역량은 현재형이지만, 능력은 미래 시간을 포함한다. 당장은 직무 역량이 미흡하더라도, 회사가 인내하는 시간 안에 직무역량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면 능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둘째 업무 도메인의 차이가 있다. 역량은 직원의 직책과 떼어 놓고 설명할 수 없지만, 능력은 직무 독립적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개발팀에 근무하는 K가 프로그램 역량은 미흡하지만,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능력은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다. 세번째 차이점은 집단 적용의 관점이다. 영어단어 CAPABILITY(능력)는 개인과 조직레벨 모두에 활용가능 하지만, COMPETENCY(역량)는 개인역량에 한정해서 사용한다. 물론 이상의 설명은 영어단어에 따른 구분이다.

한편 능력의 범주는 두가지가 있다. 도메인 의존적인 능력과 도메인 초월적인 능력이다. 니르말 푸르자는 용병이었고 산악인이 되었다. 그러나 용병의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 무기를 다루는 능력은 산악인의 능력과 호환된다. 극한의 과제에 도전했던 니르말은 군인과 산악인 사이에 공유될 수 있는 도메인 의존적인 능력을 갖춘 것 같다. 아울러 도전을 즐기는 마음, 셀파의 기치를 높이겠다는 스토리텔링, 그리고 함께 등반했던 셀파와의 팀워크 덕택에 최고의 효율을 발휘했다. 하지만 천하의 니르말이라도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도전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그래서 변화된 환경을 맞닥뜨렸을 때에는 도메인 초월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적응해 나갈 수 있다. 현대 사회는 이질적인 주체와 뜨개질하듯 매듭으로 엮어진 사회이다. 이질적인 존재는 서로 다른 도메인 환경에서 성장한 주체들이니, 결국 미래의 능력은 도메인 초월적인 능력을 필요로 한다.

도메인 초월적인 능력은 무엇일까?  이미 OECD와 같은 글로벌 조직의 교육모델이 어느 정도 도메인 초월적인 교육철학을 설명하고 있다. OECD는 2003년에 DeSeCo(Definition and Selection of Key Competences)라는 프로젝트의 결과, 다가올 세상의 핵심 역량으로 다음의 3가지를 들었다(OECD, Definition and Selection of Key Competencies: executive Summary, 2003).

*도구의 지적활용 능력(Use tools interactively)

*이질적 집단과의 상호작용(Interact in heterogenous group)

*자율적 활동(Act autonomously)

모두 좋은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이 공동체 안에서의 인간능력 향상에 도움을 줄 수도 있겠지만, 인공지능이 지배할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극복하는 대안이 될지 불안하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여,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운명의 시간을 특이점(Singularity, 싱귤래러티)이라고 부른다. 과학개념상으로 싱귤래러티는 독립변수와 종속변수의 인과관계를 공식으로 계산해 낼 수 없는 위상파괴의 시공간을 말한다. 천체물리학에서는 빅뱅과 블랙홀과 같다. 또한 싱귤래러티의 개념은 한번 파괴된 위상은 회복할 수 없다는 전제가 있다. 인간지능을 넘어선 AI가 인간을 지배하게 될 세상이 오면, 그 역사를 절대로 되돌릴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하니 인류에게 두번의 기회는 없다.

오피니언 리더들 사이에서 조만간 싱귤래러티의 세상이 닥쳐올 것이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인공지능 기술이 인류의 웰빙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의견과 재앙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대립되어 우리를 헷갈리게 만든다. 기계와 인간의 경쟁을 말할 때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미국 개척시대 철도 건설의 영웅 존 헨리(John Henry)의 서글픈 이야기이다. 1870년 헨리를 고용한 C&O 철도회사는 작업 능률을 높이기 위하여 증기의 힘으로 암석에 다이너마이트 구멍을 뚫는 스팀 드릴을 도입한다. 

인간이냐 기계이냐? 보스의 내기 제안에 가장 힘센 스틸 드라이버인 헨리가 나섰다. 반나절 동안의 작업시간 동안 스팀 드릴은 9피트(약 2.7미터)의 구멍을 뚫었는데, 헨리는 15피트(약 4.5미터)를 뚫고 극적으로 승리한다. 그러나 헨리는 용을 너무 쓴 나머지 바로 누워 버렸고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미국 어린이의 유명 동화가 된 이야기는 뛰어난 인간이라도 자동기계를 이용하는 일반 사람과 경쟁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하는 메시지를 던지는 듯하다. 미래학자들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연장선에서 미래사회를 예측한다. 그러나 인간들이 어떻게 이러한 변화에 대응해 나가야 할지 대안을 제시한 경우는 많지 않다. 혹 대안을 제시한다고 하여도 주로 환경변화에 따른 적응방법을 말한다. 그러나 내가 제기하고자 하는 문제인식의 핵심은 왜 우리는 “적응만을 이야기하는가?”하는 것이다.

영화 '투모로우 랜드'

디즈니 채널의 영화 중에서 조지 클루니(프랭크 워커 역) 주연의 투모로우랜드(Tomorrow Land)가 있다. 영화에는 두개의 인공지능이 등장한다. 선형적 공식에 따른 확률 100%로 디스토피아를 예언하는 인공지능(나쁜 늑대의 메타포), 그리고 꿈꾸는 사람을 찾게 디자인되었고 인류에 헌신하는 인공지성 로봇(좋은 늑대의 메타포)이다. 영화는 여자 주인공 케이시 뉴튼과 좋은 인공지능 로봇인 아테나의 이야기로 풀어간다. 여주인공 뉴튼은 디스토피아의 미래가 아니라 인공지능과 더불어 공존하는 웰빙 세계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 젊은 세대를 상징한다. 그리고 영화는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선언적 메시지로 끝이 난다.

워커: 세상이 멸망할 거라고 떠벌리는 사악한 건물을 허무는 건 어렵지 않아요. 정말 어려운 건, 그 자리에 뭘 짓는가 하는 것이죠.  그렇게 하려면 우리 둘이선 못해요. 여러분이 필요하죠. …뉴튼양. 뭘 찾아야 하는지 말해 줄래요.

뉴튼: …꿈꾸는 사람들. 우리가 찾는 건 꿈을 가진 사람들이에요. 착한 늑대(좋은 인공지능)에게 먹이를 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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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 난, 여러분 전임자(로봇 아테나)에게 0과 1로 만들어졌다고 비아냥댄 적이 있어요. 내가 틀렸던 거죠. 그 이상이었어요. 여러분도 그 이상이지요. 여러분이 할 일은 아직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을 찾는 겁니다. 그것이 인류의 미래니까!

젊은 세대들이 더 나은 미래와 웰빙 세상을 욕망하고, 선형적인 적응 보다는 경로이탈과 경로도약을 감행하는 용기가 있는 초월적 능력자가 되기를 고대한다. 그런 여러분에게 인공지능은 영화의 인공지성 아테나와 같은 친구가 될 것이며, 싱큘래러티가 만들 디스토피아는 없다! 나쁜 늑대에게 무릅을 꿇지 말고, 좋은 늑대를 양육하자.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정규 비즈니스 IT컬럼니스트

(현)사이냅소프트 경영혁신담당 중역. 경영정보학 박사, 정보관리기술사, 미국회계사. IBM, A보안솔루션회사 및 보안관제회사, 기술창업 스타트업, H그룹 계열사, 비영리 D재단, 감리법인 등에서 제조산업전문가, 영업대표, 사업부장, 영업본부장 및 컨설팅사업부장, 대표이사, 기술연구소장, 사무국장, 수석감리원을 역임했다. KAIST 기술경영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벤처창업의 이론과 실제'를 가르쳤고, 국민대 겸임교수로 '비즈니스 프로세스'와 'IT컨설팅'을 출강했다. 저서로는 '동시병행설계', '딥스마트', '비즈니스 프로세스', '프로세스 거버넌스', '실전IT컨설팅' 등이 있다. 프로보노 홈피 deepsmart.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