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OTT, 글로벌 시장 '출격의 해' 될 듯

[2022년 전망②- OTT·콘텐츠] 티빙·웨이브·왓챠, K콘텐츠 열풍 촉매

방송/통신입력 :2021/12/23 12:34    수정: 2022/01/03 15:07

코로나19가 2년째 기승을 부리면서 IT업계에도 많은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비대면과 원격근무에 이어 메타버스가 새로운 키워드로 떠올랐다. 이런 상황은 2022년에도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물론 2022년 경제를 지배할 다른 키워드도 적지 않다. 대통령 선거를 비롯해 여러 변수들이 내년 IT 경기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지디넷코리아는 '2022년 전망' 시리즈를 통해 IT 주요 분야별 경기를 전망한다. [편집자주]

올해까지 글로벌 OTT들이 한국 땅에 진출해 각축전을 벌였다면, 내년은 토종 OTT들이 대만, 일본, 미국 등 글로벌으로 뻗어나가는 ‘출격의 해’가 될 전망이다.

해외 진출 선봉에 나선 티빙은 대만, 일본을 시작으로 2024년엔 북미 시장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모회사 CJ ENM은 오리지널 콘텐츠 강화를 위해 글로벌 콘텐츠 제작사들과 연이어 콘텐츠 공동 제작 계획을 알리고 있다. 웨이브는 동남아에서 북미 시장에 먼저 진출하기로 전략을 선회했고, 시즌 관계사 KT스튜디오지니도 글로벌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왓챠는 이미 지난해 일본에서 OTT 사업을 시작했다.

웨이브 티빙 왓챠 CI

그런데 토종 OTT들이 해외로 가는 사연은 복잡하다.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게임’ 등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입증한 K-콘텐츠로 자신감이 충만한 상태여서, 글로벌 OTT들이 국내 시장을 차지하고 있어서, 혹은 코로나19나 코드커팅족의 영향으로 미디어 패러다임이 급변했다는 결과 한 줄로 설명하기엔 간단치 않다.

무엇보다 국내 미디어 업계가 느끼는 감정은 위기의식이다. OTT뿐 아니라 전통적인 유료방송 사업자들도 함께 얽힌 문제다. 국내 미디어 업계는 짧은 시간 동안 사업 재편과 인적 쇄신을 진행해야 했다.

하지만 이들의 든든한 뒷배가 돼 줘야할 정부는 아직도 뾰족한 지원책을 내놓지 못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내년 OTT 해외진출을 위해 예산을 확보했고, 이마저도 3억5천만원으로 미미한 수준이다. 콘텐츠 자율등급분류제, 세제 지원 등 나머지 지원책들은 연내 현실화 되기 어려워 보인다.

이제 막 걸음마 뗀 토종 OTT들의 글로벌 진출

오늘날의 미디어 변화를 설명할 때 OTT의 원조 넷플릭스와 미디어 업계 터줏대감 디즈니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창업자는 “앞으로 10~20년 뒤에 사람들은 리니어 채널이 있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단방향 콘텐츠 서비스인 유료방송이 리니어 채널에 속한다.

OTT로 인해 콘텐츠 공급 사슬에 얽힌 각종 채널들은 대대적인 변화를 겪어야 했다. 넷플릭스, HBO맥스, 훌루 등 물밀 듯 몰려오는 OTT들로 인해 디즈니도 OTT 디즈니플러스를 출시하게 됐다. 해외 유통 사업을 포기하고,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직접 파이프라인을 꽂는 사업 모델을 택한 것이다.

디즈니가 해외 유통 채널보다 디즈니플러스를 통한 콘텐츠 공급에 주력하면서 하면서, 국내 유료방송 채널에서도 더이상 디즈니의 콘텐츠를 볼 수 없게 됐다. 사진은 디즈니플러스에서 제공 중인 영화 스타워즈에 나온 베이비 요다의 모습 (사진=디즈니플러스).

각국 이용자들은 더이상 디즈니 콘텐츠를 방송 채널에서 만나기 어렵게 됐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국내 디즈니 채널에서 디즈니 콘텐츠가 완전히 빠지고, 그 자리엔 현재 무민, 팡팡다이노 등 글로벌 어린이 콘텐츠로 채워졌다. 미디어로그가 디즈니 채널을 인수하며, 채널명을 더키즈로 바꿨다.

체급 차이가 크지만, 디즈니가 겪은 변화가 우리나라 미디어 업계에서도 일어날 전망이다. 애초에 국내 전통적인 유료방송 시장은 저가 요금 구조를 탈피하지 못하던 상황이어서, OTT 같은 다른 콘텐츠 서비스에 주력하기 힘들었다. 국내 유료방송시장의 가입자 당 평균 매출액(ARPU)는 2017년 기준 1만336원으로 OECD 평균의 42.5%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여기에 유료방송 사업자의 불안정한 수익을 부추기는 것이 글로벌 OTT 등 외부 요인이었다. 이상원 경희대 교수 연구에 따르면 10월 기준 복수 OTT 이용자들은 평균 1.89개를 동시에 사용 중이었다. 지난해 KBS 공영미디어 연구소 조사에서는 1.7개로, 올해 더 늘어난 것이다.

이같은 배경으로 인해 우리나라 미디어들도 OTT를 통한 콘텐츠 공급방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해외 진출도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타의적으로 해외 진출 걸음마를 떼야 했다는 게 토종 OTT들이 마주한 상황이다.

양지을 티빙 대표는 “과거 싸이 강남스타일의 인기처럼, 티빙의 글로벌 진출도 많은 곳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으며 등 떠밀리듯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고, 윤용필 스카이TV 대표는 "지금과 같이 유료방송 사업 미래 생존에 위기의식을 갖게 된 건 처음이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는 사이 글로벌 OTT들은 매섭게 기세를 확장해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 올해 디즈니플러스, 애플TV플러스가 국내 사업을 시작했으며 내년에도 HBO맥스 등 또다른 OTT들이 국내 사업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선계약 후공급' 보챈 덕에…30년 묵은 유료방송 제도 개선 가시화

미디어 대변혁으로 인해 30년 된 낡은 규제도 뜯어 고쳐야 했다. 채널사용사업자(PP)들은 케이블TV, IPTV, OTT 각 사업자로부터 콘텐츠 공급에 대한 대가를 지급받을 때 규제 비대칭성 문제를 안고 있었다. 해당 규제 논의는 수년째 지속돼 왔으나 올해 CJ ENM이 나서서 논의를 진척시켰다. 대형 MPP인 CJ ENM은 OTT 사업을 모색하면서 더 많은 실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업계 토론과 정부 연구반을 통해 유료방송 시장의 병폐가 저가 요금 구조에서 비롯됐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CJ ENM 등 PP 업계가 요구한대로 정부는 일명 ‘선계약 후공급’ 원칙을 골자로 한 방송채널 대가산정 제도 개선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막판 조율 작업 중이다. 이르면 연내 발표, 내년 현실화를 앞두고 있다. 선계약 후공급이란 PP가 TV 플랫폼 업체들에 미리 콘텐츠를 공급하고 1년 뒤 콘텐츠 대가를 받는 관행을 뒤엎고 먼저 콘텐츠 계약을 하겠다는 원칙이다.

유료방송 규제 개선안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내줘야 하는 법이다. IPTV 사업자들은 선계약 후공급에 원칙상 공감하면서도, PP들에게 배분할 비용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플랫폼 사업자들은 전반적으로 자율적인 시장 변화와 규모의 경제를 일으킬 수 있도록 소유 규제를 완화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책도 이번 유료방송 제도개선 가이드라인안에 담겼다.

가이드라인에는 지상파 방송사가 위성방송사의 지분을 소유하거나, 지상파와 종합유료방송(SO)사업자 간 지분 소유와 관련해, 상호 33% 지분 초과 소유제한을 폐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한 위성 방송사간 지분 인수에도 제한을 푼다. 각종 유료방송사업자, 지상파가 제한된 비율로만 PP를 소유할 수 있었는데, 이를 폐지하거나 라디오, 데이터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에 한해 폐지를 검토한다.

김혁 SK브로드밴드 미디어전략본부장 겸 미디어에스 대표는 “행위 규제나 소유 규제는 지금 매우 적절한 제시라 판단하고, 이 모든 질문의 국내 미디어 산업의 규모를 키우냐고 물었을 때 맞다면 맞는 정책이라 할 수 있다”며 “글로벌 OTT에 견줘 매력도를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자본이 유입돼야 하고 그럴 경로를 열어주는 것이 소유규제 완화”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디어 업계 체질 개선과 참여 기회를 확대하면서 국내 미디어가 미국처럼 수직 계열화를 가능토록 해 다양한 규모의 경제를 일으키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틀”이라며 “이것이 전제되면 수신료 문제도 해결되고 돈이 풍부해지면서 아무도 다투지 않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용필 스카이TV 대표도 같은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그는 “글로벌 OTT들이 제공하는 차별적 콘텐츠 경험의 경쟁 패러다임은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게 핵심이다”며 “보편적 시청권을 누려왔던 국내 시청자들과 비차별적 콘텐츠를 제공하는 모델에 익숙했던 국내 미디오 콘텐츠 기업들에게 그동안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생태계를 경험해보고 생존해야 하는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콘텐츠의 힘은 연결에서 온다”며 “앞으로 국내 미디어 콘텐츠 기업이 글로벌 OTT와의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케이블TV가 시작되면서 30년 넘게 국내를 지배했던 거대한 담론에서 벗어나 빠르게 국내 미디어 콘텐츠 시장의 규모를 확장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채비 나선 토종 OTT의 바람…"자율등급제·세제지원"

선계약 후공급 원칙이란 큰 틀에서 유료방송 대가산정 갈등의 합의를 이뤘고, 이 문제의 중심에 서게 된 OTT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직까지 유료방송 매체 중에선 IPTV가 가입자를 지속 늘리며 시장 입지를 키우는 상황이지만, 향후 주류 미디어로 자리매김 할 OTT에 대한 진흥책도 때를 놓쳐선 안 된다.

티빙, 웨이브, 왓챠 등 토종 OTT 사업자들은 글로벌 사업자들과의 역차별을 이겨내고, 시의성 있게 해외시장을 개척할 수 있도록 자율등급분류제, 세제 혜택, 펀드 조성 등 여러 가지 방안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국회에서 관련 OTT 진흥 법안들이 계류된 상태고, 관련한 정부 부처들도 OTT 업무 관할을 두고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양지을 티빙 대표는 "OTT는 시의성이 강한 사업인데 현행 제도대로 콘텐츠를 심의하려면 3~5개월씩 걸리고, 예측 불가능하기도 하다"며 "글로벌 사업자들처럼 몇만편 준비해놓고 글로벌 진출하는 게 아니라 라이브러리를 쌓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자율등급제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티빙의 2021년 하반기 최고 화제작 '술꾼도시여자들'

이어 "우리의 경쟁상대는 10조원 넘게 투자하는 스튜디오나 OTT 사업자들인데, 그들이 국내에 적극적으로 들어와 자신의 자본을 적극 투자하고 있다"며 "정부의 문화 예산도 OECD 대비 낮은 수준이고, 주요 선진국에서는 제작비의 20~30%를 세제지원 받는 상황이어서 역차별을 겪지 않도록 글로벌 수준의 세제지원이 가능하도록 (정책 입안자들이) 도와달라"고 강조했다.

이희주 콘텐츠웨이브 대외협력실장은 “매출의 50%까지도 직접연동비로 비용이 나가는 상황”이라며 “콘텐츠서비스사업자(CP) 사용료, 망이용료, 결제수수료 등이 모두 비율로 나가고 있어 이들을 떼주고 나면 수익은 1~2% 남을까 말까 한 상황이다”고 지적했다.

정부에 바라는 점은 차치하고서도 티빙은 상당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국내 미디어 유통의 수익성 개선을 발판으로 해외 대형 콘텐츠 사업자들과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해 공급력을 높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지난달 티빙 모회사 CJ ENM은 영화 라라랜드 제작사인 엔데버콘텐츠를 약 9천200억원에 인수해, 전세계 대중문화의 중심인 미국에 글로벌 제작기지를 마련했다. 또 바이아컴CBS과는 CJ ENM의 고유 IP를 바탕으로 영화, 드라마 등 콘텐츠를 제작한다. 앞서 5월 CJ ENM은 양질의 콘텐츠 생산을 위해 앞으로 5년간 5조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양 대표는 “티빙은 한국밖 시장에서도 K-콘텐츠로 주류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며 “우리가 진출하는 지역(대만, 일본, 미국)에서는 반드시 상위 3위 안에 드는 사업자가 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또한 우리가 이 사업을 잘 해내 큰 과실을 우리 콘텐츠 업계에 돌리겠다는 장대한 목표가 있다”며 “정부가 OTT에 지원을 해주면 감사하겠지만 그 수준이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여의치 않더라도 전 세계에서 가장 나은 문화 사업을 하는 회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