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국내 스타트업계에 보물같은 책 한권이 '벼락'처럼 떨어졌다. 2015년 8월이다. 이후 이 책은 스타트업 경영의 본질을 다룬 '바이블'로 불리웠다. 프라이머 설립자이자 권도균 대표가 쓴 '스타트업 경영수업'이란 책이다. 10년간 그가 창업 현장에서 발로 뛴 경험과 5년간 30여 스타트업을 인큐베이팅하며 깨달은 것을 담았다.
책에는 스타트업 경영의 본질을 꿰뚫은 통찰적인 문구가 넘쳐난다. 예컨대 이렇다. '아이디어는 그냥 아이디어'라고 한다. '두려움과 게으름과 관료화를 이겨내고 제품에 가치를 담으라'고 말한다. '특정한 고객의 특정한 문제에 집중하라'며 '솔루션이 아닌 문제를 찾으라'고 조언한다. 창업자가 가져야 할 마인드도 빼놓지 않았다. '형용사에 속지 말고, 스스로를 속이지 말며, 전진하고 있다고 오해하지 말라'고 한다. 특히 '비전보다 생존이 우선'이며 '작은 틈을 파고들 날카로운 무기를 만들고 바로 앞에 있는 고객부터 만족시키라'고 강조한다. '돈의 힘으로 일하려 하지 말고 대기업에 기대지 말라'고도 역설한다.
6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권 대표는 "지금도 유효하다"고 한다. 스타트업 경영의 '본질'을 다뤘기 때문이다. 본질을 터치하는 사람은 '철학자'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경영 철학자'이기도 하다. 스타트업계 대부와 전설로 불리는 그는 스스로도 "철학자라는 말이 제일 듣기 좋다"며 웃었다. 창업한 두 회사를 2008년 11월 미국계 사모펀드에 3300억원 가치로 매각, 현금만 1천억원 정도를 손에 넣은 그는 이후 '전설'이 됐다.

경북대 전산학과를 졸업하고 엔지니어에서 출발한 그는 숙명처럼 닥친 환경에서 창업을 선택, 스타트업 대박 신화를 썼다. 최근 강남역 인근 개인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창업할 생각이 1도 없었다. 창업은 정말 상상도 안했다"고 했다. 현재 그는 초기창업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액설러레이터 프라이머의 설립자 겸 대표로 있다. 2010년 설립된 프라이머는 현재까지 11년간 217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권 대표는 프라이머가 "투자사가 아니고 교육기관"이라며 "모든 창업자는 철학자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 프라이머는 '경영 철학자'인 권 대표의 생각 과 철학이 녹아있는 커리큘럼을 기반으로 도제식으로 가르친다. "(창업자 교육이) 기(氣)도 빨리고 엄청 에너지를 써야 한다"는 그는 "내 생명을 갈아 먹이는 느낌"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렇지만 재미있으니까 한다. 본인들이 인정할 지 모르겠지만 우리 아이들을 기르는 기분이다. 지금까지 200명 넘은 아이들을 가르쳤다"며 반색했다.
스타트업에 대한 그의 성공 정의도 남다르다. 유니콘(시장가치 1조원 스타트업)'이 되는게 아니다. 한 분야에서 확고한 지배력을 가지면 된다. 매출이 작아도 되고, 1등이 아니여도 된다. 그 분야에서 확실한 존재감과 시장 점유율을 보이면 된다. 스타트업과 대기업간 상생에 관해서는 "몇십년 뒤에는 지금의 스타트업들이 대기업을 대신해 재계 상위권을 차지할 것"이라며 "대기업 본인들이나 잘하라"고 일갈한다.
이 '철학자'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현대경영학의 창시자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다. 특히 드러커가 1954년 출간한 책 'The practice of management(한국말로는 경영의 실제로 번역됐다)'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권 대표는 "작은 글씨로 돼 있고 500페이지가 넘는 책이지만 7~8번 읽었다. 경영은 이래야 한다는 노이즈(noise) 속에서 보석같은 책"이라고 평가했다. 드러커 이야기가 나오자 눈이 반짝인 그는 "드러커가 경영자를 뭐라고 이야기 했는 지 아나? 경영자는 미래를 예측하는게 아니고, 미래를 바꾸기 위해 지금 현재 무엇을 해야할 지 결정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학자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는 지 놀랍다.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들려줬다. 아래는 권 대표와의 일문일답.
-적지 않은 나이인 서른다섯에 창업했다. 그리고 창업한 두 회사를 미국계 사모펀드에 3300억 원 가치로 매각했다. 당시 창업 배경이 궁금하다.
"보안 회사인 이니텍을 설립한 게 1997년 1월이다. 사실 창업할 생각은 1도 없었다. 정말 상상도 안했다. 회사를 옮기는 생각조차 안했다. 경북대 전산학과 졸업후 기아차에 1년 있다 데이콤연구소로 옮겼다. 그 곳에서 전자지불 연구를 했다. 1996년 회사에서 연구 프로젝트 경연대회를 했는데 내가 전자지불로 1등 했다. 당시 데이콤 본사가 미국 회사와 손잡고 전자지불 합작사를 설립하려 했다. 그런데 무산됐다. 그러자 본사서 내 프로젝트를 주목했고, 내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데이콤이 1996년 11월 전자지불 사이트를 오픈했다. 나를 포함해 엔지니어 3명이 1년간 만든 거라 품질이 완벽하지 않았다. 개선 니즈가 많아 본사가 나를 찾을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찾지 않았다. 알아보니 본사가 나를 빼고 따로 연구팀을 만들었더라. 당시는 데이콤이 회사 주력을 통신 쪽으로 전환하던 시기다. 본사에서 전자지불 연구를 계속 할 수 없는데다 데리고 있던 팀원 2명이 통신쪽으로 가기 원해 나 혼자 남게 됐다. 데이콤에 남아 통신 쪽으로 가는냐, 아니면 내가 하던 전자지불을 들고 밖으로 나가야 하는냐는 기로에 섰다. 안되면 다시 엔지니어로 취직하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1996년 11월말 창업을 결정하고 12월에 사표내고 다음해(97년) 1월 1일 대전에 사무실 내고 창업했다."
-당시 회사를 다섯개나 운영했다고 들었다
"이니텍과 이니시스 외에 회사 3개를 더 창업, 5개 회사를 동시에 운영했다. 이중 이니텍과 이니시스는 상장시킨 후 미국계 사모펀드에 매각했다. 나머지 3개 중 SK랑 합작한 회사는 미국 퍼스트데이터에 매각했다. 지금 한국에서 많이 쓰이는 퍼스트데이터의 결제 단말기 솔루션이 당시 우리가 만든 거다. 서울도시가스와 BC국민카드랑 합작한 회사도 있는데 이들도 성공적으로 엑시트(매각해 투자금 회수)했다. 5개 회사 모두를 성공적으로 엑시트했으니 엑시트 성공률이 100%다(웃음)."
-살면서 누구나 결단의 순간을 맞는다. 권 대표가 이니텍과 이니시스를 미국계 사모펀드에 매각할 때가 그랬을 것 같다. 당시 심경이 궁금하다
"사업 시작할때 그렇게 큰 회사가 될 줄 몰랐다.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회사의 길과 개인의 길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창업자이지만 언젠가 회사와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회사는 계속 성장하는, 영속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창업자와 안 맞으면 언제라도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10년이 될 지 20년이 될 지 항상 마음의 준비를 했다. 또 하나는 경영자가 회사 성장에 걸림돌이 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회사 설립 5년만인 2001년에 이니텍을 상장하고 이어 일년 뒤인 2002년에는 이니시스도 상장했다. 두 회사 모두 설립 5년만에 코스닥에 상장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회사가 상장해 큰 회사가 되니 재미가 없어졌다. 큰 회사가 되면서 내가 알게 된게 있다. 큰 회사 경영을 내가 재미 없어 한다는 거다. 당시 직원이 자회사 합쳐 800명 정도 됐다. 직원이 많아지니 내가 회사를 경영하는게 아니고 정치를 하고 있더라. 이게 재미가 없었다. 또 하나, 나는 너무 보수적이다. 큰 회사를 운영하려면 부채를 내기도 해야 하는데 나는 이게 싫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내가 (회사 성장에) 걸림돌이 되겠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무책임하게 회사를 팔러다니기는 싫었다. 와중에 회사를 팔라는 사람이 많이 찾아 왔지만 일체 만나지 않았다. 그러다 믿을만한 사람이 뉴욕 사모펀드를 소개해 줬다. 당시 두 회사 시총을 합치면 1천억원이 안됐다. 3300억원 부르면 나가 떨어질 줄 알았는데 좋다고 했다. 아, 이 친구들이 시리어스(serious)하구나 생각했다. 인수합병(M&A)은 밀고 당겨야 하는데 나는 이걸 일체 안했다. 회사 재무제표랑 공시가 같으니 실사를 하지 말라는 조건을 달았다. 대신 본계약때 틀린 거 있으면 빼 줄테니 실사 하지 말라고 했다. 이런 조건을 사모펀드가 다 받아들였다. 한달반만에 매각 작업이 끝났다. 2008년 11월이였다."
-2015년에 '스타트업 경영수업'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스타트업 경영에 대해 주옥같은 말들이 많다. 6년전에 쓴 책인데 책 내용이 지금도 유효한가? 시간이 꽤 지났는데 개정판을 낼 생각은 없나?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6년전에 쓴 책이지만 책에 있는 얘기를 지금도 스타트업들에게 해준다. 쓴 지 6년 됐지만 고맙게도 지금도 많이 읽어준다. 예스24 판매를 보면 현재도 꾸준히 나간다. 현재 12쇄까지 했다. 종이본 말고 전자책으로도 많이 팔렸다. 2015년에 비해 생각이 더 생겼지만 아직 개정판을 낼 계획은 없다."
-'스타트업 경영수업' 책을 보면 철학책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좋은 말들이 많다. 누구한테 영향을 받은 건가? 종교는 있나?
"교육이나 직장 등 사람한테 영향을 받은 건 크지 않다. 대신 피터 드러커 책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나는 책을 많이 보는 편이 아니다. 대신 좋아하는 책은 탐독한다. 제일 많이 읽은 책이 드러커가 1954년 출판한 'Practice of Management'다. 한국에는 '경영의 실제'로 번역돼 나왔다. 현대 경영학의 문을 연 책으로 평가받는다. 작은 글씨에 책이 500페이지가 넘는다. 또 아주 오래된 책이라 책에서 사례로 나오는 회사들이 지금은 다 없어져 읽기가 더 힘들다. 그럼에도 7~8번 읽었다. 이 책을 탐독하면서 경영의 본질이 뭔지 알게됐다. 경영은 이래야 한다는 노이즈성 책들이 많은데, 이런 노이즈 속에서 보석같은 책이다."
-드러커는 경영을 뭐라고 했나?
"드러커는 경영을 규율이라고 했다. 규율은 훈련이다. 가르치고 훈련하면 따라할 수 있는 거다. 경영을 일종의 과학적 방법론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나는 경영은 지식이 아니고 운동과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운동은 배우고 연습하면 따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경영은 훈련이다. 우연의 결과나 예술 같은 게 아니다. 그럼 어떻게 훈련하는냐? 포커스를 해야 한다. 뭐가 포커스냐? 드러커는 이렇게 말했다. 경영자는 미래를 예측하는게 아니고, 미래를 바꾸기 위해 지금 현재 무엇을 할 지 결정하는 사람이라고. 보통 회사는 계획을 세운다. 계획을 세우는게 아니고 미래에 해야 할 일을 위해 지금 뭘 할 지를 결정하는게 전략이라고 드러커는 말했다. 와, 천재다 싶었다. 많은 경영학자들이 드러커의 통찰에서 도움을 받아 조직, 동기부여, 전략 등을 말했다. 드러커는 사상가다. 사람들의 막혀 있는 생각의 혈을 뚫어준."
-2010년 엑설러레이팅 회사인 프라이머를 설립했다. 프라이머는 무슨 뜻인가? 현재 몇개 스타트업에 투자했나?
"프라이머는 생물학 용어다. DNA 복제가 시작하는 판을 말한다. 투자회사보다 선배 창업자들의 생각을 후배 창업자들에게 이식하자, 마치 DNA복제처럼, 이런 생각에서 프라이머라고 지었다. 내가 직접 지었다. 설립한 지 11년 됐는데 현재까지 217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우리는 액설러레이팅 투자만 한다. 엑시트는 20개 정도 했다. 1년에 두번 스타트업을 모집하고 한 번 모집할때 10곳을 뽑는다. 멘토링과 교육 등을 6개월간 한다. 처음 시작할때는 나와 장병규, 이택경, 이재웅, 송영길 등 5명이 파트너였는데 지금은 오치영 지란지교 대표 등 13명이 참여하고 있다. 여섯 번째 펀드를 운영하고 있다."
-자금력이 충분한데 소액을 투자하는 액설러레이팅에 포커싱하는 이유가 있나?
"창업자들을 가장 잘 돕는게 돈이 아니다. 프라이머의 첫번째 가치는 돈보다 경영이다. 고기를 주지 않고 잡는 법을 알려준다. 내 시간과 에너지를 돈만 요청하는 팀에는 쓰지 않는다. 나는 투자자가 아니다. 왜 프라이머를 운영하나? 후배 창업가를 도와주려고 한다. 하지만 돈으로 돕는 건 한계가 있다. 경영을 도와줘야 한다. 그래야 오래가고 길게 간다. 큰 회사가 못되는 건 경영을 잘 못해서다. 다 준비됐는데 돈이 없어 안된다, 이거는 거짓말이다. 프라이머는 경영을 가르치는 회사다. 그래서 내가 계속 이야기 하는게 프라이머는 투자회사가 아니고 교육회사라고 말한다. 다시말하지만 우리는 경영을 가르친다. 경영을 가르쳐주는게 스타트업에 도움이 된다."

-프라이머가 교육회사라고 하니 가르치는 내용이 궁금하다.
" 그건 영업비밀이다(웃음). 교육 자료가 있지만 외부에 공개하지는 않는다. 단, 철저히 도제식으로 교육한다. 투자를 한 기수당 10개 팀밖에 하지 못하는 이유다. 도제식은 사람과 사람이 일대일로 대화를 통해 그 사람을 이해하고, 그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주고, 서로 신뢰하고, 속마음을 들어내고, 같이 고민하는 거다. 이게 도제제식 교육이다. 내가 멘토링 하는 팀은 내 생명을 갈아 먹이는 느낌이다. 엄청 에너지를 써야 하고 기(氣)도 빨린다. 우리 아이 기르는 거랑 비슷하다. 본인들이 인정할 지 모르겠지만 나는 얘를 200명 이상 기르고 있다(웃음). 2주에 한번씩 일대일로 만나 이런 도제식 교육을 한다. 입에 단내가 나도록 한번 만나자고 한다(웃음). 지식을 가르치는 경영아카데미도 운영한다. 한달에 한번씩, 6개월간 6번 연다. 이외에 세미나와 워크숍도 하고, 선배 초청 행사도 하고, 동문 네트워킹 행사도 하고 그런다. 하지만 핵심은 도제식 교육이다. 한번 프라이머는 영원한 프라이머다. 엑시트 해도 언제든 찾아오라고 한다."
-프라이머가 투자한 스타트업은 어떤 회사들이 있나
"번개장터가 우리가 처음 투자한 회사다. 지금 밸류가 5천억, 6천억 한다. 무신사가 인수한 스타일쉐어도 우리가 처음 투자했다. 우리나라서 제일 큰 온라인 여행사인 마이리얼 트립도, 미국에서 일등하는 친환경생리대 회사 라엘도 우리가 투자한 회사다. 이밖에 숨고, 세탁특공대, 호갱노노, 데일리호텔, 오누이 등에도 투자했다."
-스타트업 성공 기준이 남다르다고 들었다
"스타트업의 성공 정의를 유니콘(시장가치 1조원 스타트업)'처럼 단지 기업가치만 커지는게 아니라고 말한다. 크지 않더라도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작더라도, 지속 가능한 것을 만드는 것, 이게 성공이라고 본다. 꼭 1등이 아니여도 된다. 오래전부터 이런 이야기를 해왔다. 우리 교육이 SKY를 안가면 고등학생들을 다 실패자로 만드는데 그러면 안된다."
-스타트업 투자 기준이 궁금하다. 어떤 스타트업에 투자하나
"한 분야에 몰입해 인사이트가 있는지를 본다. 이런 사람은 책 한 권 읽은 사람과 다르다. 이런 사람 만나면 바로 투자한다. 몰입하고 포커스해야 한다. 스티브 잡스가 말한 풀리시(foolish)한 사람이 아닐까, 포커스하면 멍청해 보이니까."
-반대로 어떤 회사에 투자하지 않나
"본인이 너무 똑똑한 사람,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 자기 확신이 강한 이런 사람들한테는 투자하지 않는다. 사업은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데서 시작해야 한다. 사업은 시작하는 순간부터 배워야 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이게 안된다. 또 하나 그 회사의 구조를 본다. 구조가 복잡한 회사는 투자하지 않는다."
-액설러레이터 1호, 스타트업 대부 등 권 대표를 칭하는 말이 많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철학자 같다. 어떤 말이 제일 마음에 드나
"철학자라는 말이 제일 좋은 것 같다.(웃음) 모든 창업자는 철학자가 돼야한다고 생각한다. 자기사업에 대한 생각, 의미, 방향을 생각하고 이게 이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철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자기 사업의 철학이 분명하고 방향이 분명하고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리더십이 생긴다. 얄팍한 술수 가지고 사람을 속이는게 리더십이 아니다. "
-투자기업 중 누군가 엑시트해 또 다시 후배 스타트업을 위해 투자를 하는, 이른바 선순환 투자 사이클이 만들어지는 게 권도균의 꿈이라고 했다. 이 꿈은 얼마나 이뤄졌나?
"항상 이 이야기를 한다. 이제 막 시작이라 본다. 실리콘밸리가 100점이라면 우리는 20~30점 정도 되는 것 같다. 프라이머를 봐도 13명 파트너 중 6명이 엑시트해 다시 프라이머 투자자가 됐다."
-언젠가 ‘창업은 신비롭다’고 했다. 어떤 의미인가
"그렇다. 창업은 여전히 신비롭다. 경영학은 어떻게 하면 성공하나? 이걸 찾는다. 나는 이게 헛짓이라고 생각한다. 반복한다고 똑 같은게 나오는게 아니다. 사람이 신비한 존재니, 사람이 하는 일이니, 그래서 창업은 신비롭다. 투자를 오래 한 사람들은 다 동의할 텐데, 좋다고 생각한 팀들이 안되고, 망가졌다고 한 팀들이 나중에 큰 회사가 된다. 투자를 하면 할 수록 잘 모르겠다. 이게 정답이다. 다른 투자자들에게 물어봐도 같은 말을 하더라. 아마 변수가 너무 많아, 이 변수를 예측하거나 계산할 수 있는게 아니지 않나 한다. 창업자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고, 회사는 집단이니,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변수를 알 수가 없다. 신비롭지만 한편으로는 이걸 훈련해 어떤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할 수는 있다. 프라이머는 이걸 가르친다. 성공 요인을 카피하는 수준으로는 이 신비를 이길 수 없다."
-집에 TV도 없고, 퇴근 후엔 자료 살피고 낮엔 시간 단위로 쪼개 새로운 팀을 만나는 게 권도균의 하루 하루 모습이라고 하더라. 수도승 같이 사는거 아닌가? 재미있는 게 뭔가?
"TV를 없앤 건 30년쯤 됐다. 결혼할때부터 없었다. 집에 TV가 없는게 좋다고 생각해 없앴다. 딸이 둘 있는데 얘들도 잘 적응했다. 영화는 많이 좋아한다. PC로 다운 받아 빔을 쏴서 본다. 재미있는 거? 이게 재미있다. 만나서 이야기하고 멘토링하는거. 이게 재미있으니까 하지, 어떻게 하겠나. 가르치고 교육하는 일은 에너지가 엄청 빨리는 일이다. 내가 멘토링 하는 팀은 내 생명을 갈아 먹이는 느낌이다. 기(氣)도 빨리고 엄청 에너지를 써야 한다. 하지만 재미있으니까 한다.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한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기억에 남는다. 최근에는 스키를 배웠다. 3년 쯤 됐다. 레슨을 받고 정식으로 배웠다. 상급자에서 탄다. 코로나 이전에는 일본에 스키타러 가곤 했다. 한때 골프도 재미있게 쳤지만 지금은 아니다. 골프는 팀을 짜야하고 묶이면 빠질수가 없다. 시간도 많이 뺏기고."

-63년생이니 우리나라 나이로 59세다. 건강 관리는 어떻게 하나
"미국에 있을때는 달리기를 했다. 2007년부터 7년정도 미국에서 살았다. 한국에 2016년 왔다. 한국서는 수영 열심히 하고 있다. 달리기를 계속해서 그런지 몸무게가 줄었지만 근육은 꽤 된다. 30대, 40대보다 근육량이 더 늘었다. 홈트(홈트레이닝)를 좋아한다. 팔굽혀펴기를 60개, 100개 할 때도 있다. 팔굽혀펴기 15개하고 1분 쉬고 스쿼트 20개 하고 그런적도 있다. 지금도 스쿼트하면 100개는 한다."
-개인 경쟁력, 개인적인 레벨업은 어떻게 하나?
"꾸준히 책을 읽는다. 온라인으로 만나니 책 읽을 시간이 많다. 내가 원하면 내 시간을 만들수 있는 위치다. 술 안먹고 하면 시간을 낼 수 있다. 회사 일 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시간을 많이 낸다"
-최근 감명 깊게 읽은 책은?
"아마존 혁신을 다룬 '워킹 백워드(Working Backward)라는 책이다. 인상적이였다. 진짜 좋은책이다."
-스타트업과 대기업간 상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대기업의 상생 점수를 말한다면?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도울게 뭐 있나. 각자 간섭하지 말고 가면 된다. 상생이라는 말 자체가 기업가 정신과 위배된다. 제도가 필요하기는 하다. 기업이 폭주하는 기관차가 될수 있으니. 도와주는 정책이 필요하기는 한데,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도와줘야 한다, 이거는 웃기는 일이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도와줄 입장이 못된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대기업은 자기 앞가림이나 잘해야 한다. 앞으로 30년 안에 지금 상위 50위 대기업이 10개나 남아 있을까? 대기업은 본인 먼저 살아남아야 한다. 남 도와 줄 때가 아니다. 시대가 바뀌었다.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시대로. 철기 무기로 장착한 작은 소종족들(스타트업)이 나섰는데, 아직도 청동 무기를 든 덩치만 큰 종족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철기 든 종족이 메이저가 되고 청동기족은 마이너가 된다. 제조업은 쇠퇴할 수 밖에 없다. 30년후에는 삼성전자의 재계 순위가 60위 정도로 내려가 있을 거다. 삼성전자 매출이 줄어서 그런게 아니다. 삼성전자 매출이 더 커지지만 이보다 큰 서비스 회사들이 등장해 그렇게 된다. 돈 파이프라인이 이제 대기업서 스타트업으로 가고 있다. 스타트업이 철기 문화를 갖고 있는데, 돈 파이프까지 꽂히면 청동기 군대(대기업)는 상대가 안된다. 큰 변곡점이 일어나고 있다. 이제 스타트업이 메인이 될 거고, 대기업들이 잘해야 한다. 청동기 무기로, 옛날 방식으로 경영하면 철기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 특히 온라인에서는 그렇다. 쿠팡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규제 이야기 좀 해보자. 문재인 정부 내내 규제 철폐가 화두였다. 스타트업들을 위한 규제 철폐 한 가지만 말한다면?
"사실 나는 규제 철폐도 반대한다. 규제철폐 이야기를 하면 할 수록 대기업 규제철폐가 될 거다. 규제철폐 프레임은 대기업이 만든거다. 차등의결제가 그렇다. 이건 스타트업업이 필요한게 아니고 대기업이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거고 스타트업을 앞에 내세운 거다. 규제철폐보다 공정한 경쟁, 이걸 만들어달라는 거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공정한 경쟁을 하게 만들어 달라. 이의 핵심은 심판이다. 심판이 누구냐면 공무원이고 법률가다. 지금 있는 법을 바꾸자는게 아니라, 지금 있는 법으로도 심판이 운영의 묘를 잘 살리면 90%가 지금의 법으로도 가능하다. 10%가 부족한데 부족한 10%는 업종마다 천차만별이다. 다시 말하지만 심판이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는 일을 해야 한다. 늘 언론에 하는 이야기인데, 이상하게 이 부분은 언론에 안나오더라.(웃음). 마약같은 명백히 불법인 것 빼고는 일정 규모 매출이하까지는 규제하면 안된다. 더 커지고 문제가 드러나면 그때 가서 살펴봐도 된다. 신산업이 커지기도 전에 규제로 싹을 자르면 안 된다."
-오늘날의 나는 과거의 누구 덕분이다. 그 누구가 누군가?
"내가 사업 처음 시작했을 때 나를 믿고 투자한 사람들이다. 얼리때 나와 같이 일한 사람들이 제일 감사하다."
-인공지능(AI)과 메타버스, 블록체인은 어떻게 생각하나?
"앞으로 AI는 세상의 수학이 될 거다. 수학의 계산기처럼 모든 분야에 다 깔려들어가는 기본이 될거다. 지금 할 수 있는게 100이라면 AI가 기본으로 깔려 1000이 되는, AI는 이 세상에 수학과 같은 역할을 할 거다. 메타버스는 아직 잘 모르겠다. 메타버스가 적용돼 뿌리가 내릴 영역은 소수, 어느 특정영역, 한 두군데는 자리 잡을거 같다. 하지만 AI처럼 모든 영역은 아닐 것같다. 코인은 커런시(통화)는 아니고 애셋(자산)으로 자리잡을 것 같다. 변동성이 너무 심해 커런시가 되기는 힘들다. 내가 90년대 창업할때도 디지털이 세상을 바꿀거라 생각했다."
-인생에 겨울은 언제였나? 어떻게 극복했나?
"창업 초기다. 어떻게 버텼냐고? 그냥 참는거다. 스트레스는 이기는 게 아니다. 비오면 비 맞고 가는 거다. 이겨낸다기보다 견디는 거다. 소나기가 오면 맞고, 스트레스가 오면 꼽십어보고. 한강에 뛰어들 생각이 들만큼 어려웠던 적은 없다."
-어떤 묘비명을 쓰고 싶나
"묘비명? 내가 죽고나서 내가 잊혀졌으면 한다. 내 자신이 없어지는것, 나에 대한 기억 조차 없어지는 것, 이게 내가 바라는 바다."
-다시 대학을 간다면 무엇을 전공하고 싶나
"언어학을 전공하고 싶다. 옛날부터 언어학에 관심이 많았다. 언어가 생각의 뿌리 아닌가. 언어학이나 미학을 하고 싶다. 심리학도 관심이 있고."
-만찬에 한 사람을 초대하면 누구를 왜?
"워런 버핏이다. 영어를 못하지만 통역을 써서 이야기 하고 싶다. 그 분에게 돈에 대해 묻고 싶다. 돈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돈은 이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돈은 도구인데, 이 도구의 의미가 뭔지 묻고 싶다. 돈이란게 이 세상에서 어떤 의미일까, 이 말은 경제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 걸까하는 것과 같다. 이런 것들에 대해 그 분의 개인 생각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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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이야기가 나온 김에 묻자. 2008년 엑시트해 현금만 천억 이상을 보유한 걸로 알려져 있다. 어떻게 쓸 건가? 재단은 생각 안하나?
"내 목표가 다 쓰는 거다. 다 쓰고 갈 거다. 돈을 버는 거 보다 쓰는게 더 힘든 것 같다. 잘 써야 하니. 진짜 힘든게 남을 돕는거다. 잘 돕는다는게 정말 힘들다. 의존 중독성을 피하면서 도와야 하니. 돈을 남겨 놓고 가지는 않을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