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때문에 재조명된 페이스북의 탐욕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사이버 테러와 플랫폼의 책임성

데스크 칼럼입력 :2021/10/14 15:21    수정: 2021/10/14 21:07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마리아 레사에게 평화상을 수여한 것은 독재자에 맞선 그녀의 용기를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소셜 미디어, 특히 페이스북이 공공의 안전과 민주주의에 해를 끼치는 데 사용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가르쳐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이기도 하다.”

페이스북이 13일(현지시간) 저명인사 보호에 좀 더 신경을 쓰는 새로운 조치를 발표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한 칼럼을 떠올렸다. 필리핀 탐사전문매체 래플러(Rappler) 창업자인 마리아 레사가 노벨평화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된 직후 워싱턴포스트에 게재된 칼럼이었다. 

칼럼 필자는 니나 잰코위츠. 윌슨센터 글로벌 펠로우로 활동하고 있는 잰코위츠는 ‘허위정보(disinformation)’ 문제 관련 전문가다. ‘정보전쟁에서 실패하는 법(How to lose the information war)’ 등의 저술로도 유명하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사진=씨넷)

"두테르테의 허위정보 공세 호소해도 책임 있는 조치 안 취해" 

잰코위츠의 칼럼은 제목부터 도발적이었다. ‘노벨평화상 수상이 페이스북에 엄청난 타격인 이유’다.

칼럼에 따르면 마리아 레사는 페이스북이 민주주의와 공론장에 끼치는 해악에 대해 지속적으로 경고해왔다. 특히 로드리고 두테르테가 필리핀 대통령 등극 이후엔 페이스북의 부정적인 역할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레사는 2016년 이후 두테르테 정부 비호로 허위정보를 대량 유포하던 페이스북 페이지들을 대거 찾아냈다. 그리고 페이스북 측에 이런 사실을 수시로 알려줬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침묵이었다.

(사진=워싱턴포스트)

칼럼이 전하는 마크 저커버그와의 에피소드도 충격적이다.

마리아 레사는 페이스북이 필리핀에서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 그런 만큼 사회적 책임감이 얼마나 큰 지에 대해 환기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레사는 “필리핀 사람 97%가 페이스북을 사용하고 있다”면서 저커버그를 초대했다. 하지만 저커버그는 “나머지 3%는 무엇을 하고 있냐?”고 반문했다. 페이스북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문제 의식은 전혀 없이, 그저 시장 지배력 확대에만 관심을 보였다고 레사는 폭로했다.

다시 페이스북의 현재로 돌아가보자.

페이스북은 13일 온라인 괴롭힘이나 허위정보 유포에 좀 더 적극 대응하겠다고 공언했다. 특히 이날 페이스북이 발표한 것 중 눈에 띈 건 언론인과 시민운동가에 대한 조치였다. 페이스북은 앞으로 언론인과 인권운동가 같은 ‘비자발적 공인’에 대해서도 좀 더 강력한 보호 조치를 취하겠다고 선언했다.

뒤늦게 언론인·시민운동가 보호조치 내놔 

대표적인 공인은 정치인이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공직에 나온 인물이다. 반면 비자발적 공인은 조금 다르다. 유명인사의 가족이나 범죄 피해자 같은 경우를 생각해보면 된다.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우연한 계기로 공공의 관심을 받게 된 사람들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자발적인 행동이 개입외지 않아도 일반 사인에 대해 공적인 인물로 인정해주고 있다. 물론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서 그 기준을 적용한다.

이날 페이스북은 “공인이 되는 건 항상 선택의 결과물은 아니다. 그런데 유명세를 얻게 되면 괴롭힘과 학대 위험은 더 커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페이스북이 허위정보 확산이나 온라인 괴롭힘에 대해 의미 있는 조치를 취한 건 환영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 소식을 전하는 외신들의 논조는 썩 호의적이지는 않다.

(사진=씨넷)

배러티는 “페이스북은 수 년 동안 유해행위나 허위정보 유포를 막기 위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면서 “최근 프란시스 하우겐의 내부 고발 이후엔 페이스북의 이런 행위에 더 관심이 쏠렸다”고 비판했다.

최근엔 월스트리트저널이 페이스북의 각종 악행을 고발하는 탐사보도를 쏟아내면서 이런 비판은 더 강해졌다.

마리아 레사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궁지에 몰린 페이스북에 결정타를 날린 것이나 다름 없다. 잰코위츠는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칼럼에서 “레사의 노벨상 수상은 표현의 자유를 향한 큰 승리이기도 하지만, 페이스북의 실패에 대한 고발이기도 하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페이스북은 마리아 레사 같은 언론인들을 향한 온라인 괴롭힘이 극심할 때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수수방관하는 자세를 보였다. 플랫폼 사업자는 개입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식의 자기 방어에 급급했다.

"같은 무대에 진실과 거짓 모두 허용하는 건 공론장 오염행위"

페이스북이 이번에 내놓은 의미 있는 조치를 보면서도 ‘만시지탄’이란 단어가 떠오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시장 지배력이 커지는 만큼의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지 못하던 기업이, 분위기에 떠밀려 마지 못해 타협책을 내놓는 듯해서다.

실제로 페이스북은 마리아 리사가 '노벨평화상을 받기 전'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괴롭힘이 심각하다고 호소할 때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두테르테가 조직적으로 허위정보를 유포하는 증거를 제시해도 묵묵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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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레사가 2019년 뉴욕타임스의 카라 스위셔 기자에게 했다는 이야기는 세계 최고 플랫폼 기업 페이스북에 대해 왜 좀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페이스북은 이제 세계 최고 뉴스 배포자가 됐다. 하지만 게이트키퍼가 되기를 거부해 왔다. 같은 무대에 사실과 거짓말을 함께 허용하게 되면, 전체 공론장을 오염시키는 것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