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5개였던 카카오그룹 계열사는 2020년 118개로 증가했다. 카카오 성공 신화의 이면에는 무분별한 골목상권 진출, 시장 독점 후 가격 인상과 같은 시장 지배의 문제가 숨어있다.”(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최근 5년 간 카카오 네이버 총 76건의 기업결합심사 중 10건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결합심사는 간이심사 방식을 통해 패스트트랙으로 이뤄졌다. 플랫폼 업계의 지네발식 사업확장이 가능했던 이면엔 공정위 기업심사제도 허점이 있었다.”(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의원)
“플랫폼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 상생 등 사회적 책임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기업 인수 합병은 시장에서 합의한 정당한 거래인만큼 인정해야 하며, 오히려 권장해야 한다.”(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하지 않아서 스타트업 생태계의 선순환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항상 있었다. 대기업의 스타트업 인수가 하면 안 되는 부도덕한 일인 것처럼 오해하게 될까 두렵다.”(임정욱 티비티 대표)
카카오의 계열사 증가에 대한 상반된 두 개의 시각입니다. 한쪽은 카카오를 무자비한 포식자로, 다른 한쪽은 스타트업 생태계의 선순환을 돕는 협력자로 인식하는 모습입니다. 이처럼 대기업의 활발한 스타트업 인수합병을 놓고 누구는 “지네발식 확장”이라는 비판을, 다른 누군가는 “창업가들의 숨통을 트게 한 대기업의 모범 사례”로 평가합니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습니다. 한 회사가 하나의 플랫폼 내에 다양한 서비스를 연결해 제공하면 한쪽에서는 ‘시장 독식’이라는 비난을 합니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분절됐던 서비스를 한 데 모아 ‘이용자의 편의성을 극대화한 서비스’라며 호평하기도 합니다.
택시나 부동산 영역처럼 수십년 간 정체된 시장을 IT 기술과 합리적인 가격 정책으로 서비스 하면, 전통 업계는 시장을 교란시키고 독점한 뒤 가격을 높이려는 것 아니냐며 우려합니다. 하지만 이용자들은 낡은 시장과 관행이 이제야 개선돼 편리해졌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서 있는 위치와 보는 시각에 따라, 또 때에 따라 한 기업이 ‘혁신 기업’과 ‘공룡 기업’으로 오락가락 평가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혁신가와 깡패, 종잇장 한 장 차이
이번 ‘카카오 골목상권 침해’ 논란을 보면 ‘혁신가’와 ‘깡패’는 종잇장 한 장 차이 같습니다. 카카오 창업가인 김범수 의장에 대한 평가와 수식어를 보면 더 그렇습니다.
올해 초 개인 재산 중 절반을 사회에 내놓겠다는 발표를 할 때만 해도 그는 네이버(한게임)와 카카오 두 기업 성공에 일등공신이자 ‘흙수저 성공신화’를 쓴 혁신가였습니다. “국내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기업가 정신을 보여준 인물”이라며 존경받던 게 바로 얼마 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국회 발언과 일부 언론 보도를 보면 김 의장은 골목상권 침범을 일삼는 ‘골목 깡패’가 됐습니다. 시장을 독점하고, 가격을 인상해 시장과 이용자들에게 피해를 안기는 부도덕한 대기업의 오너로 전락했습니다.
그는 정말 성공에 취해, 재물에 눈이 멀어 갑자기 ‘탈선’이라도 한 것일까요.
기업은 '진짜 상생' 돌아보고, 정부·국회는 정당한 규제 해야
얼마 전부터 정치권과 정부가 규제의 칼날을 갈면서 카카오 골목상권 침해 논란이 부각됐습니다. 곧 국정감사 시즌이고, 내년 대통령 선거가 있어서인지 권력을 다지고 표심을 얻으려는 듯 정치권은 카카오에 날이 잔뜩 서 있습니다. 모빌리티 사업의 수익화 속도 조절에서 실책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돼 그 이상의 가혹한 형벌(?)이 주어질 듯 보입니다.
많은 플랫폼 기업들이 혁신적인 사업과 서비스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고 대중적인 사랑을 받기 위해 부지런히 달립니다. 네이버 같은 국내 1위 인터넷 기업 오너조차 피도 눈물도 없는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일 가슴 졸인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게 플랫폼 기업들이 처한, 엄살이 아닌 현실입니다.
그런데 플랫폼 사업은 혁신과 약탈 그 사이에 놓인 외줄 타기인 경우가 많습니다. 한 발만 잘못 뻗으면 그런 줄도 모르고 시장 지배력을 남용하기 쉽습니다. “우리 이용자가 얼만데”, “우리가 그 동안 베푼 게 얼만데”와 같은 생각으로 목에 힘주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구글이 사훈을 ‘사악해지지 말자’로 했을까요. 힘을 가진 포털이나 플랫폼 사업이 사악해지기 쉽다는 걸 잘 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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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카카오 등 플랫폼 기업에 대한 정부와 국회의 규제 움직임이 왜곡된 시각과 순수해 보이지만은 않은 의도에서 출발됐지만, 기업들이 이 시간을 좀 더 의미있게 쓸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그 동안 정신없이 달려왔고, 앞으로 더 미친 듯이 달려야 하지만 그래도 한 숨 고르고 모두 함께 잘 살자는 뜻의 ‘상생’을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정부와 국회는 과거 대기업을 재단하고 규제해온 잣대를 그대로 가져와 플랫폼 기업을 규제하는 실책을 더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얼마 만에 계열사가 확 늘었으니 지네발 사업을 했다는 식의 접근은 상당히 위험해 보입니다. 오락가락한 평가와 설익은 규제는 결국 사회적인 혼란만 더할 뿐입니다. 모두 잘 살아보자고 시작한 취지라 하더라도, 모두 잘 살 수 없는 결과를 낳기 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