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재판이 ‘공유지의 비극’ 막을까

[이슈진단+] 넷플릭스 망 이용대가 재판의 영향

방송/통신입력 :2021/06/22 07:24    수정: 2021/06/22 17:14

“넷플릭스 사례에서 보듯이 글로벌 사업자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정당한 망 이용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교섭력을 활용해 망 이용대가를 부당하게 지불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열린 차기 정부의 ICT 정책 아젠다를 논하는 자리에서 성동규 중앙대 교수가 지적한 내용이다.

이와 같은 내용의 지적은 이미 현 정부에서도 최고조로 갈등이 치닫고 있다.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의 재판장에서 벌이는 분쟁이 대표적이다. 국내법에 따라 마련된 정부의 중재 절차 도중에 넷플릭스는 이를 걷어차고 민사 소송을 택했고 1년여 간의 공방 끝에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가 SK브로드밴드에 제기한 소송의 골자는 망 이용대가를 내야할 의무가 없다는 점을 확인하겠다는 채무부존재의 확인이다.

판결의 향방은 알 수 없다. 첨예하게 맞선 공방 끝에 재판부가 어떤 논리에 무게를 둘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향후 유사 사례에 해외에서도 참고될 재판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 디지털 뉴딜 시대 ‘공유지의 비극’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의 분쟁을 두고 ‘공유지의 비극’은 숱하게 언급되는 경제학 이론이다. 공공재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결국 자원이 황폐해지고 고갈되면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SK브로드밴드가 제공하는 네트워크 구축과 운영을 통한 초고속인터넷은 민간 회사의 서비스지만, 국내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기간통신사업자가 법의 기준에 준하는 허가를 얻어 제공하는 서비스일 뿐만 아니라 법에 명시된 보편적 서비스까지 제공하며 공공재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서비스를 가능케 하는 IT 인프라는 현대 시대에 무엇보다 중요한 공공재로 꼽힌다. 코로나19 시대에 정부와 관련 법이 요구하는 수준의 IT 인프라와 네트워크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현 수준의 방역과 비대면 생활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 공공재에 넷플릭스 콘텐츠의 스트리밍 콘텐츠 트래픽에 쏠림이 일어났다. 어떤 이용자든, 어떤 콘텐츠든 인터넷 연결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 인터넷 세상에서 구글에 이어 넷플릭스가 공공자원을 대부분 차지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SK브로드밴드가 가용할 수 있는 인터넷 네트워크 자원에서 지난 2018년 이후 넷플릭스가 차지하는 트래픽은 30배로 커졌다.

트래픽이 급증한데 따른 책임을 두고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가 해결할 문제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넷플릭스가 일본에 설치해둔 콘텐츠 중간 저장소 개념의 캐시서버 성격의 오픈커넥트얼라이언스(OCA)를 설치해뒀고 일본에 ‘접속’에 따른 대가를 지불했으며, 일본에서 끌어오는 ‘전송’은 SK브로드밴드의 몫이라는 주장이다.

접속과 전송의 개념을 분리한 것 자체가 국내 학계와 업계에서는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법조계에서도 넷플릭스의 주장을 두고 해석이 분분했다. 법 상으로는 넷플릭스 주장의 근거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트래픽을 집중적으로 유발시키는 콘텐츠 사업자에 인터넷 자원이라는 공공재가 집중될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모든 인터넷 이용자를 위한 초고속인터넷 서비스가 아니라 넷플릭스와 같은 콘텐츠 회사를 위한 네트워크 자원이 된다는 설명이다.

망 이용대가 협상을 벌이던 넷플릭스가 재판을 통해 무상 네트워크 이용을 원했던 것처럼 바다 건너 어딘가에 콘텐츠를 올려두기만 하면 국내로 인터넷 데이터 연결은 공공재를 운영하는 통신사의 몫으로 포장되고, 현실적으로 이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넷플릭스 데이터만 실어 나르는 전용회선

넷플릭스가 이번 재판에서 접속과 전송 개념의 구분과 함께 계속 언급하는 내용은 망 중립성이다. 통신사는 인터넷 네트워크를 통해 전송되는 모든 트래픽을 동등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 망 중립성의 원칙은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통신사에게 차별금지와 차단의무, 그리고 네트워크 관리의 투명성을 강조하는 측면에서 시작된 논의다. 최선형 인터넷에서 통신사가 특정 서비스의 품질을 차별하지 않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설명이다.

망 중립성 논의가 처음 시작될 때는 현재와 같은 수준의 데이터 트래픽 규모의 편차는 고려되지 않은 측면이 크다. 누구나 인터넷에 접속하면 연결이 되는 최선형인터넷 환경을 우선 고려했기 때문이다.

과거 개념에 머무른다면 인터넷 자원이 구글이나 넷플릭스에 집중되는 것이 망 중립성의 원칙이 된다. 망 중립성의 원칙이 특정 자원이 특정 회사의 독점 소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아울러 특정 서비스의 데이터 트래픽이 집중적으로 늘어나면서 콘텐츠 사업자의 책임이 더욱 부각되는 상황이다.

예컨대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상황에서 유럽연합(EU)은 이동 제한에 따라 집 안에 머무르는 이들의 인터넷 이용이 늘어나면서 유럽 지역의 네트워크 품질을 우려했고, 넷플릭스를 포함한 콘텐츠 사업자에 이같은 고민을 해결할 방법을 요청했다. 넷플릭스는 이 때 영상 품질을 낮춰 EU의 요청에 호응했다.

이 사례를 보면 접속이든 전송이든 데이터 트래픽과 네트워크 품질에 콘텐츠 사업자가 관여할 부분이 더 크고, 인터넷 데이터 전송에서 차별의 몫도 통신사보다 콘텐츠 사업자에 기울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SK브로드밴드는 과거 넷플릭스 국내 서비스가 시작될 당시 태평양 해저케이블을 통해 미국 시애틀에 위치한 아마존웹서비스(AWS) 서버에서 데이터를 끌어왔다. 그러다 트래픽이 늘어나자 넷플릭스가 일본에 배치한 서버에서 데이터를 끌어오기 시작했고, 현재는 일본과 홍콩에서 연결되는 넷플릭스만을 위한 900Gbps 급의 전용회선을 구축하게 됐다.

이와 같은 망 추가 구축은 SK브로드밴드가 넷플릭스와 망 이용대가 협상을 시작하면서 동시에 이뤄졌고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넷플릭스는 이 부분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일본에서는 접속을 통한 대가 지불이 이뤄진 것이고, 전용회선은 별도의 전송 개념을 부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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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에 자사 서비스의 전용회선 책임을 피하기 위한 싸움에 재판부의 결론만 남았다.

넷플릭스는 컴캐스트와 타임워너케이블의 합병 반대 이유로 망 이용대가가 늘어날 수 있다는 의견을 표명했던 회사다. 다만 한국에서는 못 내겠다면서, 사업자 간 협상도 정부 중재도 받아들이지 않고 법원의 판결만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