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양성된 백만 IT인재는 어디로 갔나

[코리아 ICT정책 톺아보기 ⑥] 인재양성 (하)

컴퓨팅입력 :2021/05/14 15:14    수정: 2021/05/15 18:29

김우용, 남혁우, 임유경, 김윤희 기자

모든 산업의 기반은 SW다. SW가 모든 산업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한다. 4차산업혁명의 시대, 디지털로 산업의 중심을 재편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에 SW를 바로 세우지 못하면 미래를 확신할 수 없다. 그런 가운데 한국의 SW 경쟁력은 선두권 국가와 비교해 많이 뒤져 보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 같은 현실에서 본지는 정부의 ICT 정책을 집중 분석해 보는 '코리아 ICT 정책 톺아보기' 시리즈를 마련한다. 정부의 정책이 SW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출발점이란 판단에서다. 2000년대 이후 정부의 ICT 정책 가운데 20개의 주요 SW 정책을 선정, 각 정책의 시행 배경과 목표, 성과를 분석하고 과제와 대안을 모색한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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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SW 인재 양성 정책은 꾸준했다. 개발자 구인난은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공통 현상이고, 갑작스러운 인력 수요 급증이 주요 원인이라 정책만 탓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고 시간을 가지고 기다리면 개발자 구인난이 해결될 것 같지도 않다. 개발자 채용 시장을 보면 수요와 공급이 양적으로 불균형할 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불균형하기 때문이다.

대학교와 각종 교육기관에서 배출하는 개발자의 수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배출되는 인력의 능력도 업계의 기대에 못 미친다. 산업계는 당장 프로그래밍 업무에 투입할 수 있는 초중급 정도의 개발자를 원하지만, 막 배출된 졸업생은 이론지식만 가졌을 뿐 실무능력을 갖지 못한 개발자다. 

산업계와 교육기관 사이의 간극은 매우 크다. 채용시장의 허리가 빈약한 것이다. 반면 정부의 정책은 이 허리층을 풍부하게 채우기에 버거워 보인다. 개발자 채용 시장의 불균형이 정부 정책에서 기인한 문제는 아니지만, 정책 방향의 재설정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출처=픽사베이

■ 빅테크로 인재 쏠림현상, 중소기업이 비어간다

SW 인력 가뭄 현상은 모든 산업계 공통이다. 과거엔 IT업체에서 인력 부족을 호소했지만, 이제 모든 유형의 기업에서 인재 모시기에 어려움을 겪는다.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한 것과 정반대다.

SW 인력 부족의 1차적 원인은 소위 ‘네카라쿠배’라 불리는 유명 IT기업으로의 쏠림 현상이다. 이들 기업은 높은 인지도와 성장성, 고액 연봉, 풍부한 복지 등을 앞세워 시중의 고급 개발자와 IT엔지니어를 빨아들이고 있다. 연초부터 이어진 수백, 수천만원 규모의 연봉 인상은 쏠림 현상에 가속도를 붙였다.

네카라쿠배에 이어 엔씨소프트, 넥슨 등 대형 게임사, 토스, 당근마켓, 직방, 야놀자, 크래프톤 등까지 높은 처우를 내걸며 경쟁하듯 인력을 쓸어가는 모양새다. 삼성전자나 금융회사 등 기존 유력 기업 소속 SW 인력도 빅테크 회사로 대거 옮겨가고 있다고 한다. 

IT서비스산업협회 채효근 부회장은 “젊은 개발자는 시대의 특성이나 학습 환경에서 자유와 삶의 질을 무척 중요하게 여겨서 수직적 업무 구조를 가진 기존 기업을 선호하지 않는다”며 “삼성이나 LG 등 대기업에서도 고급 인력이 이탈해 창업을 하거나 IT전문 기업으로 이동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상위 IT기업은 고급 개발자 인력을 빨아들이면서, 초급 개발자도 전방위로 채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견, 중소 IT업체와 IT서비스업체의 고급 인력이 빠져나가고, 교육기관에서 배출하는 초급 인력의 규모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인력 시장의 허리에 거대한 공백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공백은 중견 중소 기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중소 SW회사는 그동안도 개발자 채용에 어려움을 겪어왔는데, 어렵게 키운 인재를 대기업에 뺏기고 경력과 신입사원을 새로 채용하기 더 힘들어졌다.

전자문서 솔루션업체 사이냅소프트의 전경헌 대표는 “과거엔 직원이 네카라쿠배에 지원해서 이직했는데, 요즘은 이런 업체에서 먼저 스카웃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심지어 AI엑스포 같은 행사에 부스를 차려서 나가면 행사에 나가 있는 직원에게까지 스카우트 제안을 한다”고 말했다.

전 대표는 “신입 직원도 이전엔 한 두 달만 가르쳐도 일할 수 있는 개발자가 꽤 있었는데, 이제 최소 6개월 정도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라며 “(개발자 교육 기간이 길어진 이유는) 아무래도 구할 수 있는 신입 인력 숫자가 적은데, 큰 회사들이 많이 뽑아가니까, 중소기업은 신입조차 구하기 어려워진 탓이 크다”고 덧붙였다.

■ SW인력 수요 공급 불균형 심화, 구인난과 구직난 동시에

SW정책연구소에 의하면, 2014년부터 2018년 사이 국내 대학교의 소프트웨어 인력 졸업생 규모는 매년 3만2천여명이다. 2018년 소프트웨어 전공 졸업자의 취업률은 70.3%다.

경력별 SW 전문인력 현황을 보면, 2019년 3년 미만이 9만1천500명, 3년~5년 미만이 8만4천100명이다. 5~10년 미만은 6만7천100명, 10~15년 미만이 3만6천100명이고, 15년 이상이 2만4천500명이다. 전공별로 보면, 융합 및 기타 전공 SW 종사자는 5만5천400명이다. 2018년과 2019년 사이 기존 IT전공자의 규모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비IT 전공자의 규모가 전년보다 8천명 늘었다.

SW전공 졸업자 현황(자료: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올해 SW 분야 개발인력 수요는 32만6천450명이지만, 공급은 58% 수준인 18만8천700명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인력 공급의 절대적 부족 상태에서 구인난과 구직난이 동시에 일어나는 장면은 아이러니하다. 기업이 3년 이상 경력자를 선호하고, 초급 개발자는 중소기업 취업을 기피하는 경향이 만들어낸 장면이다.

빅테크 기업이 소프트웨어 인력을 싹쓸이하는 가운데, 초급 개발자의 취업 문턱은 더 높아졌다. 각 기업은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임금을 인상했고, 기업의 채용자 직무 수준 기대치도 함께 올라갔다.

경력별 SW전문 인력 규모(자료: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이민석 이노베이션아카데미 학장은 “빅테크 회사가 일률적으로 연봉을 높이면서 주는 급여액 만큼 기대치를 높이게 되고, 신입 개발자에 대한 눈높이가 더 높아진다”며 “그럼 초급 개발자가 처우 좋은 회사에 입사하는 문턱은 더 높아지고, 연봉을 높인 기업은 신입보다 경력을 선호하면서 초급 개발자에게 열렸던 문이 점차 좁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 SW 교육정책은 엘리트에 집중, 초중급 개발자 규모는 정체

현재 시행 중인 교육 정책을 보자. 앞선 기사에서 검토한 정부의 SW 인재 양성 정책 가운데 여섯개를 보면, AI 같은 특정분야 전문가를 키우는 엘리트 양성과, 기업 인력 수요에 대응하는 고등교육기관 지원에 집중돼 있다. 기존 인력의 역량을 높이거나 전환하는 보수교육은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실정이다.

대표적인 엘리트 양성 교육인 AI 전문대학원과 대학정보통신연구센터(ITRC), AI 전문대학원, SW 마에스트로 등의 정책은 석박사급 전문가를 키워낸다. 그 규모는 전체 인력 공급에서 극히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SW마에스트로나 SW마이스터고등학교로 배출되는 인재는 대기업으로 가거나, 창업을 택한다. 구인난의 원인인 중급 개발자 부분을 메우지 못한다.

초중급 인재 양성을 유도하는 SW중심대학 지원의 경우 획기적으로 인력 공급을 늘린다고 보기 어렵다. 각 대학이 융합전공 과정 같은 특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교육 규모를 늘리지만, 기존에 비해 SW 전공자 졸업자 배출 수가 눈에 띄게 증가하지 않았다. SW 중심대학은 학생 규모를 늘린다기보다, 이론지식이 아닌 실무 중심으로 커리큘럼을 개편하는 측면이 더 강하다.

재직자 재교육 정책의 경우 중소기업을 위한 지원정책인 중소기업형 계약학과를 시행 중인데, 석사학위 교육과정이다. 중소기업 재직자에게 AI, 소재‧부품‧장비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것이다. 중소기업 직원이 재교육을 받기 위해선 중소기업에서 6개월 이상 재직해야 한다. 문제는 중소기업 재직자가 급격히 빅테크 기업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직무역량을 높이면 이직해버리는 상황에서 중소기업이 재직자 교육을 적극적으로 선택할 유인책은 비용 지원 외에 없다.

고용노동부는 한국판 뉴딜의 일환으로 지난해부터 ‘디지털 핵심인재 실무 양성사업(K-Digital Training)’을 진행하고 있다. 비전공 출신 개발자 양성이 주요 목표 중 하나다. 43개 혁신교육훈련기관이 참여하고 있으며, 고용노동부는 2025년까지 18만명의 인재를 배출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산업계에서 원하는 개발자는 기본적인 프로그래밍 소양을 갖추고, 일정 수준 이상의 IT 프로젝트에서 개발 실무를 수행할 초급에서 중급 사이의 인재다.

일단 양적 증가 측면을 보면, 대학 정원 증가가 미미하다. 전경헌 사이냅소프트 대표는 “정부는 청년 취업을 문제라고 하면서 인력 부족을 겪는 SW 쪽 정원을 늘리지 않는다”며 “과를 옮기거나 전공을 바꿀 수 있게 하고 있지만, 총원은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민석 이노베이션아카데미 학장은 “공대에서 배출되는 인력의 절대적인 양이 부족해 졸업생으로 수요 공급 불균형을 해소할 수 없다”며 “국비지원 학원에서 나오는 학생은 IT기업이나 금융, 제조 같은 곳의 개발자로 흘러가지 않고 SI로 흘러들어가고, 마이스터고, SW마에스트로 같은 정책은 극소수 엘리트를 키워내는 것이어서 양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더 큰 문제는 질적 문제다. AI 때문에 파이썬 언어 수요가 기업에서 많아졌고, 대학에서 파이썬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은 틀렸다. 대학교나 일선 교육기관의 SW 교육 커리큘럼이 이론 중심에 치우쳐 있고, 진도를 나가거나 문제풀이 위주의 과정을 운영한다는 게 문제다.

채효근 IT서비스산업협회 부회장은 “대학교 교육과정은 실무에서 쓰이는 자료나 기술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에 진출한 뒤 기업에서 추가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민석 학장은 “기업에서 파이썬 인력을 원한다고 대학교에서 파이썬을 가르치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나중에 파이썬 말고 자바가 다시 더 중요해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무얼 가르칠거냐의 문제가 아니라, 문제풀이식으로 학점을 따는 상황에서, 교수나 학생 모두 실무 경험이 없는 상황이 더 큰 문제”라며 “실제 데이터가 학교에 없으니 현실에 맞는 경험을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 단일화된 교육 시스템 마련해 플랫폼으로 확대해야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초중급 개발자층의 양적, 질적 전환을 이루려면 수술이 필요해보인다.

일단 인력 공급의 양적 증가를 위해 공교육 시스템과 사교육 시스템의 병렬적 확대를 추구해야 한다.

1차적으로 SW 관련 전공의 정원을 늘리는 한편, 대학교 외부의 교육기관을 단기간에 증대하는 정책이 요구된다. 외부 교육기관의 설립 자체는 쉽다. 그러나 교육 인력, 커리큘럼, 콘텐츠 등을 각 기관에서 따로 만들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므로, 기관 수를 늘리는 작업에 집중하면 곤란하다.

이민석 학장은 “어느 기업에서 설립하고 알아서 운영하는 것도 필요하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그보다 일정한 교육체계 시스템을 만들어서 단기간에 기관 수를 확장할 수 있게 플랫폼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콘텐츠, 학습체계, 평가법, 교수법, 커리큘럼 등을 치밀하게 짜서 시스템으로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시스템을 가져다 자기 기관에 적용하면 곧바로 교육에 돌입할 수 있게 돼야 한다”며 “이노베이션아카데미의 42서울이 프랑스의 시스템을 라이선스해 운영하듯 하나의 완결된 시스템이 확장성을 확보하는데 가장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42서울

교육기관 설립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학생보다 강사 확보다. 현재 전국의 지방대학교들이 정부 지원을 받아 IT 관련 특화 과정을 학부에 설치하려 하지만, 강사를 확보하지 못해 실효적 운영을 못하는 형편이다. 단기간에 사설 교육기관이 다수 늘어나도 학생 규모에 맞는 강사진을 확보하지 못하면 낮은 품질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쉽다.

이민석 학장은 “강사가 전반적으로 모자란 상황에서 42서울은 동료학습이란 형태로 프로젝트를 학생끼리 의논해서 수행하고, 그룹마다 멘토를 붙여 도움을 주는 방식을 택했다”며 “어느 경우 강사가 직접 가르치는게 가장 효과적일 수 있으나, 멘토링을 이용하고 실습 프로그램을 동료 학습으로 하게 되면 적은 강사로도 더 많은 학생을 커버 할 수 있어 확장하기 유리하다”고 말했다.

대학교 커리큘럼을 실무 능력 확보 위주로 개편하는 작업도 이뤄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기업이 신입 직원을 뽑아 적게는 6개월, 길게는 1년씩 재교육하는 부담을 줄여야 기업의 신입 기피 현상을 1차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박환수 정책실장은 “추가 교육이 필요하다면 대학교에서부터 산학협력 등을 통해 회사에서 직접 필요한 기술을 가르치는 방안이 낫다”며 “회사에서 직원을 멘토나 강사 형식으로 대학교에 파견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에서 현실적인  지원을 한다면 단순히 개발 과정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기업 주도로 학생을 가르칠 수 있는 산학협력이나 교육 과정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민석 학장은 이같은 아이디어에 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실무 실습 과정을 더 현실화하자는 의견이다.

그는 “기업에서 학교에 직원을 보내 실제 데이터와 과제를 주고 한 학기 동안 프로젝트를 하게 해야 한다”며 “기업은 그 과정에서 고민하던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고, 학생은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꼭 유명한 회사가 아니더라도 학교에서 교육 과정에 적극 참여하면 수업을 들은 학생이 그 회사를 알게 되고 졸업 후 입사를 지원할 가능성도 생긴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정책에만 기대기보다 대기업이 더 적극적으로 초급 개발자 직접 양성에 투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민석 학장은 “대기업이 개발자 인력을 키우는 교육기관 설립에 적극 나서줘야 한다”며 “단순히 사회공헌 개념으로 접근하지 말고, 국가와 산업의 미래에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꾸준하고 진정성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육이란게 당장 수익과 효과를 내지 않기 때문에 사회공헌 개념으로 접근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사업을 접게 된다”며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회사가 자기 회사에 채용할 인재를 키울 생각만 하지 말고, 폭넓게 다른 회사에도 취직할 수 있는 학생을 키운다는 생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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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서비스산업협회 채효근 부회장은 “대기업에서 신입 개발자를 많이 양산하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며 “현재 대기업은 인재 양성 및 고도화를 시도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이고, 국가발전 노력의 일환으로 신규 인재를 중견 개발자 수준으로 성장시키는데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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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용, 남혁우, 임유경, 김윤희 기자yong2@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