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바꾼 위대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김성태 교수의 [데이톨로지]① 김정호 vs 매튜머리

전문가 칼럼입력 :2021/05/10 18:19    수정: 2021/05/17 15:16

김성태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김성태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바야흐로 데이터시대다. 지금 우리는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블록체인 등 디지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4차산업혁명을 목도하고 있다. 인류가 문자와 기호를 사용하기 시작한 5천년 동안 문명의 흐름이 지구촌 곳곳에서 큰 강을 이루고 또 모이는 바다에 이르렀다. 데이터가 원유가 되어 모든 것이 돌아가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른바 '데이톨로지(Datalogy)' 사상의 연원(淵源)이다. 데이터에 대한 철학적, 인문학적 과학적인 성찰의 결과라 봐도 좋을 것이다. 다양한 데이터와 관련된 키워드를 중심으로 빅데이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다양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지적 탐구의 장을 마련한다. <편집자>

오늘도 집을 나서며 습관적으로 네비게이션을 켠다. 목적지를 입력하면서 길의 방향과 시간을 체크한다. 스마트폰 하나면 가고 싶은 곳을 걱정 없이 갈 수 있고 맛집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특히 지도를 보면서 운전하다가 사람들에게 내려서 묻기도 했던 시절은 이미 옛 추억이다.

우리는 그대로인 듯 한데 사는 세상은 천지개벽으로 변하고 있다. 대학에서 미디어학을 가르치는 필자가 보기에 학생들은 노트북이나 스마트폰과 거의 같이 사는 듯 하다. 공부도 하고 취미 활동도 하고 심지어는 주식과 가상화폐 거래와 같은 경제활동도 한다.

분명 새로운 세상이다. 어떻게 가능하지라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다 ‘데이터 기반의 디지털 기술’ 덕분이다.

어찌됐든 인류가 문자를 사용하고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것 수천 년 전이다. 그 긴 시간을 되돌아 보면 시대를 앞서나가며 역사를 바꾸어 온 이들이 많다.

지금 같은 디지털 기술이 없던 시절에 당시의 열악한 자료로 그 시대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이다. 필자는 디지털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최근의 인공지능사회와는 분명 다르지만 그들을 역사속 아날로그시대의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라고 부르고 싶다.

오늘은 지금으로부터 150여년전 지구의 반대편에서 있었던 두 위대한 데이터 분석가의 얘기를 하고자 한다.

먼저 ‘대동여지도’다. 자동차도 비행기도 없던 시절에 이 놀라운 지도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김정호는 어쩌면 거의 젊은 시절 내내 가장 완벽한 한반도 지도를 그리기 위해 걷고 또 걷고 했을지도 모른다.

1861년 철종 12년에 제작된 대동여지도는 산줄기와 물줄기, 고을과 도로 등 자연과 인문지리 정보를 모두 담고 있으면서도 또한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실측지도다.

대동여지도에서 어떤 두 지역을 연결해서 이동이 가능한 길의 거리를 구해 21만배 정도 곱하면 현재의 실제거리와 거의 일치한다. 전체축척으로 하면 16만배이고, 실제 거리로 환산하면 1:216,000 의 완벽에 가까운 한반도 축소판이다.

고산자 대동여지도 영화포스터(좌)와 대동여지도지도 전판(네이버 이미지)

그동안 여러 문헌에서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완성하기 위해 한반도를 여러차례 답사하고 백두산을 수십차례 올랐을 것이라는 주장이 많았다.

하지만 정상기 <농포문답>의 기록에 의하면 한두차례 당시 한반도를 최소한으로 둘러보았고 대신 읽고 보고 들은 것들을 잘 정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최한기는 <청구도제>에서 “나의 벗 김정호는 등관일때부터 지도와 지리지에 깊이 뜻을 두고 오랫동안 찾아 열람하여 장,단점을 자세히 살폈고...한가한 때에 수집한 것을 세세하게 살폈다.”라고 적고 있다.

지도를 위해 발로만 뛴 게 아니라 다양한 수집 자료를 분석하였다는 사실은 분명한 듯하다.

김정호는 중앙정부가 갖고 있던 축척 지도와 함께 다양한 지역 문화까지도 담긴 지리서의 내용도 참고하고 또한 각 지방의 관할 관청에서 갖고 있던 오래된 전답문서와 같은 방대한 데이터를 살폈을 것이다.

당시 전국을 누비고 다녔던 보부상과 짐꾼등의 구전 정보까지도 포함해서 대동여지도를 제작하는데 활용했을 것이다. 나아가 분석결과를 전체 한반도 축척지도로 옮기는 과정에서는 방안좌표를 이용해 지도의 공간을 동일하게 비율화해 지도가 정확하게 실제거리를 반영하도록 했는데, 목판으로 된 남북 22판, 동서 19판에 실제거리 10리(현 4km)마다 점으로 표시하였다.

또한 지리적 방위에 대한 평환법과 확대축소법 그리고 다양한 지리적 정보를 입력하는 과정에서 하천과 도로 산악 등의 표시에서 기호, 축척, 점, 선의 표시에서 서로 분별이 용이한 표준화 작업도 포함시켜 이 지도를 더 위대하게 만들었다.

대동여지도는 김정호라는 위대한 인물의 매우 정교한 데이터 분석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민병준은 <해설 대동여지도>에서 “지명만 1만 1680개로...고산자가 얼마나 위대한 인문학자이고 화가이며 조각가였는지 대동여지도를 들여다볼수록 감탄한다”고 적었다. 대동여지도는 단순한 고지도가 아니라 첨단지도라는 극찬이기도 하다.

이때쯤 서구로 눈을 한번 돌려보자. 당시 역사의 아이러니처럼 미국에서는 육지가 아닌 바다에서 길을 찾고자 한 또 한 명의 위대한 분석가가 있었다.

바로 매튜머리(Matthew Maury)다. 세계의 항해도를 그린 인물로 지금도 추앙받고 있는 그는 1825년에 해군에 장교로 입대하게 된다. 하지만 훈련도중 불의의 마차사고로 병원에서 오랫동안 입원해 있다가 전역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럼에도 그는 항해와 훈련대신 앉아서도 할 수 있는 보직을 찾다가 1842년부터 해군내에 있는 해도측기창(지금의 해군해양부)에서 일하게 된다.

당시 머리의 자서 기록을 보면 몇 년 동안을 그냥 좌절하며 지냈다고 한다. 그러다가 창고에 먼지와 함께 쌓여 있던 엄청난 문서와 자료들을 하나씩 읽고 눈이 번쩍 띄여 그것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바닷날씨와 기후 등에 대한 자료와 함께, 항해 노선, 시기별 항해 기상, 해류, 해저 암초의 위치, 과거 선박 사고 등 항해와 관련된 50만건 이상의 데이터를 분류하고 분석한 후 안전하고 빠른 바닷길을 그리게 된다.

매튜머리(좌)와 머리의 항해도(우, 구글 이미지)

당시 대서양은 범선과 증기선을 이용한 해상운송이 급증하기 시작한 때였다. 또한 군사적인 목적으로 군선의 항해도 매우 많았던 때다. 그러나 선박 침몰로 인한 경제적 손실 뿐만 아니라 인명 피해도 매우 많았던 시기였다.

머리의 노력으로 대서양의 풍향, 풍속과 해류의 흐름이 담긴 항해 지침과 항적도가 나오게 되고 항해 시간 단축과 함께 항해사고를 줄이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다. 또한 미국 남동부의 멕시코만과 쿠바의 카리브 해상에서 자주 발생한 항해 사고의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대서양으로 흐르는 따뜻한 해류의 존재를 처음으로 발견하게 된다.

그의 이런 노력은 1853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최초의 국제 해양기상회의를 개최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현재의 세계기상기구의 전신이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그의 업적은 최초의 근대적 해양학 교과서인 <바다의 자연, 지리학>(1855)에서 언급한 대서양 해저케이블의 제안이다.

이후 세계 전역의 전화와 인터넷 통신망이 해저를 가로질러 건설될 때 머리의 항해도와 해저케이블의 아이디어는 매우 중요한 지침서가 됐다.

현재까지도 그는 본격적인 대륙간 항해시대의 안전한 나침반이 되어준 위대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불의의 사고로 낙담한 삶에서 새로운 환경속에서 역사를 바꾼 놀라운 반전이다.

인간의 삶은 수천 수만년전부터 내려오며 이런 시간 흐름속에서 우리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 사건들은 정말 많다.

과학지식의 발전과정을 '페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로 본 토마스 쿤(Thomas Kuhn)은 혁명적인 과학적 진보가 우리의 역사를 변화시키고 발전시켜 왔다고 했다.

이런 시프트를 만드는 사람은 누구인가. 기존과 다른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천재일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생각과 믿음과 이론은 기존의 수많은 이들의 노력과 경험의 결과이며 연장선상에 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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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는 편집이다'를 주장한 김정운은 ‘에티톨로지(Editology)’라는 개념을 소개하며 주어진 데이터들을 이용한 편집의 힘을 강조했다. 흩어져 있는 다양하고 많은 자료들을 통합적으로 분석해 가치있는 새로운 솔루션을 찾는 능력이 현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를 자처한 필자로서는 오래 전 두 위대한 데이터 분석가의 노력에 다시 한번 경외로움을 느낀다. 너무나 어려운 환경속에서 이루어 낸 결과이기에 감동은 배가된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태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현재 고려대 ‘빅데이터 사회문제 연구센터’를 운영하며, 데이터를 통한 통찰력 있는 세상 읽기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다양한 사회 문제 솔루션 도출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번 '데이톨로지' 연재는 인류의 역사, 철학사상 그리고 다양한 인문학적 논쟁의 패러다임속에서 데이터 자체의 미학, 역사속의 위대한 데이터 분석가, 디지털데이터가 만드는 새로운 현상과 문화를 최근 사례와 함께 소개함으로써 미래의 성장동력으로서의 (빅)데이터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독자들에게 ‘디지톨로지Digitalogy’ ‘데이톨로지Datalogy’ ‘데이터빌리티Datability'의 중요성에 대한 토론의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