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실손 보험금 청구 간소화' 법안이 국회에 오르면서 보험업계와 의료계의 신경전을 예고하고 있다. 생활 전반에 자리 잡은 디지털 트렌드와 맞물려 변화의 요구가 커지는 가운데, 의료계의 반발에 12년째 공회전하는 이 법안이 국회를 넘을지 주목된다.
19일 국회에 따르면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2일 실손의료보험 청구 절차를 간소화하자는 내용의 보험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병욱 의원의 개정안은 21대 국회에서만 네 번쨰로 발의된 실손 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이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의 전재수·고용진 의원과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 등이 각각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내놨다.
마찬가지로 해당 법안은 소비자가 병원 전산시스템을 통해 보험사에 실손보험 보험금을 자동으로 청구하도록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소비자가 병원·약국 등에 진료비 계산서 등을 보험사에 전자적 형태로 전송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고, 관련 요양기관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를 거절하지 못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대신 서류 전송 비용은 보험사가 부담하도록 한다.
이는 가입자가 전 국민의 76%(약 3천800만명)에 이르는 등 실손보험이 보편화됐지만, 상당수가 번거로운 절차로 청구를 포기한다는 진단에 따라 마련된 법안이다. 실제 2018년 보험연구원의 소비자 설문조사에서도 약 90%가 청구 불편 등으로 소액의 보험금 청구를 포기한다고 답했다.
현재 소비자는 실손 보험금 수령까지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병원·약국에서 증빙자료를 받아 보험설계사 또는 팩스를 통해 전달하거나, 직접 보험사를 찾아 청구서와 함께 제출하는 식이다.
그러나 보험업법이 개정되면 병원과 보험사가 전산망으로 연결됨에 따라 소비자는 서류 증빙 없이도 보험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특히 실손 보험금 청구 간소화는 디지털 전환에 힘쓰는 보험업계에도 무척 중요한 사안이다. 단순·반복적 업무를 자동화함으로써 효율을 높여야 하는 현 시점에도 여전히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무엇보다 실손 보험금 청구건수가 연 1억532만건(2019년 기준)에 이르나, 일일이 수기로 입력해야 하는 탓에 보험사의 어려움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정희수 생명보험협회장과 정지원 손해보험협회장도 연초 실손 보험금 청구 전산화를 핵심 과제로 꼽으며 이를 성사시킴으로써 소비자 편익을 높이겠다고 입을 모았다.
문제는 의료계가 여전히 반대의 뜻을 꺾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보험사가 환자의 질병 정보를 자신들의 이익(보험금 지급 거절 등)을 위해 사용할 수 있고, 의료기관이 보험사에 정보를 제공해야 할 의무 또한 없다는 논리에서다.
따라서 국회의 움직임이 관건이다. 20대 국회에서도 같은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지만 의료계 반발로 무산됐고, 지난해 12월엔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이를 논의했으나 불발에 그친 바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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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보험금 지급 업무에 과도한 비용이 발생하는 만큼 서둘러 이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게 업계 안팎의 중론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지금의 시스템으로 인해 보험사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것은 물론, 서류를 발급하는 병원이나 약국에서도 행정부담이 발생하는 상황"이라며 "소비자를 포함한 모두의 편의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보험업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