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D-택트] 농협은행이 인터넷전문은행을 만든다면?

은행연합회의 이상한(?) 수요조사

금융입력 :2021/04/10 08:46    수정: 2021/06/03 16:15

디지털 컨택트(Digital Contact)가 일상으로 자리잡은 지금, 한 주간 금융업권의 디지털 이슈를 물고, 뜯고, 맛보는 지디의 '금융 D-택트'를 매주 토요일 연재합니다. 디지털 전환의 뒷 이야기는 물론이고 기사에 녹여내지 못했던 디테일을 지디넷코리아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은행연합회가 대형 금융지주사(KB금융지주·신한금융지주·하나금융지주·우리금융지주·NH농협금융지주)를 대상으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에 대한 관심을 물었던 뉴스가 4월 둘째주를 은근히 달궜습니다. KB국민은행·신한은행 등 은행을 보유한 금융지주사에 별도로 인터넷전문은행을 만들겠냐고 물은 것인데요, 이들은 대부분 '라이선스를 준다면 도전하겠다'는 답변을 했다고 합니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플랫폼 공룡들의 금융서비스 진출과 인터넷전문은행의 성장을 이젠 바라만보고 있을 수 없다는 은행들의 위기감이 커진 것으로 풀이됩니다. 특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확산으로 디지털 채널이 중요해짐에 따라 지점 없이 전자적 방식으로만(웹 및 모바일) 운영되는 인터넷전문은행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취지, 어디로?

그렇지만 은행연합회의 인터넷전문은행 수요 조사는 많은 생각거리를 던집니다. 인터넷전문은행이 만들어진 취지를 역행하는 모양새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전문은행은 기존 은행들이 하지 않았던 금융서비스를 공급해 은행업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인가된 곳입니다. 금융위원회는 인터넷전문은행을 KT와 카카오에 인가하면서 '고인물' 같던 은행업계를 바꿀 수 있다고 기대했었습니다.

심지어 금융위와 국회는 은행업계의 새로운 피를 수혈하기 위해 은산분리라는 초강수까지 뒀습니다.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을 만들어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 은행 지분을 34%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했지요. 과감한 규제 개선까지 병행된 건 그동안 은행이 못했던 것을 해달라는 국민들의 염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전문은행의 목적 자체가 이러한데, 이제와 기존 은행들이 인터넷전문은행을 설립하고 싶어한다는 의견을 전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입니다. 혁신을 위해 '메기'를 풀어넣었더니 '메기'가 될 수 있게 간청한다는 건 이상해보이지 않나요? 금융서비스 이용자 입장서 그동안 은행들은 뭘 해온 건지 반문하게 만듭니다.

왜 또 인터넷전문은행을 만들고 싶어할까?

인터넷전문은행을 기존 은행들이 눈 여겨보는 배경엔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의 성장, 그리고 비용이 된 지점이 있겠지요.

인터넷전문은행 두 곳은 빠른 속도로 고객을 모으고 있고 이중 대다수는 MZ세대입니다. 카카오뱅크는 10대를 겨냥한 '카카오뱅크 미니'로 고객 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만들었던 첫 은행 계좌를 직장이 가서도 결혼 후에도 주 거래 은행으로 쓰듯, 어린 고객을 보유한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는 기존 은행보다 주 거래 은행으로 이용될 확률이 높습니다. 결국 기존 은행은 미래의 고객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를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게 됐습니다.

또 인터넷전문은행은 지점 없이 운영되는 곳입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의문이었지만, 두 곳을 이용하는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두 인터넷전문은행이 대다수 은행 업무를 모바일로 가능하게 만들면서 은행도 그 행보를 뒤쫓고 있지요. 이 때문에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은 비용이 돼 버린 지점을 정리하기에 좋은 핑곗거리가 될 수도 있다는 자평도 나오는 상황입니다. 더 나아가 구조조정을 단행할 수도 있는 근거로도 쓰일 수 있지 않겠냐는 관측도 나왔습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이유 흔들려선 안돼 

법을 고치지 않고 인터넷전문은행을 만들 수 있다는데 인가권을 가진 금융위는 심드렁한 눈칩니다. 정말로 필요하다면 열어주겠지만, 은행을 또 만들 명분은 크지 않다는데요. 이 또한 두고 볼 일입니다. 은행연합회가 그 필요성을 얼마나 촘촘히 만들어낼지, 설득력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기 때문입니다.

딱 맞는 예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는 비슷한 정책적 실기를 한 사례가 있습니다. 과점 체제인 통신사업에 메기를 풀어넣겠다며 가상이동통신사업(MVNO)을 고안했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알뜰폰' 사업자 말입니다. 통신3사가 담합처럼 요금제를 주물럭거리자 이들의 망을 빌려 조금더 저렴한 요금제를 내놓길 바랐지만, 통신3사의 자회사가 알뜰폰 사업에도 진출하면서 취지가 무색해졌죠. 통신 3사의 망 사용료(도매 대가)를 내리고 또 내려서야 지금의 수준에 왔는데 이것이 통신사업만의 특수성이었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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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의 첫 취지가 흔들려서 은행에 또다른 인터넷전문은행을 인가하는 것은 '은행 마피아'를 더욱 굳건히 다지는 계기가 되진 않을까 걱정됩니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가 처음 설립돼 모바일 뱅킹 애플리케이션(앱)을 내놨을 때 '이렇게 간편하고 쉽구나'라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처음이 있어 편리함이 보편화됐습니다. 인터넷전문은행이 아니라 처음을 만들지 못한다는 말보단, 또 다른 첫 시작을 위해 머리를 맞대주길 바라는 건 무리한 요구일까요. 집 나간 고객을 돌아오게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