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개국 쓰는 中백신, 우리나라선 찬밥 신세...왜?

효능·안전성 검증 데이터 아직 부족하지만 무조건 폄하·배제 지양해야

헬스케어입력 :2021/04/09 10:15    수정: 2021/04/09 10:26

지난 2월 뉴욕타임스 오피니언란에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기고문이 실렸다. 인도의 공중보건활동가인 아찰 프라발라와 말레이시아의 공익변호사인 치욕링이 쓴 ‘이제 중국과 러시아의 백신을 신뢰해야 할 때’(It’s Time to Trust China’s and Russia’s Vaccines)라는 칼럼이었다. 

이들은 글을 통해 미국과 유럽 등 서구 국가들이 중·러 백신에 대한 편견을 멈출 것을 촉구했다. 양국의 백신도 수용해야만 전 세계의 백신 부족을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같은 달 8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브리핑에서 추가 백신 확보와 관련해 러시아 백신을 언급하자 “스푸트니크V 백신 도입 검토”라는 언론보도가 쏟아졌다. 질병청은 이튿날 “해당 백신에 대한 계약 진행 및 구체적인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 않다”는 해명을 서둘러 내놨다.

이렇듯 백신 부족 상황에서조차 특정 국가의 백신은 평가절하된다. 특히 중국 백신은 공식석상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모더나, 얀센, 노바백스 등 우리나라가 이미 도입했거나 계약을 진행 중인 백신들은 모두 미국과 유럽의 다국적 제약사가 개발한 것들이다.

전 세계 30여 개국으로 수출을 진행하고 있는 중국 백신이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할까? 이는 안전성과 효능 모두를 까다롭게 검증받아야 하는 백신의 특성과 무관치 않다.

중국 백신들은 30개국 이상에서 사용 허가 및 긴급 사용 승인, 제한 승인 등을 받아 수출되고 있다. (사진=시노팜 홈페이지 캡쳐)

■ “안전성·효능 입증 근거 부족하다”

“중국 백신의 효능과 안전성을 판단할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중국 백신들에 대한 평가에 국내 다수 감염학 및 백신 전문가들이 보인 공통된 견해다.

현재 전 세계 백신 개발은 ▲화이자-바이오앤텍 ▲모더나 ▲ 가말레야 연구소 ▲아스트라제네카-옥스퍼드대 ▲존슨앤존슨(얀센) ▲벡터 연구소 ▲노바백스 ▲시노팜베이징 ▲시노백 ▲시노팜우한 등 10개사가 선두를 이끌고 있다.

이 가운데 시노팜베이징(백신명 BBIBP-CorV), 시노백(백신명 CoronaVac), 시노팜우한(백신명 없음) 등은 중국 소유이며, 모두 사백신(Inactivated Vaccine)이다. 사백신은 증식을 비활성화 시킨 바이러스를 사용해 백신을 제조한 것으로, 안정성은 높지만 지속 기간이 짧고 면역반응이 낮다.

제2상 임상시험 이후 피험자의 항체 형성 효과가 확인되자 중국은 속속 자국 백신에 대한 긴급승인을 결정했다. 앞선 백신들은 30개국 이상에서 사용 허가 및 긴급 사용 승인, 제한 승인 등을 받아 수출되고 있다. BBIBP-CorV는 3개국에서 허가를, 14개국에서 긴급 사용 승인, 2개국에서 제한 사용 승인을 받았다. 

CoronaVac의 경우, 1개국에서 허가를 받았고 17개국의 긴급 사용 승인, 2개국 제한 사용을 승인받았다. 시노팜우한 백신은 허가 및 제한 사용 승인을 각각 1개국에서 받았다. 현재 해당 백신들에 대한 제3상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백신의 안전성과 효능에 대한 정보는 임상 3상 이후 해당 연구결과를 논문으로 정립, 공신력을 인정받은 학술지 등재를 통해 발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중국 백신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비판은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의 긴급성을 고려하더라도 임상 3상을 끝마치기도 전에 중국 정부 차원에서 긴급 승인을 한 것이나 관련 연구 결과가 권위를 인정받는 국제학술지에 등재된 적도 없다는 사실은 중국 백신에 대한 신뢰도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구체적인 임상 데이터도 사실상 베일에 쌓여있는 탓에 백신의 신뢰도를 입증할 근거 자체가 모자란 형편이다.

김우주 고려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3상 논문이 부재한 상황에서 단편적인 일부 자료만으로 안전성과 효능을 판단하기에 한계가 있다”며 “전통적인 불활성화 백신(사백신)은 mRNA백신이나 바이러스벡터 백신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효능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국 백신을 도입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과학적 근거가 없어서 현재로선 사용할 수가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국제백신연구소 이철우 책임연구원도 비슷한 견해를 보였다. 이 연구원은 “중국 백신이 여러 나라로 수출돼 사용되고 있지만, 국내 도입을 위해서는 과학적 근거가 충족돼야 하고 이를 통한 냉정한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중국 백신의 제조 공정 상의 문제도 존재한다. 백신의 질 관리와 오염 등을 방지하기 위해 백신 공정은 철저히 통제된다. 또 제조 공정 관리는 국제 표준을 충족해야 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태규 전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신약개발지원센터장은 “중국 백신이 국제사회의 신뢰를 받으려면 중국 내 제조 이슈가 완전히 해소돼야 한다”며 “연구 결과도 일차적으로 논문을 통해 검증받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앞선 이유 등으로 중국 백신의 효능과 안전성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맞물려 국내 반중 정서도 중국 백신 도입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변수는 시간이다. 

안전성과 효능을 검증할 데이터가 부족하다보니 중국 백신들은 높은 신뢰를 받고 있지 못하다. (사진=픽셀)

향후 임상 3상이 완료돼 중국이 검증 가능한 수준의 데이터를 내놓는다면? 그때도 백신 부족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여기에 4차, 5차 유행이 계속 이어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웃돈을 지불해도 중국 백신 구매가 어려워질 수 있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김윤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과연 정치적 문제와 백신을 결부지을 필요가 있느냐는 아쉬움이 있다”며 “중국 백신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가 낮을 수는 있지만 이를 설득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부가 중국 백신을 대안으로 검토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게 과연 백신 수급 다변화에 대한 합리적 대안이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철우 책임연구원도 “만약 중국 백신이 세계보건기구(WHO)의 사전적격심사를 통해 긴급의약품 목록에 등재되면 우리나라를 비롯해 각국은 백신 구매가 가능해진다”며 “향후 중국 백신이 객관적 절차를 거쳐 효능과 안전성이 인정되면 타 백신과 똑같이 놓고 바라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태규 전 센터장도 “과학과 국제정치가 뒤섞이면 안 된다”며 “미국 등 서구 사회가 중국 백신을 배척하는 분위기를 우리가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를 뜻하는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이 지금까지 중국식 시장경제의 철학을 나타냈다면,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이 말은 조금 다른 의미로 사용될 수 있을터다. 대유행을 끝낼 최후의 해결책인 백신. 백신 부족 현상을 타개키 위한 백신 실용주의로 말이다.

백신 실용주의에 입각해 중국 백신을 포함해 백신 다변화 협상에 나설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진=픽셀)

■ 中 대표 백신 어떤 게 있나

시노팜베이징이 개발한 ‘BBIBP-CorV’ 백신은 2회 접종으로 79.34%의 코로나19 예방효과를 보인 것으로 보고됐다. 지난해 7월 UAE에서 임상 3상이 시작된 데 이어 모로코와 페루에서도 임상 3상이 실시됐다. 유엔(UN)은 의료기관 종사자에 대한 접종을 긴급 승인했고, 중국 정부 당국자들도 이 백신을 접종받았다.

UAE에서 실시된 임상 3상에서 86%의 예방효과가 발표된 것과 관련, 시노팜 측은 실험의 차이로 인해 효능 차이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백신은 중국과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에서 사용 허가를 받았다. 아르헨티나, 캄보디아, 이집트, 가이아나, 헝가리, 이란, 이라크, 요르단, 몰디브, 네팔, 파키스탄, 페루, 베네수엘라, 짐바브웨에서 긴급사용승인을, 세르비아와 세이셀에서는 제한 사용을 승인받았다.

이와함께 지난해 초 시노백이 개발한 ‘CoronaVac’에 대해 올초 브라질과 터키에서 임상 1·2상이 진행됐다. 예방효과는 브라질에서 50.65%를, 터키에서는 91.25%로 나타났다. 실험 설계를 달리해 얻은 해당 임상시험 결과는 아직 국제학술지에 등재되지 않았다.

그해 2월 중국 정부는 해당 백신을 조건부 승인했다. 7월 브라질·인도네시아·터키 등지에서 임상 3상에 돌입했다. 중국은 긴급승인을 결정, 코로나19 위험 직군에 우선 접종을 실시했다. 올초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TV 앞에서 해당 백신을 접종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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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역에 사용 허가가 떨어진 데 이어 아제르바이젠, 브라질, 캄보디아, 칠레, 콜롬비아, 에콰도르, 홍콩,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멕시코, 필리핀, 태국, 터키, 우크라이나, 우루과이, 짐바브웨 등지에서 긴급 사용 승인을 받았다. 세르비아와 세이셸은 제한 사용 조건으로 백신을 수입했다.

아울러 시노팜우한이 개발한 백신은 임상 1·2상 결과에서 72.51%의 예방효과를 보였다. 피험자 일부에서 발열 등의 부작용이 보고됐고, 페루 내 임상시험에서도 신경 관련 증상이 발견돼  실험을 중단되기도 했다. 이후 시노팜우한 측은 해당 증상이 백신과의 연관성은 없다고 밝혔다. 2월 중국은 해당 백신의 사용을 승인했지만, 임상시험에 대한 구체적 데이터는 공개되지 않았다. UAE는 제한 사용 조건으로 이 백신을 공급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