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말기 유통법 개정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기 시작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3월 중 정부안 발표를 예고했고, 21대 국회에서도 개정안 발의가 이어졌다. 법 시행 6년여가 지나면서 그동안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대대적인 제도 개선은 미진했다. 법의 효과도 일부 있었지만 한계를 나타낸 점도 짚어야 한다. 개선 논의가 분명히 필요한 이유다. 이에 따라 여러 법 개정 움직임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단말기유통법의 재정비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든 이해관계자가 동의하고 있다. 다만, 각각의 대안에 대한 입장과 시장에서 효과성 평가가 엇갈린다. 의견을 면밀히 수렴해 합리적인 개선방안을 도출해야 한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21대 국회가 개원한 뒤, 이번 회기에 다뤄야 할 주요 입법정책 현안을 담은 보고서에서 지적한 사항이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하 단통법)의 개선이 필요하지만, 이견이 엇갈려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 단통법 만큼이나 개정 추진이 많이 이뤄진 법안은 드물다. 나아가 발의된 법안 수에 비해 실제 통과된 사례가 거의 없는 편이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26건의 단통법 개정안이 발의됐고, 이 가운데 1건만 통과되고 25건은 모두 회기 만료에 따라 자동폐기 됐다.
단통법 개선 논의가 이처럼 쉽지 않은 이유는 한마디로 정의내리기 어렵다는 부분이다. 사실상 국민 필수재로 자리를 잡은 휴대폰인데 여러 사업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시장 환경이 수시로 변한다는 점이다. 요금할인 제도와 같이 이용자 권익이 늘어난 부분은 분명한데, 소비자의 민원이 그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대체로 일부 실효성은 있지만 보완할 부분이 분명하다는 지적과 함께 보조금 규제에 대한 전면 재검토와 완전자급제와 같이 단통법을 뛰어넘는 강력한 규제 방안으로 시장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맞물리는 점이 단통법 개선 논의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21대 국회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보인다. 분리공시 도입을 골자로 한 법안을 포함해 총 6건의 단통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보조금 규제는 그대로 살리면서 단통법을 폐지하고 다시 전기통신사업법으로 이관하는 법안도 나왔다. 또 몇몇 의원실에서 자급제와 관련한 법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 분리공시 재도입, 산 넘어 산
21대 국회의 단통법 개정 첫 논의는 분리공시로 시작됐다. 분리공시는 단통법 제정부터 시행 이후를 통틀어 가장 치열한 화두였던 만큼 쉽지 않은 논의가 예상되는 부분이다.
과거 정부는 지난 2014년 단통법이 시행되기 전, 하위 법령인 고시에 분리공시를 담는 방향으로 입법을 추진했으나 규제개혁심사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당시 글로벌 시장에서 영업을 해야 하는 단말 제조사들은 자국법에 따라 국내 시장에서 영업비밀이 공개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고, 규개위에서 이는 과도한 규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후 단통법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분리공시 도입을 다시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이어졌지만 많은 논의가 이뤄지진 않았다. 20대 국회의 통신시장 관련 핵심 화두인 완전자급제와 보편요금제에 밀려 분리공시는 논의대상 밖에 머물렀다.
그런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을 시작으로 같은 당 김승원, 전혜숙 의원이 잇따라 분리공시 도입을 담은 단통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21대 국회 단통법 첫 개정안 발의가 분리공시 도입 내용이고, 전체 개정안 6개 가운데 절반이 분리공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점이 주목할 부분이다.
분리공시 도입을 두고 소관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는 원칙적으로 필요하다는 뜻과 함께 시장에서 우려하는 부작용을 해소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주요 정책추진 과제로 방통위와 이와 달리 분리공시를 두고 이해관계자 중심의 시장에서는 냉랭한 분위기다. 예컨대 과거에는 이통사와 제조사가 분리공시 도입 여부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면, 현재는 양측 모두 회의적인 기류로 모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통신사 한 관계자는 “단통법이 제정되던 LTE 시장 초기와 달리 현재는 단말 제조사 간 경쟁이 사실상 사라져 출고가 인하를 유도하는 목적이 한계에 부딪혀 보인다”면서 “분리공시로 제조사가 장려금을 줄이면, 나머지 단말 할인 마케팅 비용을 이통사가 맡아야 하는 점도 부담스러운 부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통신사 입장이 바뀐 것과 함께 시장 환경이 요동치는 수준으로 변화하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한때 분리공시 도입 찬성 의견으로 돌아섰던 LG전자가 모바일 사업에서 철수 가능성을 내놓은 점이 제조사 대상 규제를 다시 검토할 단계로 이끄는 상황이 됐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만약 LG전자가 모바일 사업에서 철수하게 된다면 LG폰의 판매 점유율이 삼성이나 애플, 새로운 외산폰 브랜드로 움직일 것”이라며 “삼성과 애플의 점유율이 더 늘어날 수도 있고, 중소 브랜드가 다시 경쟁을 이끌 수도 있는데 이런 변화를 미리 짐작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제조사 대상 규제는 좀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즉, 분리공시 법안은 발의된 이후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지도 못한 가운데 새로운 추가 논의 사안을 안고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설명이다.
■ 다시 꿈틀대는 완자제, 단통법 개정 논의 삼킬까
국회의 단통법 개정 논의가 사실상 무력화될 가능성도 높은 편이다. 과거와 같이 단통법 폐지를 전제하는 완전자급제 논의가 다시 시작될 경우 단통법의 전면적인 개편이나 일부 개편 모두 쉽지 않은 상황이 될 수 있다.
이미 단통법 폐지안도 발의돼 있다. 국민의힘 김영식 의원이 발의한 단통법 폐지안은 특별법으로 마련된 단통법의 조항을 전기통신사업법으로 일원화하는 방식이다.
이 법안은 소비자들이 이해하는 단통법 폐지와 달리 보조금 규제는 그대로 유지된다. 단통법에서 생긴 지원금 공시 제도를 이통 3사를 넘어 모든 대리점과 판매점으로 확대한 점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사실상 규제를 더욱 강화하는 법이란 평가를 받는다.
통신사가 공시한 지원금 규모에 맞춰 만들어진 25% 선택약정할인제도를 두고, 유통점까지 지원금 공시 주체로 만들어 법 구조 상 모순도 있지만, 단통법 개정 논의가 시작되면 병합심의 대상이 될 전망이다.
단통법 개정안 병합심의는 김영식 의원의 폐지안 외에 다른 법안도 함께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한 관계자는 “여당 의원실 한 곳과 여당 외 의원실 한 곳에서 과거 완전자급제 법안과 비슷한 내용의 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며 “정기국회 이전에 발의한 뒤 올해 국정감사에서 다시 화두가 되고, 20대와 같이 단순히 단통법 뿐만 아니라 이동통신시장 관련 법안을 모두 함께 논의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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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앞으로 발의될 이동통신시장 관련 법안을 단통법 개정안과 모두 묶어서 살피게 된다면 단통법의 전면개편은 물론 부분적인 개정 논의가 별도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과방위 다른 관계자는 “단통법은 국민이 느끼기에 파괴력이 큰 법안이기 때문에 상임위 내 여야 의원들이 각자 개선 방안을 내놓을 수 있지만, ICT 관련 법안 논의에서 다른 주요 입법 논의보다 우선 순위가 앞서지 않는 분위기가 있는 점도 사실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