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출신 김범수·김정호의 ‘진짜 기업가 정신’

[백기자의 e知톡] 흙수저의 아름다운 자수성가

인터넷입력 :2021/02/09 07:31    수정: 2021/02/09 14:38

김범수 카카오의 의장의 통근 기부 소식이 하루 종일 화제가 됐습니다.

아직 구체적인 기부 방식은 정해지지 않았으나 10조원이 넘는 개인 재산 중 절반을 사회에 내놓겠다는 계획이 알려지면서 그의 결단에 크고 작은 갈채가 쏟아졌습니다.

그 동안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페이퍼 컴퍼니를 세워 회사 자금을 유용한 것 아니냐는 삐딱한 시각들이 그의 기부 결단 소식에 잠잠해진 분위기입니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

이미 대법원서 무혐의로 결론이 난 사안이지만 대기업 총수 지정 당시 계열사를 일부러 누락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이번 기부를 계기로 말끔히 해소된 모습입니다. ‘사리사욕에 눈 먼 대기업 총수’란 프레임에 가두려 했던 시도들이 물거품 된 순간이었습니다.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의 화려한 성공 때문에 김범수 의장이 가진 기업의 선한 영향력에 대한 철학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김 의장은 2017년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노력보다 훨씬 많은 부를 얻었기 때문에 그 이상은 덤인 것 같다”는 말을 했습니다. 또 “어떤 식으로든 사회에 환원하지 않으면 마음에 걸린다”면서 “열심히 살아도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눈에 훤히 보이는데 외면하자니 죄책감도 든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가할 수 있는 일, 카카오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사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도 밝혔습니다.

이 말에서 어려운 형편을 견디고, 고생 끝에 성공한 경험을 거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진지한 고민이 엿보입니다. 김 의장은 2남3녀 중 셋째로 태어나 유복하지 않은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의 부친은 시장 건어물 가게를 했고, 많은 식구가 단칸방에서 살기도 했습니다.

김 의장은 독학으로 재수 끝에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에 입학, 1990년대 말 삼성SDS를 퇴사해 PC방을 창업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1998년 한게임을 창업했고, 2000년 한게임을 네이버와 합병시키면서 NHN 공동대표가 되는 인생역전을 이루게 됩니다. 2007년 NHN을 떠난 그는 2009년 말 아이폰 국내에 출시와 함께 모바일 메신저의 가능성을 보고 카카오톡을 출시, 지금의 국내 3대 주식부호가 됐습니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

얼마 전 그는 코로나19 극복에 써달라며 20억원의 사재를 기부했고, 최근에는 카카오의 환경 사회 지배구조 위원장을 맡아 기업지배구조헌장을 제정하고, 지속가능경영 전략 방향성 점검 등을 진두지휘하기로 했습니다.

또 그는 2018년 설립한 카카오임팩트 재단에서 이사장으로서 기업의 재무적 가치와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달성하는 소셜임팩트 사업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단순히 돈만 버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방안들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대기업 총수하면 회사 자금을 유용하고, 비상한 방법으로 돈을 세탁하거나 하청업체를 쥐어짜는 이미지부터 떠오릅니다. 2세 3세 후손들은 아버지 권력과 돈을 믿고 사고뭉치로 살다 문제를 일으키지만 결국 높은 자리를 꿰차 큰 어려움 없이 인생의 승자가 됩니다.

반면 김범수 의장은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 노력을 통해 다이아수저를 물게 된 경우로, 힘들게 성공의 문턱까지 직접 걸어온 인물이란 점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부의 화려함을 누리면서도, 그러지 못한 그림자를 진지하게 살필 줄 아는 기업가 정신을 가진 인물입니다. 물론 그가 약속한 기부가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사회에 기여하는지를 지켜봐야겠지만 국내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기업가의 솔선수범이란 점에서 큰 의미와 가치를 지닙니다.

김정호 베어베터 대표(왼쪽 첫 번째)

김범수 의장과 더불어 흙수저에서 다이아 수저를 문 ‘원조 CEO’가 있습니다. 바로 네이버 창업 멤버 중 한 명인 김정호 베어베터 대표가 그 주인공입니다. 택시 운전사 아버지 밑에서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김 대표는 고려대학교를 졸업해 삼성에서 약 9년 간 특진의 특진을 거듭하며 승승장구한 인물입니다. 물론 그의 성실함과 독한 노력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그는 주위에서 말렸지만 1999년 회사를 나와 네이버 창업 멤버 8명 중 한 명으로 합류했습니다. 월급쟁이로 10년을 열심히 살아도 서울에 아파트 전셋돈 마련이 쉽지 않겠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회사를 뛰쳐나오는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 네이버의 자본금은 5억원이었고, 그가 투자한 금액은 1천500만원이었습니다. 이 덕분에 김 대표가 가진 회사 지분은 3%였는데, 그가 퇴사한 2009년 1천500만원 투자금은 총 400억원이 됐습니다. 이 중 100억원은 세금을 냈고, 나머지 300억원 중 100억원을 투자해 1천억원 이상을 벌었습니다. 카카오, 넵튠, 크래프톤 등이 그가 투자한 대표적인 회사입니다.

네이버 창업주인 김정호 베어베터 대표가 2018년 프라이머 데모데이 행사에서 강연하는 모습.

지금은 국내 1위 포털사인 네이버도 김정호 대표 재직 당시 두 번의 부도가 있을 만큼 큰 위기가 있었습니다. 두 달 뒤면 직원들 월급마저 줄 수 없는 벼랑 끝에 서 있던 작은 벤처 회사가 바로 네이버였습니다. 한 달에 두 번 겨우 집에 들어가며 일했던 그 때의 절박했던 경험이 글로벌 시장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IT 기업의 성공 밑거름이 됐던 셈입니다.

그리고 그 힘든 시간과 경험들이 김정호 대표가 30억원을 들여 베어베터를 세우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베어베터는 발달장애인의 성장과 고용을 돕는 사회적 기업입니다.

물론 김범수 의장, 김정호 대표에게 천운이 함께 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큰 성공과 부는 힘들었을 겁니다. 무조건 열심히만 한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는 시대는 사라진지 오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와 흐름에 맞춰 돈을 버는 방법에 있어 누구보다 비상했던 두 사람은 어려웠던 시간들을 몸소 겪은 덕분인지, 부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잘 아는 기업가임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그들은 또 굉장히 평범한 사람이란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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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가 잘 안 됐다면요? 저의 인생 플랜B는 생맥주집이였어요. 대학 5년 간 생맥주 알바를 굉장히 잘했거든요.” (김정호 대표, 2018년 프라이머 데모데이 강연 중)

이렇게 말할 만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