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유령이 세계 테크 시장을 배회하고 있다. 이번에는 애플카다. 누구도 그 존재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위력은 가공할 만하다. 진위를 알기 어려운 뉴스를 통해 그 그림자나 옷자락이 비칠 때마다 모두가 야단법석이다. 죽은 스티브 잡스가 살아 있는 세계 테크 기업을 쫓아내는 형국이다. 거함 노키아를 쫓아냈던 잡스와 그의 후예들은 과연 자동차시장까지 갈아엎을 것인가.
아이폰은 통화의 기능은 갖고 있지만 더 이상 과거의 전화기는 아니다. 이 요상한 물건의 이름은 그래서 ‘폰’보다 ‘아이’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아이’는 우리가 그것을 사용하면서 총체적으로 느끼는 그 어떤 것이다. 그 변화의 폭과 깊이가 너무 커 우리는 아직 그에 딱 어울리는 이름조차 지어주지 못했다. 기껏해야 스마트란 수식어를 붙이는 정도지만 폰이 아닌 것을 폰이라 부르고 있다.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 ‘그래봐야 폰 아니냐?’고 생각했던 기업은 시간의 길고 짧음만 있었지 결국 망하는 길로 갔다. 노키아와 모토로라와 LG전자가 대표적이다. 반대로 아이폰에서 ‘폰’보다 ‘아이’를 더 깊게 생각한 기업은 무궁한 사업기회를 갖게 됐다. 사업 내용을 PC 환경에서 모바일 환경으로 재빨리 변신한 기업들이 그들이다. 국내에서는 카카오와 넷마블 같은 기업이 대표적이겠다.
폰의 길이 그러했다면 앞으로 자동차의 길은 어떨 것인가. 애플카를 ‘또 하나의 유령’이라고 한 까닭은 차 또한 그 도상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차를 여전히 차로 대하는 기업과 새로운 그 무엇으로 정의하는 기업의 운명이 폰에서처럼 극명하게 엇갈리는 시간이 점차 다가오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직 뚜렷한 정체도 없는 유령 같은 존재에 많은 이들이 호들갑을 떠는 이유가 거기 있다.
차가 앞으로는 더 이상 과거의 차가 아닐 것이라면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현재까지 키워드는 ‘친환경’과 ‘자율’이다. 외형적으로 가장 크게 변하는 게 그 두 가지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엔진이 2차전지인 배터리로 대체되고, 운전의 핵심수단인 핸들이 사라진다. 전자는 이미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전기차의 대장주인 테슬라와 중국의 니오 그리고 2차전지 업체들이 그 실체들이다.
친환경 이슈가 인류의 최대 숙제로 올라선 한 전기차만으로도 차 시장은 요동칠 수밖에 없다. 엔진성능을 중심으로 한 과거의 경쟁력이 더 이상 큰 의미를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이폰 이후 단순한 통화 품질이 스마트폰의 경쟁 요소가 아니었던 것과 같다.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이 대세에 올라타야 하지만 여전히 수익의 대부분을 엔진에서 벌어야하는 만큼 변화가 느릴 가능성이 크다.
친환경으로 인한 변화의 판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상황이 됐다. 테슬라 같은 신규업체든 전통적인 자동차 업체든 길은 정해졌고 그 길로 누가 더 빨리 달려가느냐의 문제만 남아 있다. 하지만 이 싸움 또한 여전히 ‘자동차 사이의 경쟁’일 뿐이다. 전기차가 된다 해도 그건 차일 뿐이다. 아이폰 이전에는 변화된 모든 폰이 그래봐야 결국 폰이었던 것과 같은 이치이다.
‘자율’은 친환경과 다르다. 친환경이 ‘기술의 경쟁’이라면 자율은 단지 기술의 경쟁이 아니다. 그건 기술보다 차라리 종합예술에 가깝다. 친환경 기술에 비해 결코 수준이 낮지 않은 수많은 기술이 결합되어야 한다. 단지 결합한다고 되는 문제도 아니다. 새로운 쓰임새를 만들어야 하고, 자동차이지만 결코 차가 아니 그 무엇을 만들어야 한다. 과연 그 어려운 물건을 누가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겠나.
세계 테크 시장은 지금 그 유령을 찾는 데 몰두하고 있다. 사실 그 유령은 모든 자동차 기업과 IT 기업의 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그 꿈이 너무 웅장해서 대개의 기업이 말할 때는 실없어 보일 뿐이다. 하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그 유령이 나타나 테크 시장을 송두리째 흔들 것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기술과 비즈니스는 항상 공상과학을 현실로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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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 시장의 많은 참여자들은 그 점에서 애플을 주목하고 있다. 물론 구글이나 중국의 바이두 같은 기업도 그 꿈을 현실로 만들 유력한 후보들이다. 그럼에도 애플에 특히 관심을 두는 것은 아이폰이 보여줬던 가공할 파괴력 때문이다. 애플이야 말로 차를 차이면서 차가 아닌 그 무엇으로 만들어낼 최적의 기업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애플카에 대한 정보가 거의 전무하다는 데 있다.
민감한 이에겐 그 상황이 폭풍전야와 같다. 고요한 표면 아래에서 꿈틀대는 기류를 느낀다. 애플 외각에서 진위를 알 수 없는 소식이 유령처럼 흘러나올 때마다 안테나를 곧추세운다. 그런 반응이 때로는 호들갑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안테나가 있느냐 없느냐는 멀지 않은 미래에 생존 문제로 바뀔 수 있다. 애플카를 능가할 수 없다면 안테나를 세우고 보조를 맞춰 조금씩 움직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