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인터넷 업체에게 ‘서비스의 품질(혹은 안정성)’은 법에 따른 의무 사항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업(業)의 본질에 더 가깝다. 누가 강제로 시켜서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이기고 살아남으려면 스스로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하는, 그런 종류의 일인 것이다. 그 일은 학생으로 치면 공부와 같은 것이고, 농부로 치면 씨를 뿌리는 일과 같은 것이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지금 같은 큰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그것이다. 두 회사의 서비스라고 해서 그 품질이 완벽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걸 높이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을 것이고, 이용자들이 그 점을 인정해줬기 때문에, 지금처럼 성장했을 것이다. 두 회사는 그걸 잘 알고 있고, 앞으로도 지금 같은 지위를 유지하거나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런 노력을 게을리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에 대해 정부가 법으로 정해 일일이 규제하겠다고 하니, 그 배경과 규제의 타당성이 의아스러운 것이다. 내버려둬도 최선을 다 할 일을 정부가 나서서 더 최선을 다하도록 법으로 규제하고 압박해야 될 이유는 대체 뭘까. 그 이유는 엉뚱하기만 하다. 두 업체가 본원적 경쟁력으로 생각하는 ‘서비스’와 정부가 법을 고치고 시행령을 만들어야만 하는 ‘서비스’는 그 내용이 다른 거다.
두 업체의 서비스는 대개 플랫폼과 콘텐츠를 뜻하는 것이고, 정부가 새 법에서 의미하는 서비스는 통신망(通信網)을 가리킨다. 그래서 더 의아스럽다. 왜 플랫폼 혹은 콘텐츠 사업자가 통신망의 품질에 관해 어떤 의무를 져야 하는가. 통신망의 품질은 당연히 통신서비스 회사가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다. 지금까지는 그래왔다. 그런데 왜 지금부터는 그 책임을 나눠가져야만 한단 말인가.
정부 생각이 이렇게 바뀐 것은 페이스북 넷플릭스 유튜브 등 미국계 플랫폼 혹은 콘텐츠 사업자들 때문이다. 이들은 한국의 발달된 통신망에 기대 사업을 펼쳐 엄청난 이득을 챙기면서도 망(網) 이용료를 내는데 무임승차에 가까울 만큼 비협조적이다. 심지어 페이스북의 경우 통신 사업자와의 망 이용료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일부러 서비스 품질을 떨어뜨리는 ‘횡포’까지 자행하였다.
‘페이스북의 횡포’에 대해서는 지금 재판이 진행 중이다. 우리 정부는 그 횡포에 분노했고 그래서 행정처분을 내렸지만, 페이스북은 법을 어기지 않았다며 불복했고,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며, 1심에서는 승소하기까지 했다. 횡포를 부린 것으로 보이지만 처벌하기에는 법 조항이 마땅치 않다는 게 법원의 판단 요지였다. 법망(法網)이 조밀하지 않았거나, 법리(法理) 논쟁에서 페북이 우세했던 것이다.
8일 입법예고된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은 이처럼 그 부실한 법망을 손질하자는 뜻에서 시작됐다. 문제는 새로 손질한 법망에 비하면 페북의 횡포는 바람과 같다는 사실이다. 바람을 어떻게 그물로 가두겠는가. 해외 플랫폼 및 콘텐츠 사업자도 망 이용료를 내게 하는 게 진짜 목적인데, 그 자체를 법으로 명시할 수는 없으니, 엉뚱한 그물을 만든 셈이고 그들은 또 바람처럼 빠져나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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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상한 그물에 엉뚱하게 걸려든 곳이 바로 네이버와 카카오다. 이들은 지금까지 통신 사업자에게 섭섭지 않은 망 이용료를 성실하게 내왔지만, 지금까지 말을 잘 듣고 협조해왔다는 그 이유로, 오히려 더 많은 구속을 강요당하게 된 것이다. 통신망 서비스 품질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실질적으로 아무 것도 없는데 그 책임을 져야하고 그와 관련해 엉뚱하고 잡스러운 의무만 잔뜩 주어진 것이다.
이 스토리의 본질은 한국의 이용자, 정책 및 사법 당국, 협력 사업자 등을 모조리 조롱한 페북의 횡포가 있었다는 사실과 해외 업체들이 그런 경향이 짙다는 것이며, 그에 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법도 거기서 출발했다. 문제는 해법이 너무 엉뚱하다는 것이다. 몽둥이가 필요한 상황에서 그물을 던진 꼴이다.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면, 이 억울한 상황에서 대해서도 생각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