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성의 溫技] 잘 팔리는 유튜브 콘텐츠 제작을 고민하다가

방송과 유튜브의 차이

인터넷입력 :2020/08/04 14:42    수정: 2020/10/05 13:26

요즘 자주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특히 유튜브와 동영상을 대할 때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시대를 따라가고자 하는 고민이 없지는 않다. 아니 일자리에 대한 위기감 때문이라도 그 고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실제로 틈 날 때마다 잘 팔리는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리저리 알아보고 있기도 하다. 그 고민을 나눠보고자 한다.

머리 한 켠에서 동영상이 맴돌게 한 사람은 경제신문에 다닐 때 만났던 선배다. 당시 그의 필생의 업(業)은 과학 칼럼니스트였다. 그 꿈은 접어야만 했다. 이유가 뜻밖이었다. 돈 때문이다. 칼럼에 대한 회사의 대우는 참담할 정도였다. 수십 년 일한 논설위원 연봉이 신입기자 수준에 불과하였다는 것이다. 지금 선배가 택한 ‘인생 2모작’은 동영상이다. 방송사 은퇴자들과 연대해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글로는 독립할 수 없었는데 동영상은 자립의 기회를 줬다”는 게 선배의 ‘동영상 예찬’이다. 글에 관한 한 존경했던 선배이기에 그 말이 한 편으로 참담했고(그 선배보다 훨씬 부족한 나는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하는 점에서), 다른 한 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었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다른 길이 존재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왠지 보험 하나를 들어놓았다는 망상에 가까운 착각(술 탓이겠지만) 때문이다.

동영상 앱 이용시간 점유율에서 압도적 1위인 유튜브

선배의 ‘인생 2모작’을 살피면서 동영상을 하기 위해서는 글과 다른 테크닉(혹은 문법)을 배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촬영하고 편집하고 유튜브에 올리는 기술 말이다. 대학 친구인 동영상 전문가를 찾아갔다. 그는 방송 프로그램 제작사를 운영한다. KBS와 EBS 등 방송사에 꽤 잘 알려진 고정 시리즈물 4편을 공급하고 있다. 유튜브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설명하고서 전문가로서 조언을 부탁했다.

대화는 초장부터 참담했다. 말 없는 비웃음이 그의 소리 없는 일성이었다. “왔으니 밥이나 먹고 가.” 실제 첫 마디는 이거였다. 예의였던지 ‘쓸 데 없는 소리 하지 말고’는 혼자 삼키고 내뱉지는 않았다. 대신 밥 한 술도 뜨기 전에 메스같이 예리한 한 마디가 날라 왔다. “넌 안 돼.” 명쾌한 스트레이트였다. “수십 년 방송 밥 먹은 사람들도 안 되는데 네가 무슨 수로 할 수 있겠어. 개꿈은 꾸지마.”

그의 논지는 대충 이렇다. “유튜브 현상을 단순히 문자와 동영상의 차이로만 보는 건 멍청한 짓이다. 신문과 방송의 차이가 아니다. 단지 그 차이라면 방송 출신이 유튜브를 장악하는 게 맞다. 하지만 방송은 유튜브에서 안 통한다. 신문과 방송의 차이보다, 방송과 유튜브의 차이가 100배는 더 크다. 그 이유를 알아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넌 방송은 할 수 있어도 유튜브는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된다.”

그렇다면, 유튜브 콘텐츠도 타이틀은 다 TV라고 하는데, 방송과 그것은 과연 무엇이 다르기에 수십 년 일한 방송 전문가들조차 유튜버들한테 꼼짝도 못하는 것일까. 유튜브를 하려면 결국 이 질문에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그 친구의 생각이다. 첫째, 주체가 다르다. 방송은 조직이 만든다. 조직은 전문직 직장인에 일을 시킨다. 유튜브는 개인 마니아가 만든다. 결국 방송은 일이지만 유튜브는 취미다.

이 차이로 많은 것이 달라진다. 먼저 목표가 달라진다. 방송은 겉으로 드러낸 목표가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시청률과 그로 인한 수익이 궁극의 목표다. 이게 유지되지 않으면 방송은 더 이상 할 수 없다. 유튜버의 목표는 그보다 재미에 가깝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다. 그냥 좋아서 한다. 돈을 벌든 말든 싫증날 때까지 한다. 그러다 돈을 벌면 더 좋을 뿐이다. 목표의 차이는 지속성의 차이가 된다.

돈을 목적으로 한 조직이 재미로 한 개인을 이길 수 없는 근본적인 차이가 그 지속성에 있다. 유튜버 중에는 돈을 목적으로 시작한 사람도 물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조직 방송인들처럼 결국 목표 달성이 쉽지 않기 때문에 중간에 포기할 가능성이 많고, 지속적이고 장기적으로 인기를 얻는 유튜버의 공통점은 그 일 자체를 미친놈처럼 즐긴다는 사실이다. 유튜버를 할 거면 취미로 해야만 한다는 거다.

그런 뒤에 인기를 얻어 돈까지 번다면 그건 덤일 뿐이다.

둘째, 시청자가 다르다. 이 말은 시청자 층이 다르다는 뜻이 아니다. 그보다는 방송을 볼 때와 유튜브를 볼 때 시청자의 마음 자세가 다르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시청자로서, 방송과 유튜브에 기대하는 바가 다르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장 큰 차이는 공공성과 재미, 그리고 균형 감각과 편향이다. 유튜브 시청자를 잡으려면 공공성보다 재미, 균형 감각보다 편향에 더 치중할 수 있어야 하는 거다.

1세대 유튜브 크리에이터인 대도서관도 그렇게 말한다. 그는 3일 밤 한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의 임시 진행자로 나와 ‘유튜브에서 인기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두 가지로 대답했다. “방송에서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라”는 점과 “텐션(tension)을 주라”는 것이었다. 유튜브에서 ‘확증편향’이 심해지고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방송도 끊임없이 유혹받지만 모두 금기다.

그러니 그 금기에 단련된 방송인들이 유튜브에 어찌 쉽게 적응할 수 있겠는가. 방송인이 그러는 데야 하물며 문외한이야 두 말할 게 뭐 있겠는가. 그렇지만 친구에게 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넌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되니, 그걸 잘 할 수 있는 친구들을 찾아 취미 생활 열심히 하도록 무조건 밀어줘.” 그게 유일한 답이었다. 어떻게 밀어주지? 크리에이터 발굴 지원 사업? 에구. 너무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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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의 관심이 그렇다고 무소득인 것만은 아니다. 다른 것을 끌어안기 위해 한 손과 세 귀가 필요한 섭(攝)으로서의 융합(融合)의 관점(이 표현은 여성학자 정희진의 시각을 빌림)에서 시대의 변화와 새로운 주체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면 유튜브를 더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는 점을 느낀 것만으로도 소중한 기회였다. 요즘 누구나 늘 유튜브를 보지만, 보는 것이 곧 유튜브를 아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