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업계를 중심으로 암호화폐(가상자산) 산업 전반을 다루는 업권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 등 금융 선진국은 기존 금융 산업을 혁신하는 보완재로 암호화폐를 바라보고 제도권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반면, 우리 정부는 여전히 규제 프레임에만 머물러 있어 산업 성장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블록체인협회는 19일 온라인으로 '블록체인 산업 진흥과 소비자 보호를 위한 가상자산 업권법 태스크포스(TF) 1차 간담회'를 개최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이날 간담회는 미국의 암호화폐 제도와 금융기관 동향을 살펴보고 국내 현황을 점검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미국은 암호화폐를 금융 산업에서 다룰 수 있도록 합리적인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암호화폐 커스터디 ▲비트코인 ETF ▲암호화폐 선물거래 등 다양한 암호화폐 기반 금융 서비스들이 등장해, 새로운 시장을 키워나가고 있다.
먼저, 미국은 자국 내 모든 은행에 암호화폐 커스터디(수탁)를 허용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재무부 산하 은행규제 기관인 통화감독청(OCC)은 "암호화폐 커스터디는 은행의 수탁 기능이 디지털활동으로 확장된 것"이라고 해석하며, "연방 정부와 주 정부 인가를 받은 상업은행과 저축은행은 암호화폐 커스터디 사업이 가능하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공개했다.
은행뿐 아니라 빗고, 코인베이스 등 암호화폐 전문 업체들도 주정부 신탁업 허가를 받아 규제를 준수하면서, 기관 대상 암호화폐 커스터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더 나아가 암호화폐 커스터디 업체 앵커리지는 OCC로부터 국법 은행 인가를 조건부 승인 받아, 최초의 연방 암호화폐 은행이 됐다.
하지만 국내는 은행이 암호화폐 커스터디를 직접 서비스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날 간담회에서 한서희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우리나라에서는 은행법상 규제 또는 자본시장법상 규제로 인해 금융회사에서 가상자산 업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은 아직 막혀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은 기존 규정을 좀 더 유연하게 해석하면서 신탁 업자들이 디지털자산도 신탁할 수 있게 했다"며 "우리나라도 규제 안에서 혁신을 추구할 방법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미국에서는 암호화폐 펀드 판매나 비트코인 선물 거래를 제도권에서 지원하고 있다. 이 같은 상품은 기관 투자자들이 암호화폐 투자 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는 인프라 역할도 하고 있다.
대표적인 암호화폐 펀드 '그레이스케일 비트코인 트러스트'의 현재 운용규모는 235억 달러 규모에 이를 만큼 성장했다.
시카고 선물거래소(CME)는 2017년 12월 비트코인선물 시장을 개설했고, 올해 2월 중에는 이더리움선물 시장도 열 계획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비트코인 펀드 상품 출시가 불가능하다. 박종백 태평양 변호사는 "비트코인 펀드를 운영하려면 커스터디, 트러스티, 집합투자 업체, 투자중계업 등이 필요한데 현재 국내 금융 기업이 암호화폐를 가지고 이런 사업을 하는 게 다 막혀 있다"고 설명했다.
암호화폐 파생상품 거래도 막혀있다. 윤종수 광장 변호사는 "현재 금융위원회는 비트코인이 기초자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있다"며 "국내 선물시장이 만들어지지 않았고 CME의 비트코인 선물에도 국내 투자자들이 투자할 수 없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전문가들은 국내 규제 환경이 여전히 기업들의 암호화폐 사업 추진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국내에서는 암호화폐 사업자에 자금세탁방지의무를 부과한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이 통과되고, 암호화폐 거래 차익에 20% 세금 부과가 결정되면서 암호화폐 산업 법제화의 첫 발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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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직 블록체인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사업을 펼치기는 어려운 환경이다. 특금법과 암호화폐 과세 모두 특정 의무를 이행하도록 만든 규제법으로, 암호화폐 발행·제공·거래·투자자 보호 등 산업 전반에 필요한 기본적인 규정은 여전히 법제화되지 않은 상태다.
오갑수 한국블록체인협회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미국 금융당국의 정책변화는 디지털에셋과 금융 서비스가 결합해 다양한 형태로 발전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며 "우리나라가 세계 디지털에셋 시장에서 리딩 국가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블록체인 기술이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 유용하게 활용 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한 바람직한 업권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