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세' 밑그림 그리는 정부…증세 논란은 여전히 부담

관계부처 TF서 협의…脫탄소 위한 세제 개편 필요성 대두

디지털경제입력 :2021/01/14 07:41    수정: 2021/01/14 10:37

정부가 2050 탄소중립(Net Zero·넷제로) 달성을 위한 탄소세 도입을 공식화한 가운데, 이를 추진하기 위한 밑그림 그리기에 들어갔다. 

미국·유럽연합(EU) 등이 탄소국경세 도입에 박차를 가하는 터라,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탄소세를 도입해 기업 전반에서 탈(脫)탄소를 유도하자는 게 기본 방향이다.

석탄발전 등 화석연료 사용량이 많은 업종에 세금을 더 매기자는 게 원칙이나, 과도한 증세가 국민과 기업에 부담이 될 것이란 신중론도 거센 상황이다.

13일 정부 관계자 등에 따르면 기획재정부,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탄소세 도입과 관련한 협의를 진행 중이다.

사진=Pixabay

해외 사례 참고해 韓 '탄소세' 모델 만든다

탄소세는 석유와 석탄 등 화석연료에 포함된 탄소량에 따라 차등 부과하는 세금이다. 이산화탄소를 다량 배출하는 업종이라면 세금 부담이 늘어난다. 해외에선 주로 유럽, 그 중에서도 영국·독일·스웨덴·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에서 보편화된 세제다.

정부가 공식 석상에서 탄소세 도입을 구체화한 것은 지난달 7일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 발표를 통해서였다. 205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0(제로)'로 만들기 위해선 탈탄소를 위한 세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전세계적인 추세인 탄소국경세 도입에 대비해자는 측면도 있다. 탄소국경세는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가 약한 국가가 강한 국가에 제품을 수출할 경우 부과받는 선진국형 무역관세다. 국내에서 생산된 고탄소 생산품이 미국과 유럽 등이 도입을 앞둔 탄소국경세로 인해 경쟁력을 잃게될 것이란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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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는 오는 2023년 탄소국경세 도입을 예고했다. 친환경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운 미국 바이든 행정부도 출범을 앞둔 상황이다. 그린피스는 이날 보고서에서 회계법인 EY한영이 진행한 조사 결과를 인용해 "EU·미국·중국이 탄소국경세를 도입하면 한국은 철강·석유·배터리·자동차 등 주요 업종에서 연간 약 5억3천만 달러(6천억원)를 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재부는 탄소세 도입을 위한 연구용역을 올해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제도 시행 과정과 그에 따른 역효과 등 해외 사례를 참고해 국내 실정에 맞는 모델을 구상하겠다는 것.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탄소세 도입이) 환경에 대한 기후변화 대응과 소득분배, 물가, 산업경쟁력 등에 미치는 영향이 다각적으로 있어 종합 검토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사진=뉴스1

증세 등 부담 가중 논란에 신중…기업들 "탄소 감축, 매우 힘든 길"

국회에서의 논의는 이보다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지난 7일 '기본소득 탄소세법'을 발의하며 "온실가스 배출량에 탄소세를 부과하고 세입을 국민에게 배당으로 균등 분배하자"고 제안했다. 에너지·제조·운송에 쓰이는 화석연료에 대해 온실가스 배출량 1톤당 8만원의 세율로 과세하자는 것이다.

용 의원은 "2018년을 기준으로 온실가스 1톤당 8만원을 과세하면 약 58조원의 세수가 확보된다"며 "이를 전 국민에게 매달 10만원 정도의 탄소세 배당으로 지급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8일 "기본소득 탄소세는 탄소제로 시대를 대비하는 일석다조 정책"이라며 입법 추진을 환영하기도 했다. 앞서 총선 공약으로 탄소세 도입을 내건 여당 반응도 비슷하다.

다만 이날 정부 관계자는 "그렇다고 해서 기한을 두고 세제 개편을 서두르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탄소세가 도입되면 대부분의 업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우선 부처 간 토론과 연구용역에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탄소세를 언급한 홍 부총리가 "지금 제도의 도입 여부나 경유세의 인상 여부 등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재차 선을 그은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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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부담이 되는 것은 '과도한 증세' 논란이다. 탄소세는 세수 개편이 기업의 에너지전환을 이끄는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이 제도의 맹점은 소득이 낮은 사람이 더 많은 세금을 내는 조세 역진성(逆進性)이다. 배출업종의 부담이 늘어나면서 전기요금·기름값 등이 따라 상승해 저소득층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임기 하반기에 접어든 정부로선 증세에 따른 조세저항이 신경쓰일 수 밖에 없다.

이중과세란 지적도 여전하다. 기업들은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를 통해 이미 탄소배출에 따른 비용을 지불 중이다. 지난해는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한 지 4년 만에 처음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감소한 해였다. 올해부터 2025년까지 배출권거래제 3차 계획기간부터는 배출허용총량이 감소하면서 온실가스 감축 부담이 더욱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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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은 온실가스 감축 기술이 부족하는 등의 이유를 들며 탄소 감축이 어렵다고 여러 차례 호소해왔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5월 364개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 배출권거래제 3차 계획기간 '온실가스 감축투자 계획이 있다'고 응답한 기업은 36.3%에 그쳤다. 59.1% 기업은 투자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이유로 '감축투자를 위한 아이템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전세계적인 추세인 탄소세 도입에 공감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화석연료 비중이 높은 국내 산업 실정과는 아직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며 "제도를 도입하기 전, 다른 부문에서의 절세 등 기업의 세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을 우선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