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에게 사과나무를 심게 하자

[정진호의 饗宴] 사회에 이바지하도록 관용의 문 열어줘야

데스크 칼럼입력 :2020/12/30 08:37    수정: 2020/12/30 21:45

2020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달도 다 기울었다. 그러나 자신의 운명을 가를 법정 최후 진술을 앞둔 기업인이 있다. 바로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를 이끄는 이재용 부회장이다.

그를 비롯해 5명의 삼성 경영진에 대한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이 오늘(30일) 오후 최종 변론을 앞두고 있다. 최종 선고는 해를 넘겨 이르면 내년 1월중 내려질 전망이다. 1심 재판이 2017년 4월 7일 시작됐으니, 3년 8개월만에 종착점에 이른 것이다. 햇수로 따지면 최종 선고까지 꼬박 4년이 걸리는 셈이다.

이번 파기환송심은 유무죄를 가르는 재판은 아니다. 3년여의 재판 끝에 대법원 전원 합의체가 지난해 8월 이미 경영승계 작업이 있었다는 유죄 취지의 판단을 내리고 사건을 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뇌물 액수도 86억원으로 늘어났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뉴시스)

이재용 부회장의 국정농단 재판은 우리 사회에 많은 논란과 생각을 불러일으킨 사건이다. 국정 최고 권력자와 그 비선 실세가 스포츠꿈나무육성-문화진흥이라는 구실 아래 기업들에게 돈을 출연케 하고 기업의 자율경영권을 침해한 권력 비리인지, 아니면 권력과 유착되어 경영승계라는 현안을 해결하려던 기업의 치부인지를 놓고 많은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그래서 파기환송심은 헌정사상 첫 탄핵인용으로 직을 잃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최순실)씨에게 돈을 건넨 이 부회장에 대한 양형을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 왔다.

그동안 재판 과정을 지켜보면 파기환송 재판부가 법정에서 내내 강조한 것은 이 부회장 등 삼성 경영진들을 벌하려고만 한 것은 아니었다. 준엄한 꾸짖음 속에 전근대적인 불법과 탈법이 정의와 공정을 향해 가는 우리 사회에, 아니 삼성과 같은 글로벌 초일류기업에서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했다.

재판부가 지난해 첫 재판 시작부터 이재용 부회장에게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를 마련하라고 주문한 것도 이런 이유일 게다. 앞으로 어떤 권력자가 부당한 요구를 해도 불법을 저지를 수 없는 감시장치를 제도적으로 만들고 삼성 계열사들이 이를 철저히 준수하도록 말이다. 故 구본무 LG 회장이 2016년말 국회 청문회에서 '다음 대통령이 요구하면 또 기업들이 돈을 출연할 것이냐'는 모 국회의원의 추궁에 '제발 국회에서 입법을 해서 막아 달라"고 호소했던 심정을 사법적 결단으로 어루만지려는 게 아닐까.

그러나 특검과 일부 시민단체는 여전히 못 마땅한 모양이다. 삼성 준법위가 실효성이 없고, 이 부회장에게 사법적 특혜를 주면 안 된다고 한다. 집행유예를 선고하면 사법부가 재벌 하수인을 자처하는 것이라며 압박하고 있다. 특검은 정치권력(대통령)과 기업권력(기업총수)을 대등한 관계로 보고 이를 정경유착으로 봤지만, 이는 자의적 세계관에 가깝다. 우리 사회에서 국가권력과 견줄만한 권력은 시민권력 정도다. 삼성이 다른 대기업들처럼 뇌물 요구에 수동적이었는지, 적극적이었는지도 생각의 차이일 수 있다. 독대 자리에서 최고 권력자가 쏘는 레이저 눈빛에 어느 누가 안 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법의 존재 목적은 우리 사회가 포용할 수 없는 극악무도한 죄가 아니라면 교화에 참 뜻을 둔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출범을 통해 삼성이 과거의 악습과 단절하고 새로운 삼성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찾도록 관용과 포용의 문을 열어 놓으려는 주문에 굳이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까. 물론 삼성도 이번 일을 계기로 과거 잘못된 행위와 철저히 단절하고 문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글로벌 일류 기업이 시대에 역행하는 퇴행적인 사고를 반복해서야 되겠는가. 진정한 반성과 소통만이 새로운 삼성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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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이 진행된 4년이란 세월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이제 모바일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스마트폰은 3G·LTE를 지나 5G 시대로 접어들었다. 자동차는 전기배터리를 달고 공유경제와 결합하고, 차량끼리 소통하는 V2X 모빌리티 혁명 시대를 앞두고 있다. AI반도체 시대가 도래하고, 플랫폼 산업은 다른 이종 산업과 결합해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세상은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갈리고 미국도 바이든 대통령 체제가 출범을 준비 중이다.

기업의 오너는 10년, 20년 뒤를 내다보는 사람이다. 단기적 사업 성과보다는 후대와 그 사회가 미래의 열매를 딸 수 있는 사과나무를 심어야 한다. 2021년 새해를 맞는 대한민국은 기로에 서 있다. 코로나 이후를 위해 세계 각국은 미래를 선도할 신기술에 엄청난 국가 예산을 쏟아 붓고 있다. 그 맨 앞단에 인공지능(AI)과 반도체가 서 있고, 후방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들이 줄지어 따라가야 한다. 국가적 역량과 전략을 집중해도 모자랄 판이다. 삼성도 D램 사업을 넘어 세계 최고의 시스템반도체 기업으로 도약해야 하는 중장기 과제를 안고 있다. 분노와 응징만이 능사는 아니다. 관용과 포용으로도 진지한 반성과 성찰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대한민국의 미래 세대를 위해 내일의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주는 것은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