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융복합 시대에 맞춰 '글로벌 빅테크 기업'으로 가기 위한 2021년도 정기 인사를 단행했다. 코로나19 등 불확실한 환경 속 주요 경영진은 유임시키면서 부회장 보임을 통해 계열사간 시너지를 도모해 미래 경쟁력을 키우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ESG 경영을 가속화하기 위한 조직 정비도 마쳤다.
SK그룹은 3일 정기 임원인사와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이번 인사에서는 부회장·사장 승진 4명과 신규 선임 103명까지 총 107명의 승진이 이뤄졌다. 신규 선임 규모는 작년보다 소폭 줄었지만, 바이오·소재·배터리 관련 인재를 과감하게 발탁했다. 여성 임원도 예년과 같이 7명을 선임했다.
■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 겸직…글로벌 ICT 기업 도약 '속도'
우선 이번 인사에서 가장 눈여겨 볼만할 사안은 최 회장의 복심으로 알려진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SK하이닉스 부회장직을 겸하게 됐다는 점이다. SK그룹에서 한 사람이 2개 ICT 계열사 요직을 동시에 맡는 일은 흔치 않다. 이는 그간 SK그룹 하이닉스와 일본 도시바,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 부문 등 굵직한 인수합병(M&A) 건에 깊숙히 관여해 온 박 부회장을 배치해 치열한 글로벌 환경 속 기업 경쟁력을 한층 높이기 위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향후 박 부회장은 통신과 반도체 계열사간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하면서 사업 시너지 창출에 나설 것으로도 보인다. 두 회사는 최근 국내 최초로 데이터센터용 인공지능(AI) 반도체를 개발하는 등 협업해 왔다. SK하이닉스가 더 이상 D램 메모리 사업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최태원 회장의 주문인 셈이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박정호 부회장은 빅테크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는 SK텔레콤 CEO와 글로벌 영향력이 더욱 강화되고 있는 SK하이닉스 부회장직을 겸임하게 됐다"며 "융복합화가 심화되는 ICT 산업에서 반도체와 통신을 아우르는 SK ICT 패밀리 리더십을 발휘해 다양한 시너지를 창출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SK그룹 핵심 계열사간 중심 축에도 변화가 생기는 모습이다. SK텔레콤은 단순 통신기업에서 나아가 '글로벌 빅테크 기업' 도약에 속도를 내고 있고, SK하이닉스에 힘이 실리면서 '반도체 중심의 ICT 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중간지주사 전환이 본격화될 경우 이같은 틀이 더욱 굳혀질 전망이다. 재계는 최태원 회장이 박정호 부회장을 SK하이닉스에 배치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현 지배구조는 오너일가→SK㈜→SK텔레콤→SK하이닉스로 이어진다. SK그룹은 SK텔레콤을 통신사업회사와 투자·지주회사로 분할, 투자·지주회사가 SK하이닉스, SK브로드밴드 등 ICT 자회사를 아우르는 지배구조 개편을 검토해 왔다.
이 경우 SK하이닉스는 자회사로서 공격적인 M&A에 나설 수 있게 된다. 현재 SK하이닉스는 SK 지주사의 손자회사로, 공정거래법상 인수할 기업 지분을 100% 사들여야 해 부담이 있었다.
재계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은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반도체에 이어 ICT 종합 기업을 육성, 미래 먹거리를 발굴해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에 지속 나설 것으로 보인다"며 "중간지주사 전환 등을 앞두고 오너 다음으로 각 회사 정보를 파악하며 실질적으로 여러가지를 디베이트할 수 있는 핵심자로 박 부회장을 내정한 것도 그 발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ESG 경영 이끌어갈 경영진 체제 구축…74년생 사장도 탄생
유정준 SK E&S 사장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유 부회장은 SK 주식회사 경영지원부문장, SK에너지 R&M CIC 사장, SK주식회사 G&G추진단 사장을 역임했으며 신재생에너지, 에너지솔루션 등 성장사업의 글로벌 확장을 이끌게 된다. SK그룹은 바이오, 반도체와 함께 에너지 분야를 중심으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40대 사장도 탄생했다. 주인공은 SK E&S 사장으로 승진한 추형욱 SK주식회사 투자1센터장이다. 그는 1974년생 만 46세로 임원 3년차에 사장 자리에 오르게 됐다. 그야말로 파격 인사다. 연공과 무관하게 능력과 성과를 중시하는 SK의 인사 철학이 반영됐다는 평이다. 추 사장은 유 부회장과 SK E&S 공동대표를 맡는다.
재계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은 상무, 전무 등 임원 직급을 폐지하는 등 직급간 격차보다 각자의 능력을 효율적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수평적인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고 "기업들 중에서도 진일보한 문화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염용섭 SK경영경제연구소 소장도 사장으로 승진했다. 염 사장은 2017년부터 경영경제연구소를 이끌어 오며, 행복경영, 딥 체인지 등 SK의 최근 변화에 밑거름 역할을 해왔다는 평이다. 염 사장은 ESG 등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과제를 발굴하는 역할을 맡는다.
관계사 CEO들로 구성된 협의체인 수펙스추구협의회에는 지배구조 투명성을 높이고 관계사의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가속화하기 위해 거버넌스위원회를 신설했다. 환경사업위원회를 신설하고 바이오소위원회, AI소위원회, DT소위원회를 관련 위원회 산하에 운영해 ESG 경영을 강화하고 바이오, AI, DT 등 미래 먹거리 발굴에도 적극 나선다.
■ 조직정비 마친 최태원, 내년 '파이낸셜 스토리' 본격 추진
SK그룹의 2021년도 인사와 조직개편은 모두 최태원 회장이 내년부터 본격 추진할 '파이낸셜 스토리'와 맞닿아 있다.
파이낸셜 스토리는 ESG 경영을 기반으로 고객, 투자자, 시장 등 이해관계자에게 미래 비전과 성장 전략을 제시하고 각 기업의 총체적 가치를 높여 나가자는 최 회장의 경영 전략이다. SK그룹은 CEO 세미나 등 연례 주요 경영진 행사 등을 통해 올해 이를 치열하게 논의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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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인사에서 그룹 최초로 3연임에 성공한 조대식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도 올 CEO세미나에서 “기업가치가 빠르게 상승한 기업들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다른 회사와의 경쟁력 차이를 벌리며 1등 기업으로 자리잡았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SK 관계사들도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미래 성장사업 중심으로 변화시켜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전한 바 있다.
SK그룹 관계자는 "내년 또한 경영환경이 녹록치 않지만 이번 인사가 그간 준비해 온 파이낸셜 스토리를 본격 추진하면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발판이 되기를 기대한다"며 "앞으로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ESG의 세계적인 모범이 되는 글로벌 기업으로 지속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