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준 LG그룹 고문이 LG상사·LG하우시스 계열을 따로 떼어 독자 경영에 나설 것으로 알려지면서 올해 취임 3년 차인 구광모 LG 회장이 전자·화학·통신을 주축으로 그룹 신사업 안착에 더욱 속도를 낼 전망이다. 구 회장이 선대 회장들이 기반을 다진 미래 사업을 본궤도에 안착시키고 그에 따른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 하는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LG그룹은 이르면 이달 말 이사회를 열고 구본준 고문의 계열 분리 안건을 의결할 것으로 알려졌다. LG그룹은 오는 26~27일 이틀에 걸쳐 내년도 정기 사장단 임원 인사와 조직개편을 단행할 것으로 관측돼 왔다.
LG그룹의 이번 계열 분리 추진은 고(故) 구본무 전 회장의 별세 이후 유력하게 제기돼 온 시나리오 중 하나다. 범 LG가(家)는 장자 승계 원칙 아래 형제들이 계열사를 독립해 나가는 전통을 이어왔다. 구본무 전 회장 별세 후 2018년 6월 열린 LG그룹 이사회에서 장자인 현 구광모 ㈜LG 대표이사 회장이 선임됐고, 그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구본준 고문(당시 부회장)의 계열 분리 가능성이 꾸준히 거론돼 왔다. 구 고문은 구 회장의 숙부이자 故 구본무 전 회장의 동생이다. 선대 회장과 함께 LG그룹의 주력인 전자부품·유기발광다이오드(OLED)·車배터리·통신 등 미래 신사업의 밑그림을 그린 주역이다.
■ LG 계열 분리 임박…구본준 고문 7.7% 지분 정리 어떻게?
업계에서는 구본준 고문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약 1조원 규모 ㈜LG 지분 7.72%를, ㈜LG가 보유한 LG상사와 LG하우시스, 판토스 경영권과 맞바꿀 것으로 보고 있다. LG상사와 LG하우시스 시가총액이 각각 7천151억원과 5천856억원 수준으로 구 고문의 현 지분 가치로 무리없이 실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LG는 LG상사 지분 25%, LG하우시스 지분 34%를, LG상사는 판토스 지분 51%를 보유하고 있다.
구 고문이 LG상사와 LG하우시스, 판토스 경영권 기반의 독자 경영체제로 정리한 이유는 LG그룹의 주축인 전자와 화학 계열사라는 현 구도를 크게 흔들지 않으면서 구 회장이 이를 기반으로 미래 캐시카우(수익창출원)를 창출하는 데 더욱 매진하도록 LG 오너家가 중지를 모은 것으로 풀이된다.
전자·화학·통신 계열사는 구광모 회장 체제 이후 각종 투자와 인수합병(M&A)를 통해 미래 융복합 시대 발맞춰 인공지능(AI), 전장, 전자 핵심 세트·부품, 로봇 등을 성장 동력으로 키우는 데 여념이 없는 상황이다.
이 같은 계열 분리 시그널은 구 회장 체제 이후 포착되기도 했다. 지난해 3월 LG상사는 서울 여의도 트윈타워 소유 지분을 ㈜LG에 매각했다. 2018년 10월에는 LG그룹이 구광모 회장 등 LG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판토스 지분 전략 19.9%(39만 8천주)를 미래에셋대우에 매각키로 결정하기도 했다. 출자구조 단순화와 함께 일감 몰아주기 논란 해소를 위한 결정이었다.
■ 구광모 회장, 3년 숙련기 마감...'4세 경영 체제' 출격 준비 완료
구광모 회장 취임 3년째에 계열 분리가 본격 추진되는 것은 LG家가 구 회장 체제가 과도기를 끝내고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고 본 것이 아니겠냐는 분석도 나온다.
구 회장은 역대 그룹 총수 중에서도 꽤 젊은 나이(41세)에 회장 자리를 물려받았다.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약 3년 동안 체제 안정화를 위한 시간을 갖은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구광모 회장은 실용주의, 고객가치 실천 중심의 경영기조도 꾸준히 내세우고 있다. 이 기간 구본준 고문의 역할도 컸을 것으로 보인다. 구 고문은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상사 등 주력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하며 그룹을 누구보다 잘 꿰뚫고 있는 인물로 꼽힌다.
재계 관계자는 "핵심 계열사에서 누구보다 많은 경험을 쌓아왔던 구본준 고문이 젊은 총수인 구광모 회장을 뒤에서 조용히 지원해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LG그룹 계열사 대부분이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둔 것도 구 회장 체제 평가에 반영됐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LG는 올 3분기 매출액 1조9천560억과 영업이익 7천671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7%와 116% 증가했다. LG전자, LG화학은 이 기간 분기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 전자·화학·통신 미래 신사업 성과 내기 관건…새 경영色 입혀야
그래도 갈 길은 멀다. 구광모 회장이 취임 3년째에 숙부를 떠나보내고 온전히 홀로서기에 나설 채비를 갖추면서 세대교체와 '뉴 LG'의 향방에 관심이 모아진다.
구광모 회장은 역대 LG家 오너들이 그려놓은 전자·화학·통신 밑그림에 본인의 색(色)을 입혀 주요 사업들을 본 궤도에 올려놓고 성과를 거둬야 하는 큰 과제를 안고 있다. 전장, OLED 디스플레이, 에너지(자동차배터리), 바이오 사업의 안정화와 함께 AI, 5G, 로봇 등 신성장 동력도 확보해야 한다.
LG그룹은 최근까지 투자와 인수합병, 차세대 전장부품 발굴을 통해 전장 로드맵을 완성해나가고 있다. LG 각 계열사는 모바일을 비롯한 각종 전자기기와 사물인터넷(IoT)를 기반으로 한 커넥티드 생태계와 전기차 배터리, 차량용 통신 부품 텔레매틱스와 OLED 디스플레이, 차세대 통신 기술 기반의 자율주행 솔루션 등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LG전자 전장 사업부는 수분기 적자를 면치 못했지만,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거래를 늘리며 흑자 전환까지 격차를 좁히고 있다. LG전자는 2013년 V-ENS 사업을 흡수하면서 전장 사업에 본격 나섰고, 2018년에는 오스트리아 자동차 헤드램프 기업 ZKW을 인수하기도 했다. 현대자동차와 협업해 미래차 인테리어 비전을 선보이는 등 차세대 모빌리티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다양한 기회도 엿보고 있다.
한동안 부진을 면치 못했던 LG디스플레이는 올 3분기에 7분기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IT 패널 호조, 광저우 신공장 OLED 양산, 글로벌 TV 판매 호조 등이 맞물린 결과다. 비대면 일상 등에 따른 기회 요인뿐 아니라 불확실한 시장 환경 속에서도 차세대 디스플레이 리더십을 장기간 지속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LG전자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MC사업본부는 지난 3분기까지 22분기 연속 적자 속에 영업손실폭을 줄여나가고 있다. 2~3년 전부터 스마트폰 사업구조 개선에 꾸준히 나서왔지만, 확실한 모멘텀을 찾는 게 열쇠가 될 전망이다. 머지않아 공개될 LG 롤러블폰에도 관심이 높다. 스마트폰은 가전·TV 등 LG 연결 생태계 컨트롤러이자 LG전자의 미세공정 기술력을 유지하는 역할에 대한 내부 평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LG그룹의 화학 계열도 분주하다. LG화학의 배터리 자회사로 독립한 LG에너지솔루션이 다음 달 출범한다. 신규 자금을 확보, 급성장하는 전기차 시장에 맞춰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고 생산능력을 키우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LG화학은 석유화학·첨단소재·생명과학에 집중한다. 통신 계열인 LG유플러스는 5G 기반의 스마트 물류·유통, 빅데이터 플랫폼 사업자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이들 그룹 주요 계열사가 출자한 펀드를 운용하는 LG 테크놀로지벤처스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자율주행 부품, 인공지능, 로봇 분야 스타트업 발굴과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도 업무 체제 선진화에 나서고 있다. 구광모 회장은 계열사 전반에 디지털 기술, 데이터를 활용해 시장의 니즈를 발 빠르게 파악하고 성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는 DX(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주문하기도 했다.
■ 구광모의 '뉴 LG' 이달 말 윤곽
뉴 LG 체제는 이달 말이면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내년도 사업 전략을 수립하고 인사·조직개편을 논의하는 구광모 회장 주재 사업보고회가 이번 주에 마무리된다.
관련기사
- LG, 상사·하우시스 계열분리 검토...구본준 고문 독립경영2020.11.16
- LG 구광모, 한 달간 포스트 코로나 대응 '사업보고회'2020.10.16
- 'LG 전장 로드맵' 탄력…구광모式 투자행보 지속2020.09.25
- 구광모, LG 경영진에 "고객에 대한 '집요함'으로 새 기회 찾자"2020.09.22
LG화학의 배터리 사업부문 분사와 구본준 고문의 계열 분리 등 이슈로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LG그룹 이사회와 인사가 마지막주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구 고문의 독립이 인사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높다.
재계 관계자는 "LG상사·하우시스·판토스 계열 분리가 돼도 이는 LG그룹의 전자, 화학 등과는 결이 다르기 때문에 인력 이동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업부보다는 인사, 전략기획, 재무 등 경영지원 관련 인원에 대해 이뤄질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