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경상환자의 과잉진료 문제에 주목하며 자동차보험 제도의 개선 필요성을 제기하자 보험업계가 반색하고 있다. 그간 과도한 진료 행위를 막기 어려워 보험금 누수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는데, 이번 주문에 따라 정부 차원에서 대안을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물론 소비자의 진료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점엔 동의하나, 일부의 과잉진료가 보험가입자간 분쟁과 자동차보험료 인상이란 사회·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지는 만큼 근본적인 대응책이 절실하다는 게 업계 입장이다.
"과잉진료가 자동차보험료 인상의 주범"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2일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자동차보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내비쳤다. 제도의 허점을 악용하는 소수의 과잉진료가 자동차보험료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는 진단에서다.
유동수 의원이 보험개발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자동차보험의 보험금은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연평균 4.9% 증가했다. 무엇보다 교통사고로 타인에게 입힌 신체 상해에 대해 지급한 대인배상 부상보험금이 매년 12.4% 늘어나는 등 꾸준한 상승세를 보였다. 그 여파에 2019년 이후에는 보험료가 세 차례나 인상된 바 있다.
이는 교통사고 환자의 약 95%를 차지하는 경상환자 중 일부의 과잉진료에서 비롯됐다고 유동수 의원은 지적했다. 자동차보험과 관련해선 과잉진료를 막을 만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보니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자동차보험의 경우 건강보험의 자기부담금 제도를 운영하는 건강보험과 달리 과잉진료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전무하다. 이로 인해 목부위 관절·인대의 탈구와 같은 동일한 경미 상해에 대해서도 자동차보험은 건강보험에 비해 4.8배 높은 진료비를 지급하는 실정이다.
아울러 현행 자동차보험 치료비전액지급보증제도는 과실비율이 100%가 아니라면 치료기간과 치료비를 제한하지 않는다. 이렇다보니 과실비율 90%인 ‘가해자’가 합의를 거부한 채 2년 이상 치료를 받으면서 약 1천800만원의 보험금을 수령한 사례도 포착됐다.
이에 유동수 의원은 "주관적 통증 호소만으로는 장기 진료가 불가능하도록 추가진료 절차를 마련하고, 과실비율을 고려한 치료비 지급방안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방진료도 보험금 누수에 한 몫?"
동시에 보험업계에선 경상환자가 한방치료를 선호하는 것도 과잉진료로 인한 보험금 누수의 주된 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양방진료는 대다수가 급여항목에 편입되면서 진료 횟수와 처방·투약 등이 규정돼 있으나, 한방은 비급여가 대다수를 차지해 의사의 판단에 따라 과도한 진료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보험개발원 통계에서도 한방진료 비용이 비교적 높은 수준임을 확인할 수 있다. 2019년 기준 경상환자의 1인당 평균 진료비는 64만8천원이었는데, 한방 진료비(76만4천원)가 양방(32만2천원)의 두 배를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다. 즉, 한방진료가 전체 진료비를 끌어올리고 있는 셈이다.
이 가운데 자동차 사고와 관련한 경상환자의 한방진료 비중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2015년 38.9%에서 2019년 66.5%로 급증했다. 이와 맞물려 지난해 자동차보험 관련 한방진료비도 총 9천569억원으로 2015년보다 167.6% 급증했다. 자동차보험 환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려는 한방 의료기관의 홍보 노력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7월 보고서에서 진료 수가 심의 의결 기준과 진료비 세부 심사 기준 부재로 한방진료가 문제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하며, 국민건강보험과 비슷하게 진료비 심사·평가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캐나다, '경미상해' 규정 시행…영국은 진단서 발급 의무화
이에 보험업계 일각에서는 해외의 사례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영국과 캐나다 등이 우리나라보다 먼저 경상환자 과잉진료 문제에 주목해 치료 가이드라인과 보상기준을 정립한 바 있어서다.
먼저 캐나다의 브리티시 콜롬비아는 자동차보험법에 경미상해 규정을 추가해 2019년 4월부터 시행 중이다. 인대·힘줄이 늘어나는 부상이나 단순 뇌진탕 등을 경미상해로 규정하는 한편, 이를 민사합의재판소에서 판정하도록 한다는 게 골자다.
특히 환자는 초기 진단 후 기간별로 의료전문가로부터 회복 여부를 평가받고 법에서 규정한 방법에 따라 치료를 받아야 한다. 12주 이상의 치료에 대해선 의사와 보험회사의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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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도 2021년 4월부터 모든 경상환자의 진단서 발급을 의무화하며, 치료기간을 설정하고 기간별 배상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연간 약 10억 파운드(1조4천783억원)의 보험금 절감을 기대하고 있다.
보험개발원 전용식 연구위원은 관련 보고서에서 "경상환자 판단 기준과 치료 방법, 기간에 대한 가이드라인 제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며 "이는 피해자에겐 절차에 따른 충분한 치료를 보장하고, 가해자에겐 과실에 부합하는 손해를 배상토록 함으로써 자동차보험 제도의 합리성을 높일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