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밀그롬 교수와 노벨상

전문가 칼럼입력 :2020/10/15 07:03    수정: 2020/10/15 07:54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스탠퍼드 대학 밀그롬 교수의 수업은 확실히 인상적이었다.

경제학이 사회과학 중에서는 수학을 많이 쓰는 학문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수학적 방법론에 매몰돼 있다 보면 자칫 세상을 보는 눈이 좁아질 수 있다.

밀그롬 교수는 어려운 이론경제학 논문을 많이 쓴 분인데 막상 수업을 들어보니 경제와 사회 전반을 꿰뚫는 통찰력을 느낄 수 있었다. 다양한 분야에 적용 가능한 경제이론의 매력을 새삼 느꼈다.

밀그롬 교수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경매이론 업적 때문이지만 사실 그의 연구업적은 다양하다.

우선 밀그롬 교수는 1970~80년대에 꽃을 피운 게임이론 발전과 이를 이용한 경제학적 모형 분석 방법론의 수립에 공헌한 대가 가운데 한 명이다.

게임이론과 관련해서는 1994년에 존 내쉬를 비롯한 3명의 학자가 노벨상을 처음 받았다. 이후 2005년과 2007년, 2012년에도 게임이론과 관련된 수상이 있었다.

이번에 노벨상을 받은 밀그롬 교수와 윌슨 교수는 당시 수상자 목록에 포함돼 있었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특히 밀그롬 교수는 비대칭 정보 하의 게임이나 반복게임, 명성의 형성, 슈퍼모듈러 게임 등 게임이론 연구자들에게는 익숙한 업적들을 다수 남겼다. 밀그롬 교수는 래티스 이론을 활용한 비교정태학 방법론 발전이나 시장설계 이론 등 이론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연구도 다수 수행했다.

밀그롬 교수가 특히 높이 평가되는 것은 그가 단순히 이론 성립에만 머물지 않고 다양한 현실 분야에 응용하는 연구를 했다는 점이다. 1980년대 이후 경제학에서는 게임이론 방법론을 이용해 기업 전략이나 산업 구조 등을 연구하는 산업조직론 분야가 크게 발전했다.

밀그롬 교수는 약탈적 가격이나 진입 억제 가격설정, 광고전략 등에 대한 논문 뿐 아니라 기업의 생산조직이나 성과급제도, 영향력 구조 등 기업 내부를 들여다보는 연구도 다수 수행했다. 그 결과물들을 바탕으로 존 로버츠와 함께 ‘Economics, Organization, and Management’라는 경영대학원 교재를 출간했다. 수십 년 간 개정판이 나오지 않았음에도 지금도 관련 분야에서 가장 독특하면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교재 중 하나다.

밀그롬 교수의 다양한 업적을 강조하다 보니 제일 나중에 쓰게 됐지만 노벨상 위원회도 인정한 것처럼 그의 대표적인 업적은 경매이론이다.

밀그롬 교수는 오늘날 경매이론에서 가장 중추적인 결과들을 도출했다. 1982년 로버트 웨버 교수와 함께 쓴 논문은 참여자가 경매 대상에 대해 공통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경우의 경매 결과를 분석했다. 개별적 가치 상황을 분석한 윌리엄 비커리의 업적과 더불어 경매이론의 기반을 이룬다.

최근 경매이론이 주목받게 된 것은 1993년부터 각국이 이동통신 주파수 경매를 시작하면서다.

기존에 예술품이나 꽃, 수산물, 정부 구매 등의 거래에서 주로 이용되던 경매방식이 국가정책의 주요 관심사로 떠오른 것이다. 주파수는 다양한 사업자가 서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대상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적절한 가격을 받으면서도 국가적으로 중요한 이동통신 사업이 잘 진행될 수 있어야 한다.

혹시 모를 담합이나 기타 부작용도 발생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경매 제도를 설계하기는 쉽지 않았다.

밀그롬 교수는 주파수 경매 초기부터 참여해 최근까지 제도 설계에 큰 역할을 했고 그 과정에서 다수의 새로운 연구결과를 도출했다.

노벨 위원회가 밀그롬 교수를 수상자로 선정하게 된 과정에는 경매이론에 대한 연구 뿐 아니라 현실 참여를 통해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 낸 것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

밀그롬 교수는 이론이 어떻게 현실과 접목돼야 하는 지에 대해 종종 얘기하곤 했다.

이론가들이 모형을 만들어 학술지에 논문을 쓰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그 논문이 현실을 반영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지는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화려하고 복잡한 테크닉이 드러나는 논문보다는 깊은 생각이 드러난 연구에 더 후한 점수를 줬다. 물론 그 자신이 복잡한 이론모형을 만들고 분석하는 데는 이미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그렇기도 했을 것이다.

경제학에 대한 비판 중에 보통 인간을 지나치게 합리적인 존재로 설정하고 이론을 전개한다는 것이 있다. 밀그롬 교수는 이에 대해 강한 합리성이 비록 비현실적인 측면은 다소 있지만 그러한 가정에서 이론이 도출돼야만 그를 기반으로 현실 정합성을 검증할 수 있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비록 그가 이론경제학을 연구하기는 하지만 그러한 이론이 현실에 적용되고 검증받지 못한다면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음을 늘 생각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최근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를 이용한 분석 등이 주목을 받으면서 거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제학도 예외는 아니다.

관련기사

인간의 합리성 한계를 인지한 행동경제학이 인기를 얻으면서 경제학의 지평이 넓어지는 측면도 나타난다. 과거보다 많은 데이터와 더욱 다양한 이론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요즘 탄탄한 이론과 실증적 기반, 현실 문제에 대한 기여 등에 있어 골고루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추기는 쉬운 일은 아니다.

한국에 귀국한 이후 나의 관심과 연구 분야는 많이 변화해 왔지만 당시 그가 나에게 전달한 학자로서의 태도는 지속해서 영향을 미쳐 왔다고 생각한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