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지포스 RTX 30 시리즈 탑재 그래픽카드가 PC 부품 유통 시장에 예기치 않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200만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여겨졌던 지포스 RTX 3090/3080 탑재 그래픽카드 신제품이 출시 당일 동영상을 통한 라이브 커머스, 소셜커머스 직판을 통해 100만원 미만의 가격에 풀리면서 기존 유통망을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국내 PC 관련 유통업계 내부에서도 'RTX 30 시리즈 대란'으로 불리는 이번 사건에 대한 자정과 반성의 목소리가 높다. 유통망 안에 소비자를 가두고 가격으로 통제할 수 있는 시대는 진작에 끝났다는 지적이다.
■ 유튜브·소셜커머스 직판에 몰린 게이머들
가격비교사이트 다나와는 9월 중순과 하순에 걸쳐 온라인으로 엔비디아 지포스 RTX 3090/3080 탑재 그래픽카드를 한정 수량 판매했다.
방송 당일 밤 10시부터 진행된 라이브 커머스 방송을 통해 할인 코드를 제공하고 다나와 특설 사이트에 이를 입력해 구매하는 방식이다. 지포스 RTX 3090 그래픽카드 관련 방송은 약 3천500명, 지포스 RTX 3080 그래픽카드 관련 방송은 약 1천500명이 시청했다. 모든 물량은 할인 코드 공개 후 5분 만에 매진됐다.
대만 PC 업체 에이수스 그래픽카드를 판매하는 인텍앤컴퍼니도 지난 22일 쿠팡을 통해 지포스 RTX 3080 그래픽카드 국내 도입 물량 100여 개를 전량 쿠팡을 통해 판매했다. 이들 물량 역시 불과 5분 만에 동이 났다.
■ '용산 프라이스'에 누적된 피로감·불만 폭발
국내 소비자들은 그간 속칭 '시장 권장가'가 아닌 '용산 프라이스', 혹은 '용산 권장가'(YSRP)로 대표되는 기존 유통망의 불합리한 가격 책정에 불만과 피로감을 느껴왔다.
암호화폐 채굴 수요가 폭증해 2017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그래픽카드 수급 문제부터 2018년 하반기에 시작된 인텔 프로세서 수급난, 또 올 7월부터 시작된 데스크톱PC용 3세대 라이젠 프로세서 수급 문제에서 기존 유통망이 보여준 움직임은 한결같다.
국내·외 언론에서 환율 상승이나 수급 문제가 언급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제품 가격을 올리는가 하면, 공급이 정상화되고 환율이 안정되어도 한 번 오른 가격이 다시 내려가는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이해가 안 간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반면 지난 2018년과 달리 100만원이 안 되는 가격에 최신 그래픽카드가 유통되자 국내 소비자들은 라이브 커머스와 소셜커머스에 제품을 공급한 회사에 대해 연일 칭찬 일색이다.
■ "규모에 밀려 비싸게 받아오는 구조가 원인"
주요 그래픽카드 제조사 국내 법인, 혹은 유통사 관계자들은 '지포스 RTX 3090/3080 대란'이라는 이름까지 붙은 이런 현상의 원인 중 하나로 "규모에 밀려 비싸게 받아오는 구조가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수입사 관계자는 "수요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신제품 초기 물량은 대만과 중국 등 그래픽카드를 제조하는 본사가 일단 원가를 높게 부르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 각국의 유통사나 수입사가 물량 확보를 통해 일종의 입찰을 벌인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전 세계 유통사가 한정된 물량을 두고 벌이는 신제품 쟁탈전에서 국내 업체들이 절대적 열세에 있다는 것이다. 국내 시장은 현재 미국보다 더 큰 최대 수요처로 꼽히는 중국은 물론 일본 시장과 비교해도 절대적인 수량에는 밀린다.
이 때문에 국내 법인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수량을 비싼 가격에 들여올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유통사, 혹은 판매사가 '비싸도 팔릴 것'이라는 계산 아래 판매 가격을 높이면 '용산 프라이스'가 탄생하는 것이다.
■ "소비자 경고 메시지, 무겁게 받아들여야"
유통사와 제조사 등을 통해 파악한 바에 따르면 국내 출시된 지포스 RTX 30 시리즈 그래픽카드의 초도 물량은 3090 탑재 제품이 세 자릿수를 약간 넘는 수준으로, 3080 탑재 제품은 이 같은 수량의 1.2배 정도로 추산된다.
한 업체 관계자 역시 이를 시인하며 "초도물량이 시장에 유통될 정도로 충분치 않으면 여러 혼란이 야기되기 때문에 소셜커머스, 혹은 라이브 커머스 등 한정 판매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유통망이 아닌 새로운 경로를 통한 PC 부품 유통이 지속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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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을 요구한 유통사 관계자는 "이번에 판매된 제품 판매 가격은 명백히 원가 이하이며 이를 반드시 누군가가 보전해 주어야 한다. 화제성을 위한 선제적 결정, 혹은 마케팅 예산을 활용한 손실 보전이 있어 가능했던 일"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번 대란은 기존 오프라인 기반 유통 업체들이 20여년 가까이 지켜왔던 유통 카르텔에 큰 균열을 남긴 사례로 남을 것"이라며 "이번 대란 속에 숨은 소비자의 분노와 경고를 무시하면 기존 유통망의 미래는 없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