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기보다 차가워지거나 따뜻해지는 물의 특성을 이용한 친환경 '수열에너지' 산업 활성화에 나섰다. 그린뉴딜 핵심 사업인 수열에너지를 태양광·풍력·수소에 이어 차세대 재생에너지로 키우겠다는 목표다.
수열에너지는 물의 열을 열교환 장치를 이용해 에너지로 변환해 냉·난방에 활용하는 친환경 물에너지다. 냉각탑이 필요하지 않아 열섬현상과 소음을 줄일 수 있고, '물'이라는 공공재를 활용해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방식이어서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세계가 주목하는 재생에너지다.
환경부는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는 수열에너지 생태계의 보급 확산과 조기 안착을 지원하기 위해 '수열에너지 사업 지원단'을 25일 출범했다. 에너지·수처리·건축 등 업계·학계·공공기관 관련분야 전문가 15명으로 구성된 지원단은 앞으로 정책 자문과 기술상담을 맡아 수열에너지 확산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물에너지 활용하는 친환경·고효율 재생에너지
수열에너지는 정부가 추진하는 그린뉴딜 정책의 대표 사업으로 육성되고 있다. 댐·하천·수도관의 물 온도가 여름철엔 기온보다 차갑고 겨울철엔 상대적으로 따뜻한 자연적인 특성을 이용한다. 물은 에너지를 축적하는 능력(비열)이 매우 큰데, 히트펌프가 기화 시 열을 흡수하고 액화 시 열을 방출하는 게 수열에너지 발전의 원리다.
이 에너지가 주목받는 이유는 친환경·고효율 재생에너지란 점에서다. 난방 보일러가 액화석유가스(LPG)·석탄 등 화석연료를 연소하는 것과 달리, 수열에너지는 물에서 열을 이동시켜 활용한다. 냉방 시에도 수열에너지는 냉각탑 없이 열을 수열원으로 직접 흡수한다.
에너지공단에 따르면 수열에너지는 냉·난방기와 비교해 30% 안팎의 에너지 절감 효과가 있다. 수량의 손실도 발생하지 않아 보충수를 사용하는 냉각탑보다도 물 절약 효과가 월등하고 오염물질 유입 우려도 없다.
수열에너지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지원은 녹색산업 육성과 함께 건물분야의 기후변화 대응 차원에도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2017년을 기준으로 건물분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1억5천500만톤이었다. 이는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인 7억910만톤의 22%에 달하는 수준이다. 또 건물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옥상 냉각탑을 없앨 수 있어 하중도 줄이고 공간 활용성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천덕꾸러기에서 차세대 재생에너지로…국내서도 활용 '꿈틀'
그동안 수열에너지는 꾸준한 연구·개발(R&D)에도 규제에 막혀 활용되지 못했다. 신재생에너지법에 따라 바닷물의 표층열을 변환해 에너지를 얻는 경우에만 재생에너지로 인정받았다. 그러던 중 지난해 10월 신재생에너지법 시행령 개정으로 하천수·상수원수 등의 수열에너지 활용 근거가 마련됨에 따라 수열에너지도 일단 신재생에너지 범주 내로 들어왔다.
지난 6월 환경부가 국무회의에서 보고한 '친환경 수열에너지 활성화 방안'에도 이러한 내용들이 담겼다. 이 방안은 주로 수열에너지 시범사업과 제도 개선, 기술개발, 사업지원단 운영 등 중장기 목표를 설정했다. 특히, 전력 생산 목표량을 오는 2025년 250메가와트(MW)에서 2030년 500MW, 2040년 1천MW 규모로 늘리겠다는 계획인데 이는 석탄발전 2기의 발전량과도 맞먹는 것이다.
해외에선 이미 관련 산업이 활성화됐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약 150개 빌딩 냉방공급에 수열에너지를 활용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 관광객이 많이 찾는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역시 수열에너지를 이용한 냉·난방시스템을 구축했다. 국내에선 한국수자원공사 내 소규모 사업장과 서울 롯데월드타워, 그리고 최근 도입을 결정한 삼성서울병원 등을 시작으로 점차 활용이 늘어나는 모습이다.
롯데월드타워는 총 80억원을 투입해 지난 2014년 11월부터 전체 냉·난방 전력의 10%를 수열에너지로 공급하기 시작했다. 같은 용량의 흡수식 냉·온수기를 사용했을 때보다 에너지 사용량은 35.8%,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37.7% 절감했다. 냉각탑 6기를 제거해 면적 600제곱미터(㎡)와 건물 하중 66톤을 줄였고, 이에 따라 유지관리비도 약 1억9천만원 가량 감소했다.
환경부·수자원공사, 수열에너지 알리기에 안간힘
환경부는 수열에너지 보급 확대를 위해 관련 융복합클러스터를 조성하는 한편, 국산 기술 고도화 R&D 등 다양한 지원책을 추진 중이다. 핵심 설비인 히프펌프 기술 경쟁력을 높이고,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RPS) 대상인 공공건축물을 중심으로 수열에너지 설비 보조를 지원하고 있다.
현재 가장 규모가 큰 프로젝트는 정부가 2027년까지 강원 춘천에 조성하는 '강원 수열에너지 융복합클러스터'다. 사업비만 무려 3천27억원이다. 이 클러스터의 수열에너지 공급 규모는 1만6천500냉동톤(RT)으로, 국내 최대 규모인 롯데월드타워(3천RT)의 5배가 넘는 규모다. 또 부산 에코델타 스마트시티와 인천 종합환경연구단지, 한강물환경연구소 등에서도 시범사업을 이어간다.
수열에너지 사업화의 선봉은 환경부 물 관리 산하기관인 수자원공사가 맡았다. 수자원공사는 지난 6월 삼성서울병원과 업무협약 체결하고 연이어 경기도에서도 수열에너지 도입에 나섰다. 도내 공공개발사업에 광역원수를 활용한 수열에너지 공급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인데, 공급 물량은 향후 산업단지 분양 상황에 따라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오는 2027년 완공되는 서울 영동대로 복합환승센터에도 이 기술이 적용된다.
관련기사
- 수자원公, 서울 영동대로 복합환승센터에 수열에너지 공급2020.09.24
- 재생에너지 발전량 예측해 이행하면 정산금 지급2020.09.18
- 올해 재생에너지 보급목표 벌써 달성…태양광 '세계 9위'2020.09.02
- 산업부, 재생에너지 분야 3차추경 2710억원 편성2020.07.05
환경부도 다가오는 수열에너지 시대에 앞서 제도 정비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올해 들어 수열에너지 보급과 알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어 주목된다. 우선, 하천수 사용료와 물이용부담금 등 각종 물과 관련한 요금 감면을 위해 하천법과 수계법 개정을 추진한다. 도로·지하시설물 등으로 인해 수요처 발굴 한계가 있는 개별 건축물도 지자체와 협의해 수열에너지 공급 방안을 모색한다.
환경부 관계자는 "태양광과 풍력처럼 수열에너지를 그린에너지의 한 축으로 육성하는 게 목표"라며 "대형 백화점이나 매장, 데이터센터 등 냉·난방 에너지 사용이 크고 수열 적용이 가능한 입지를 적극적으로 발굴해 활용을 유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